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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온 Jan 02. 2021

이젠 만으로도 서른이 되었다

2020년 12월 31일부터 2021년 1월 2일까지


12월 31일. 선물로 받은 케이크 기프트콘으로 조각 케익 하나를 바꾸었다.

원래 같았으면 다른 상품의 기프트콘이 와도 케익은 무조건 당근 케익을 골랐을텐데 평소와 다르게 딸기 케익을, 그것도 크레이프를 골랐다.


다가오는 해에는 나의 comfort zone (=당근케익)을 벗어나서 새로운 도전을 하면서 거기서 얻는 재미를 마음껏 느끼자는 의미였다. 딸기 크레이프 케익은 성공적이었고 이제는 만으로도 빼박 30대가 되었기때문에 서랍장에 파묻혀있던 숫자초 3을 꺼내 소원을 빌었다.



친구가 근처에 볼일이 있어서 들렀다는 말에 어짜피 저녁을 해먹을 예정이었으니 밥이나 먹고 가라고 했다. 차린게 별로 없으니 제발 빈손으로 오라는 말에도 친구는 와인 두병을 사왔다. 한병은 오늘 같이 마실 것. 한 병은 우리집에 선물할 것.


밤이 깊지 않았을 때 시작한 이야기는 해가 바뀌는 것을 알아채지 못할만큼 이어졌고 나는 카운트다운을 놓친게 아쉬워 친구를 보내고 다른 나라의 카운트다운을 찾아봤다. 우리나라 시간으로 새벽 다섯시에 있었던 두바이의 카운트다운까지 보고 나서야 잠에 들었다.



새해가 밝았다. 그러고보니 새벽 인스타그램 라이브도 켰네. 신종 주사. 왜 서른이 넘어서 이상한 술버릇이 생긴건가. 문제 상황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예상에 없던 과음과 인스타그램 라이브(+ 평소 친분이 없는 사람에게 갑자기 말을 많이 건다거나 하는 행위)들은 어디에서 오는가.


(1) 예상에 없던 과음 : 관심사가 맞는 편안한 관계의 사람일때, 내가 집에 갈 걱정을 따로 안해도 되는 곳, 나만큼 술을 많이 마시는 사람과 함께일때 일어난다.

(2) 평소보다 말이 많아지고 지나치게 사교적으로 변하는   :  소셜 미디어 지인들은 실제로 알지 못해도 내적친분이 있다고 느껴져 음주 상태에서 연락을 하게 되면 평소보다 훨씬 말이 많아진다.


(3) 인스타 라이브를 켜는 이유 : 삶이 무미건조하거나 외롭거나. 아니면 지금 상황이 재밌어서 더 많은 사람과 같이 공유하고 싶을 때. 아주 재미있거나 아니면 아주 지루하거나.


그럼 이걸 어떻게 해결하느냐. 가장 쉬운 방법은 음주문화와 거리가 먼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 만약 술을 많이 마시는 사람과 어울려야한다면 집에 갈 걱정과 술값 걱정을 충분히 할 수 있는 곳에서 노는 것. 마지막으로 인스타그램을 하지 않는 것.



인스타그램에 보니 일출을 보고 온 사람들. 산에 오른 사람들 다양하다. 산이라도 가야 부지런한 사람 대열에 오를 수 있는건가싶어 앞산을 다녀올까 하다가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로 새해를 시작하기로 했다.


집안 구석구석. 특히 하고나면 세상 뿌듯한 부엌 청소를 했다. 그릇을 하나하나 마른 수건으로 닦았고 배수구까지 싹싹 때를 벗겨냈다. 집안 곳곳 청소기를 밀고 바닥까지 걸레질을 했다. 청소가 끝난 후엔 새해에 붙이려고 만들어둔 비전보드의 사진들을 꺼내 집안 곳곳에 붙여두었다.



집안 식물들을 찬찬히 돌보았다. 그저 일주일에 한번 물만 줬었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레몬나무의 잎이 다 말려져있었다. 원인은 아마도 과습. 자갈을 드러내고 흙을 파내고 하루종일 선풍기를 켜주었다. 분갈이를 위해 흙도 주문했고 어떻게하면 레몬이 조금이라도 더 건강하게 살수 있는지 찾아보았다.



청소를 끝내고 그제서야 소고기 쌀국수 한 그릇을 배달시켜 먹으며 뉴욕의 볼드랍을 봤다. 뉴욕부터 시작해서 엘에이까지. 우리나라 하루 놓쳤다고 징글징글하게 전세계의 카운트다운을 찾아봤다. 그래도 3, 2, 1 하는 그 순간의 설렘은 아직까지 제대로 느끼고 싶다.



청소를 해서 묵은때를 벗겨내었고 반년간 그렇게 주정뱅이의 삶으로 힘들어했던 내가 다시 오랜만에 그때와 비슷한 상황을 마주하고 다른 방법으로 이겨내는 과정을 해냈다. 예전엔 '내가 왜 그랬지? 내가 왜 이럴까?'라는 감정적 자책으로 과음한 다음날을 보냈었다면 이번엔 정말로 '내가 어떠한 이유에서 이렇게 행동했고 내가 이런걸 싫어하는 이유는 무엇이며 그렇다면 앞으로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로 변화했다.


일찍 잠에 들었다. 눈을 뜨고 나서 습관적으로 인스타그램. 무의식적으로 켰다가 지워버렸다. '나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두는 것들을 옆에 두자'라는 다짐 아래에서 보면 소셜미디어는 잠시 쉬어가도 되는 시간인것 같았다. 그동안은 소셜 미디어에 컨텐츠를 올리며 돈을 벌어야했기에 트렌드도 알아야하고 주변 사람들과 랜선 소통도 놓칠 수 없어서 늘 붙들고 있었다면 지금은 어짜피 쉬어가는 마당에 인스타그램 더본다고 돈이 생기는것도 아니고 덜본다고 돈을 잃는것도 아니니 조금 더 여유롭고 평화로운 마음을 가지기로 했다.


그래서 지금 좋다. 내가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이 더 길어지는 기분.

떠올린 김에 인스타그램도 잠시 비활성화를 시켰다. 잠시 중독되어있었던 소셜미디어에서 벗어나 나의 본질에 조금 더 집중해보려고 한다. 분명 도움이 될거라 믿는다.



새해 둘쨋날 산에 올랐다. 새해라서가 아니라 오늘부터 등산을 좀 더 열심히 해보자는 마음으로 다녀왔다. 3개월만에 몸이 잔뜩 무거워진 후에 올랐더니 기록이 예전보다 많이 느려졌지만 그래도 오늘 한걸음 다녀온 것만으로도 충분히 기쁘다. 기쁜 마음으로 집에 오는 길 몇일전부터 먹고 싶었던 찰떡 아이스를 샀다.


올해는 나에게 도움이 되는 것들을 가까이하고 내가 나 스스로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게 만드는 사람과 어울릴 것이다. 눈 앞의 즐거움보다는 장기적으로 나에게 가져다주는 기쁨을 위해서 절제하고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려고 한다. 올해는 나를 시험에 들게하는, 나를 괴롭게 하는 모든것들을 현명하게 이겨내고 나만의 방법으로 잘 해결할 수 있기를. 그런 힘들이 스스로 잘 길러지기를 바라본다.


Happy new yea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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