feat. 서산 호떡
태안 오일장은 35년 전에 사라졌다. 오일장이 사라지는 이유로 내가 꼽는 것은 두 가지. 하나는 사람이 없거나 또 하나는 사람이 많거나이다. 전자는 시장이 시나브로 사라진다. 파는 이나 사는 이가 없으면 시장은 그 기능을 상실한다. 지방의 수많은 면 단위의 오일장이 그렇다. 면 소재지의 오일장을 어쩌다 지나면 아예 서지 않거나 노점상 몇몇이 있을 뿐이다. 후자의 경우는 오일장이 상설 시장화되면서 오일장이 사라지는 경우다. 이는 파는 이나 사는 이가 많기에 가능하다. 정읍, 속초, 강릉 등 오일장이 없는 도시의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태안도 상설시장이 꽤 잘 운영되고 있는 지역 중 하나. 옆 도시인 서산 또한 오일장이 없다. 이웃한 당진은 있는 것에 비해서 말이다. 사라졌던 오일장을 부활하면 어떨까? 궁금함에 오일장이 열리는 태안으로 향했다. 태안은 해안선이 길다. 천수만이 있는 안면도를 삥 돌아 서산과 공유하고 있는 가로림만까지 엄청나게 긴 해안선이 있다. 게다가 대천항 다음으로 큰 수산 어항인 신진도항도 품고 있어 해산물이 풍부하다. 태안시장의 특징은 풍부한 해산물이다. 게다가 육쪽마늘의 씨마늘 재배지인 가의도까지 있어 태안 마늘 또한 최고의 품질을 자랑한다. 말 그대로 바다와 육지에서 나는 것이 풍부하다는 이야기다.
오일장으로 떠나기 전 2024년 6월에 다시 열린 오일장 관련한 기사나 포스팅을 보고 갔다. Before와 After를 보기 위함이다. 시장이라는 게 사람과 사람의 말 없는 협의 때문에 형성이 된다고 생각한다. 강제로 무엇을 하기에는 모호한 무엇이 있다. 관 주도로 무엇을 했다고 했을 때 제대로 하는 꼴을 본 적이 없다. 수많은 시장에 있는 야시장과 청년몰의 흔적을 너무나 많이 봐왔기에 그랬다. 부활을 시켰으면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지만 그렇게 하는 경우는 드물다. 거의 없다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다. 오일장이 열리는 12월 3일 태안장을 찾았다. 역시나 였다. 생각보다 더 작았고 오일장이라 부르기 애매한 규모였다. 부활 시켰으면 안착할 때까지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지만 보통은 SNS 몇 번 띄우기 하고는 끝낸다. 그래서는 앞서 이야기한 청년몰이나 야시장과 같은 꼴이 나기 십상이다. 태안 오일장은 동부시장과 서부시장으로 나누는 경계의 길에서 열린다. 걷고 싶은 길이라 부르지만 왜 걷고 싶은 길인지는 잘 모르겠다. 갖다 붙이는 길이 어디 한두 개인가. 상인들이 막 좌판을 펴거나 장사를 시작하고 있었다. 처음 가는 시장에서 우선 해야 할 것은 탐색이다. 무엇이 있는지 살펴보는 것이 우선 해야 할 일. 길지 않는 거리의 좌우에 있는 것을 살펴보았다.
겨울이라 그런지 상품이 많아 보이지 않았다. 겨울과 여름은 재래시장에서 가장 힘든 시기 주변 날씨와 겨루기를 하면서 손님과도 겨뤄야 하니 이중삼중으로 힘들다. 지나는 이도 많이 없기에 상품이 가을과 봄에 비해 적어지기도 한다. 딱 그런 상태인 듯싶었다. 한 번 쓱 보는데 걸리는 시간은 5분이 채 안 되었다. 다시 돌아서 보는데 아까 보지 못한 잿팥을 가진 할매가 보인다. 늦가을에 꼭 사는 것이 토종 팥이다. 밥에 넣어 먹어도 맛있고 팥소를 만들어도 개량 팥보다 구수함과 고소함이 좋다. 토종 팥은 개량 팥에 비해 크기가 작지만 맛은 옹골차다.
잿팥은 말 그대로 팥이 붉지 않고 회색빛이다. 팥도 콩처럼 다양한 색이 있다. 노란 팥, 푸른 팥 등으로 말이다. 재래시장이나 오일장에서 가끔 사는 것이 두부다. 두부는 최신식 기술이 아닌 옛날식으로 한 것이 맛있다. 대기업에서 나오는 최고의 기술로 만드는 두부는 효율을 최고로 친다. 콩으로 만들 수 있는 최대의 두부가 미덕이다. 반면에 동네에서 만드는 두부는 기술력이 대기업과 비교하면 떨어지지만 맛은 월등히 좋다. 두부 맛을 보면 콩의 고소함이 남다르다.
시장이라는 게 살 게 없어 보여도 잘 살펴보면 살 것이 보인다. 정리 잘 되어 있는 대형할인점에서 맛보기 어려운 재미가 있다. 오일장을 5년 넘게 다니면서 느끼는 잔재미이자 맛있는 경험이다. 태안 오일장 구경은 조금만 하면 끝난다. 동부시장으로 들어가면 수산물 천국이 따로 없다. ‘ㅜ’ 모양으로 생긴 시장은 수산물 구성이 많다. 선어부터 횟감까지 다양하다. 사실, 여기 태안시장 말고도 긴 해안선을 가지 태안은 곳곳에 수산물 시장이 있다. 안면도는 방포, 안면읍, 백사장항에 수산물 시장이 있다. 위로는 신진도항과 모항 쪽에도 수산물 시장이 있다. 서해는 남해나 동해보다 수온이 낮다. 그래서 그쪽보다 겨울이 일찍 시작한다. 시장에는 굴이 두 종이 있다.
큼지막한 통영의 굴과 작은 서해의 굴이 있다. 두 개를 놓고 보면 크기 차이가 확연하게 난다. 뭐든 크면 맛있다고 하는데 굴은 아니다. 맛은 상관없고 식감과 향의 차이가 날 뿐이다. 하나를 먹더라도 크게 한 입 넣을 수 있는 게 통영 굴이라면 작아도 옹골찬 맛과 향을 내는 것이 서해 굴이다. 이제 시작인지라 서해 그것도 태안의 작은 해안가인 파도리에서 나온 것은 kg 당 2만 5천 원이었다. 한 봉 샀다.
나중에 집에 와서 맛보니 굴 향이 제대로 났다. 보통 물메기라 부르는 표준명 꼼치도 시장 여기저기서 보인다. 물메기라 부르는 어종은 따로 있다. 태안 온 김에 오랜만에 신진도까지 갔다. 읍내에서 차로 약 20분 정도 걸린다. 예전에 낚시와 출장으로 한 달이면 서너 번 다니던 길이었다. 항구 경매장 옆에는 수산물 시장이 있다. 여기도 꼼치와 갑오징어가 지천이다. 내 선택은 수게. 12월 이때가 사실은 게가 맛으로 빛나는 시기다.
가을에 살찌우는 것이 거의 끝내는 시점이 이 시점이다. 게마다 살이 꽉 차 있거니와 살만이 아닌 맛도 꽉 차 있을 시기가 이 시기다. 게다가 찾는 이가 적어 가격 또한 저렴하다. 서너 마리 올라가는 크기의 수게가 1kg 2만 5천 원이다. 장모님 들릴 게 3kg까지 사니 얼추 장보기는 끝났다. 이제 고속도로 올라타기 전 먹어야지.
태안에서 무엇을 먹을까? “광장식당의 바지락 김칫국? 이거 빼면 섭섭하지. 우럭젓국? 이건 혼자 먹기 어렵고” 혼잣말을 하다 선택은 굴짬뽕. 낚시 다니면 알게 된 집으로 내가 이 집이 있다는 것을 20년 전이었다. 적어도 한 자리에서 20년 넘게 영업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신진도항에서 나가는 길에 있으니 딱 좋다. 자리 잡고 주문하니 웍 소리가 나고 이내 나온다. 짬뽕에 들어가는 굴은 여기 것이 아닌 통영 굴이다. 따로 메뉴를 만들면 어떨까 싶은 생각을 잠시 했다. 굴 향이 더 좋을 거 같은데 말이다. 짬뽕 한 그릇 하고 서산으로 향한다. 집으로 바로 가지 않고 서산 동부시장으로 갔다. 시장 보러? 아니다. 호떡 먹으러 갔다. 여기 호떡은 내가 다녀본 전국의 100개가 넘는 시장 중에서 1티어로 꼽는 곳이다. 먹어보면 가끔 생각나는 집이다. 사람이 많이 보이면 흔히 ‘호떡집 불난 듯’이라는 표현을 한다.
이 집이 딱 그런 집이다. 항상 줄이 길게 서 있다. 주로 포장하는 손님. 가까운 거리라면 몰라도 호떡이 식을 정도의 거리는 포장을 비추. 식은 호떡의 식감이 별로다. 따듯한 것을 즉석에서 먹을 때 비로소 제맛이 난다. 한 장 1천 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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