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까지 하고 있는 진로고민이라니
내가 나 스스로를 타인과 유일하게 비교하는 것, 그것은 바로 커리어다.
정확히 말하면 '노력의 정도', '지구력', '끈기' 이런 것들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매우 부러워하며 그러지 못하는 나를 자책한다. 나와 비슷한 또래의 사람들이 결혼, 승진, 이직, 사업 여러 가지 것들을 해내는 걸 보며 부정적인 감정이 올라오려고 하길래 나의 상황을 돌아보는 글을 써보기로 했다.
스물셋에 대학 졸업 후 중국어 어학연수와 대만 생활. 대학원 가겠다고 대만에서 워홀 비자로 체류하고 그 사이사이 여러 가지 일들을 단기로 했다. 그나마 나에게 오래 기억에 남는 일은 NGO에서 일하면서 중국 프로젝트 진행한 것. 스물여섯 여름, 대만에 있는 대학원에 합격한 뒤 비자를 바꾸러 들어왔다가 대뜸 서울에 있는 스타트업에 취직을 했다. 그렇게 다시는 대만에 돌아가지 않았다.
지금은 너무나 유명한 기업이 되었지만 그때는 고작 일곱 명 있던 스타트업에서 인턴 3개월, 그러다 남의 떡이 더 커 보여 친구네 회사로 이직해서 IT스타트업에서 2년을 일했다. 소셜 채팅 앱의 앱 관리자로 시작해서 데이팅 앱 기획, 블록체인 서비스 기획, 회사 내 기술개발 및 디자인을 제외한 각종 잡무를 담당했다. 2016년 여름부터 2018년 가을까지 2년 조금 넘은 회사 생활을 끝내고 나는 여행 콘텐츠 제작자의 길을 걸었다. 수입은 월급보다 배로 적었지만 만족도는 몇 배였다. 회사에서도 혼자 일했지만 스스로 뭔가를 해낸다는 느낌이 없었는데, 프리랜서로 혼자 일하는 나는 나의 작업물에 책임을 지고 쓰던 달던 그 결과를 오롯이 받아들이는 걸 좋아했다.
코로나 전에는 나 같은 유명하지 않은 콘텐츠 제작자들도 먹고 살만 했다. 특히 역사 취재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코로나 전까지만 해도 남들이 잘 가지 않는 여행지를 찾아서 역사적 사실과 함께 알리는 그런 기사들을 자주 썼는데, 그때만 해도 꽤 환영받았었다. 그런데 여행업이 죽으면서 탑티어 콘텐츠 제작자들도 살아남기 어려워졌고, 그런 와중에 비주류 콘텐츠를 만드는 나는 더 설 자리가 없어졌다. 내가 조금 더 배가 고팠어야 했는데 쓸데없는 곤조가 있었다. 기사 사진을 어떠한 앵글로 찍어달라는 에이전시의 요청을 듣고 '나는 남들이 시키는 대로 찍지 않을 거야'라고 외치며 계약 기간 종료 후 더이상 콘텐츠 제작을 하지 않기로 마음 먹었다. 물론 클라이언트도 나를 찾지 않았을거다.
프리랜서 생활을 마치고 예전에 같이 일하던 분들의 프로젝트에 다시 합류해서 데이팅 앱을 만드는 일을 했다. 서비스 기획과 운영하고 있는 앱의 관리. 보통 비대면 CS, 각종 커뮤니케이션 업무를 했고 인사이트 조사 이런 일들을 하면서 기획에 반영할 수 있는 것들을 가지고 오는 역할들을 했다. 그렇게 2020년 12월부터 2022년 5월. 1년 반을 일하고 나는 드디어 다시 대면 근무를 하게 된다. 이유는 간단했다. 재택근무를 하기 때문에 여행을 하면서 일을 했는데 영국에서 한 달 가까이 머무르면서 돈을 너무 많이 써버린 거다. 내가 생각한 금액보다. 그래서 돈을 더 벌어야 했고 그래서 돈을 더 주는 곳으로 이직해야 했다.
2022년 5월부터 2023년 10월까지 나는 핀테크 기업에서 홍보, 마케팅 업무를 했다. 기술과 금융 인력 중심의 회사였기에 적은 마케팅 인력으로 콘텐츠 제작, 관리, 광고 집행부터 PR, 대외 커뮤니케이션 등 각종 업무를 다했다. 늘 10명 남짓 규모의 회사에서 일하다가 높은 빌딩 건물 한층 전체를 다 쓰는 (그럼에도 다른 회사에 비하면 너무나 적은 규모인) 회사를 다니는 게 처음이라 결재를 올리는 것도 처음, 연차를 신청하는 것도, 점심시간을 꼬박꼬박 지켜서 12시부터 1시까지 쉬는 것도 다 처음이었다. 그래서 재밌었다. 그 생활이 재밌었다. 내 능력대비 많은 월급을 받는다고 생각했기에 (물론 그 연봉으로 네고한 것까지 능력으로 쳐야겠지만) 또 어느 순간 마음이 조급해졌다. 아웃풋이 어딨지? 1년 반동안 일하는 동안 나는 여기서 무엇을 배웠지? 나 여기서 다른 회사로 이직하려고 하면 나는 뭘 했다고 말할 수 있는 거지? 이 회사가 나를 성장시킬 수 있나? 나를 가르쳐줄 선배가 있나? 그 모든 대답에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없었다.
스타트업 2년, 프리랜서 2년, 다시 스타트업 3년.
남들보다 늦었다고 쳐도 사회생활 7년 차인데 나는 아직도 내가 뭘 했는지 모르겠다. 링크드인에 마케터와 프리랜서 콘텐츠 제작자라고 써놨지만 마케팅 뭐 어떤 거 할 수 있냐고 물어보면 뭘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을까 참 작아진다. 너무 이곳저곳 대충 적당한 스페셜리스트로 잔잔하게 살아왔던 건 아닐까. 나를 나 스스로의 컴포트 존에 너무 몰아넣고 말이다.
그럼 문과의 딱히 특출난 전문 분야가 없는 상태에서 나는 뭘 하면서 50년을 더 일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한풀 꺾였다고 해도 여전히 사랑받는 개발자? 그렇게 오래 개발회사에서 일했는데 배울거면 진작 배웠겠지. 그럼 콘텐츠 제작자? 글과 사진은 나의 예술적 표현이라는 말도 안되는 마인드를 다 접어두는 댓가로 받는 수입이 그정도라면 차라리 월급쟁이가 낫지 않겠어?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도 그래도 잘하는게 뭐지? 그리고 잘하면서도 내가 좋아하는게 뭐지? 그러면서도 내가 살고싶은 삶의 모양은 어떤거지?
그래서 아빠에게 어학연수를 가겠다고 했다. 내가 남들보다 좀 더 잘하는 거라고는 말하고 글을 쓰고 표현하는 것인데 나는 외국 생활을 좋아하고 중국어를 좋아하니, 언어적 능력을 더 키워서 그쪽으로 발전시켜보겠다고. 나이 서른 셋 먹고 결혼도 안한 막내딸이 별로 모아놓은 돈도 없는데 그 돈 써서 어학연수 가겠다는 걸 듣고도 아빠는 별말씀 없으셨다. "아빠 인생 기니까 나 이제라도 인생 2막을 다시 준비하려고"라는 나의 말에 "인생 별로 안길다." 라고 말씀하실 뿐이었다.
어학연수를 가겠다고 생각하고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것저것 찾아보면서 고민하는데 두려웠다. '누구는 억대 연봉을 받는다던데.', '누구는 애를 둘이나 낳았다는데.' '지금 있는 돈마저 다 홀라당 까먹고 실패하면 진짜 나중에 어떻게 일어설래.' 한참 뒤쳐져도 뒤쳐진것 같은 이 기분.
그치만 어떡하겠어. 사람마다 자신의 시간은 다르게 흘러가고, 각자 가지고 있는 역량이 다 다른 것을.
신은 나에게 빨리 말하고 빨리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지만, 오래 일하고 꾸준히 버티는 능력을 좀 덜 주신 것 뿐이겠지. 그리고 내가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가진 건, 내가 가지지 못한 그 오래, 꾸준히 버티는 그 능력이 있었기에 성취할 수 있었던 것일테고. 내가 이곳 저곳 떠돌며 가진 얻은 경험은 어쩌면 한 곳에 잘 버티는 사람들은 영원히 가지지 못한 삶의 방식일테니까. 인생 원하는 걸 뭐든 다 가질 순 없는거니까. 나는 커리어와 돈을 얻진 못했지만, 수많은 사람과 잊지 못할 추억(..)을 얻었잖아? 거기에 뭐 사랑과 재미도 좀 더 더해서.
그치만 새로운 해부터는 조금 다짐을 해보련다. 때려치고 싶어도 더이상 돌아갈 곳이 없다는 것을 잊지 말기로. 진짜로 내가 해보고 싶은 것들, 다 해보고 끝까지 시도해보고 그러고 성공이든 실패든 스스로 판단해보자고. 뭐든 '끝까지' '목표한 바까지는' 일단 얼마나 걸리든, 얼마가 들던 버티고 버텨서 해보는 것으로. 내년에는 끈기 있고 독하게 일하는 사람 그만 부러워하고, 내가 그 사람 되는걸로. 내 인생에서 제일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하는 2007년, 2016년 그 때를 2024년에 다시 만들어보는걸로.
자격지심을 달래고자 쓰기 시작한 글인데 역시나 글을 쓰면 기분이 좀 풀린다.
다음 글은 새해 목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