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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제비파다

by 김진영

살면서 칼국수를 내 돈 주고 사 먹은 적이 딱 한 번 있다. 예전 오일장 취재를 다닐 때 한 번, 그것도 우연히 취재를 끝내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서천 오일장은 2, 7장이 선다. 서천수산물 특화시장 주변에 장이 서는 곳으로 수산물과 농산물을 저렴하게 살 수 있다. 다리만 건너면 군산이고, 군산 가기 전이 장항인지라 날만 잘 맞추면 장터 구경과 함께 과거의 모습이 남아 있는 군산이나 장항도 함께 여행할 수 있다.

암튼, 장터 취재를 끝내고 올라오던 길이었다. 보통은 고속도로를 타고 집으로 오지만 그날만큼은 달랐다. 서천에서 홍원항으로 방향을 잡고 국도 따라 올라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서쪽 바다 끄트머리가 붉게 물들기 시작하는 모습에 그리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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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이 질 때는 저녁 시간. 개벌 체험 마을에 노을 찍으러 갔다가 수족관 밀조개(개량조개, 명주조개)를 보고 처음이자 마지막 주문한 것이 칼국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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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이었고 그 이전이나 이후로도 칼국수를 돈 주고 사 먹은 적은 없다. 심지어 전주의 유명한 칼국수 집에서 돈 주고 사 먹은 것은 칼국수가 아닌 쫄면이었다.


이상하리만큼 칼국수에는 애정이 가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같은 반죽인 수제비는 좋아해도 칼국수의 식감이 싫었다. 심지어 어릴 적 집에서 칼국수 할 때도 나는 반죽을 따로 떼서 수제비를 해주거나 그냥 밥을 주었다. 별난 식성에 엄마만 고생했다. 그 업이 내 딸에게 전해진 듯싶다.

수제비 1.jpg 집에서도 가끔 해먹는다.

수제비는 좋아한다. 가능하면 찾아서 먹을 정도이고, 가끔은 해먹기도 한다. 반죽기에 우리 밀과 소금, 물을 넣고 20분 치대다가 숙성을 한다. 한 번 반죽을 해놓고 라제비를 끓이기도 하면서 며칠 먹는다. 얼마 전이었다. 수제비 생각이 났다. 동네에 수제비집은 나랑 맞지 않아 한 번 가고는 다시는 가지 않는다. 하나 더 있지만 거기도 비슷한. '양천구+수제비'로 검색했다. 몇몇 식당이 검색되어 나왔다. 그중에 눈에 띈 '백년국수'. 후기를 꼼꼼히 살폈다. 사진도 보면서 맛을 상상했다. 작은 식당인 듯, 게다가 출근 동선에서 떨어지지 않아 먹고 출근하면 딱일 듯. 늦은 점심 먹고 출근할 생각으로 일을 보고는 식당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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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이 지난 시간인지라 홀은 조용. 손님이 나 혼자다. 수제비를 주문(얼큰도 가능하지만, 난 그냥을 좋아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수제비가 나온다. 이어서 김치, 김치가 열무다. 이 집 제대로 골랐다는 생각이 김치부터 들었다. 열무가 있다는 것은 김치를 계절에 따라 낸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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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치기 중국산 배추김치를 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김치를 내주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수제비 등 음식과 궁합을 맞춘다는 것이다. 여름 배추김치는 맛없다. 비싸기만 할 뿐이다. 중요한 부분이지만, 다들 '내준다'는 목적에 부합만 하려고 한다. 그러니 여름에 배추김치를, 게다가 중국산 저가의 맛없는 배추김치를 내주는 것이다. 목적이 맛있다에 있다면 그러지 않는다. 김치부터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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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제비를 본다. 새우 한 마리 들어 있다. 수제비를 맛본다. 수제비는 처음부터 숟가락 들고 덤비면 안 된다. 입천장 덴다. 처음 뜨거울 때는 젓가락을 들어야 한다. 젓가락으로 수제비를 먹어야 적당한 온도로 먹을 수가 있다. 먹다가 국물이 식기 시작하면 그때 숟가락 들고 국물과 먹어야 한다. 수제비 먹고, 김치 먹고 하다 보니 반쯤 비었다. 고갤 돌려 메뉴판을 보니 꼬마김밥이 있다. 두 개 주문하고 기다리니 이내 나온다. 하나부터 주문 가능하다. 샀는지 아니면 만든 지는 묻지 않았다. 사이드 메뉴로 주문하기 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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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발견한 맛있는 수제비 집이다. 오가다 수제비 생각나면 갈 곳이 생겼다. 이 집도 칼국수가 메인이다. 후기도 칼국수가 월등히 많다. 하지만, 난 수제비파다. 칼국수 따위는 쳐다보지도 않는다. 그러나 가끔은 서천의 그 집이 가끔 생각날 때가 있다. 특히나 조개가 맛있어지는 계절이 다가오면 말이다. 조개의 계절? 시월이 지나면 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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