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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온 Oct 26. 2023

사랑은 사람의 눈을 왜 멀게 하나

거짓말 그거 왜 하는건데


요 몇일 대한민국을 뒤흔든 사기 결혼 스캔들이 있었다. 유명 국가대표 선수의 결혼 발표 후 결혼 상대자에 대한 여러가지 의문을 가진 네티즌 수사대가 조사에 나섰고 디스패치까지 등판하여 이 모든것이 사기에서 비롯된 것임을 밝혔다. 


평소에 자극적인 뉴스를 즐겨 보는 편도 아니고, 나는 솔로-특히나 16기- 와 같은 도파민 넘치는 예능도 좋아하지 않는터라 이런 뉴스는 흘려 읽곤 하는데 어째 이 사건은 계속해서 찾아보게 되었다. 어쩌면 '사랑하는 사람의 거짓말'이라는 것 때문이었을까. 멀리서 보면 상상할 수 없는,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싶은 먼 나라 이야기 같지만 막상 그 거짓말 안에 들어가면 눈이 멀고 귀를 닫아버리게 되는거다. 아주 제대로 쿵 하고 충격을 받기 전까진 말이다. 


왜 그랬을까. 어떻게 그렇게 속았을까. 얼마나 속상할까. 얼마나 힘들까. 

이런 생각을 하다가 오래전 사랑하는 사람의 거짓말을 알게된 나의 모습이 문득 떠올랐다. 




 "오빠. 그날 어디 있었어?"


연인과 사귀기 시작한지 얼마 안된 시점이었다. 회사에서 제주로 워크샵을 가게 되었고 금요일에 끝나는 일정이라 주말에 남자친구에게 오면 어떻겠냐고 가볍게 물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꽤나 거리도 멀었고 비행기까지 타야하는데 24시간도 못 있는게 그닥 효율적인 일정은 아닌지라 올거란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그는 내 말이 끝나자마자 비행기표를 구매했다. 


하지만 몇시간 뒤 그는 집안 행사로 그 주 주말에 고향에 내려가봐야 할 것 같다며 제주행을 취소해도 되냐고 물었다. 편찮으신 친척어른을 이야기 하며 벌초를 할 일손이 모자라 멀리 사는 본인까지 가서 도와야한다며. 어짜피 나는 제주에 있을 생각이었고 그가 제주에 오지 않으면 데이트를 안하는거니 그가 어디에 있든 상관없었다. 더욱이 타지 생활을 오래했으니 명절 아닌 때에 가족 행사에 참여하는 것도 좋을것 같다 생각했고 전혀 서운함 없이 그가 비행기표 취소하는걸 이해했다. 그렇게 나는 제주에서 그는 그의 고향에서 각자의 주말을 보냈다. 그가 고향에서 올라오는 길 잠시 나에게 들러 함께 시간을 보냈는데 그것조차 고맙고 좋았을 뿐이었다.


두세달 쯤 지났을까. 함께하는 여행을 계획하던 중이었다. 나는 컴퓨터 앞에서, 그는 침대에 누워 휴대폰으로 숙소를 알아보던 차에 그는 스르륵 잠이 들었다. 한참 에어비엔비를 보고 있는데 모니터 우측 하단에 '카톡' 하는 알림과 함께 여자 이름, 그리고 사진이 전송되었다. 시간은 오후 10시가 다 되어 가던 시간. 이성친구도 없고 바빠서 친구 만날 시간도 없는 그인것을 너무 잘 알았기에 이 늦은 시간 달랑 사진 한장만 보낸 여자의 정체가 너무 궁금해 미칠것만 같았다. 이걸 봐야 하나 말아야 하나. 1분동안 매 초 마다 고민했다. 


아, 몰라. 볼래.

 PC 카톡을 열어 그 사진을 눌렀는데 그가 활동하는 동호회의 홍보 배너가 이미지로 온 거였다. 뭐야. 역시 별거 아니네. 하고 카카오톡을 닫으려는 찰나. 목록 하단에 여자 이름과 알람이 꺼져있는 아이콘이 나란히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어 이거 뭔가 있다.


여자의 직감이란게 이런 걸까. 이걸 누르는 순간 걷잡을 수 없을거란 것이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그와 동시에 이걸 열지 않으면 난 몇날 몇일을 이것에 대해 골머리를 앓다가 결국은, 결국은 싸움으로 이어질거라는 것도 알았다. 그래. 어쩔수 없다. 남자친구의 대화창을 보는 치졸한 여자가 되더라도 나는 봐야겠더라. 안그러면 답답하고 궁금해서 더 빨리 미쳐버렸을지도 모르니까.


신원 미상의 여자는 알고보니 나와 만나기 훨씬 전에 부모님 중매로 선을 봤던 여자였다. 이름과 대화 내용을 보니 추측이 가능했다. 마음이 조금 놓였다. 애인은 그녀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둘의 대화는 그리 잦지 않았다. 많아봐야 이틀에 한 두번 장문의 문자를 주고 받는 정도. 게다가 그녀의 발언이 대부분을 이루고 있었고 내 연인은 몇 개의 메세지를 받고 한참 뒤에 한번에 몰아서 답장을 하는 형태였다. 


이미 열어버린 판도라의 상자. 피씨 카톡은 피씨 카톡으로 대화한 내역이 아니면 물결선 같은게 생기고 더이상 표시 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다 알아야겠더라. 하필 그 시절 내 연인은 휴대폰을 자동으로 꺼지게 해두지 않았다. 업무로 사용하면서 휴대폰이 꺼지면 지문 인식을 다시 해야하는 번거로움 때문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래서 일부러 스스로 끄지 않는 이상 늘 휴대폰이 밝게 켜져있었다. 그랬다. 그는 숙소를 알아보다 잠이 들었고 그래서 여전히 그 숙소 페이지에 머물러 있었다. 나는 그의 옆에 있는 휴대폰을 집어 들고 카카오톡을 켜서 그녀와의 카톡을 읽었다. 


그게 실수임을 수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알았지만, 그럼에도 이 모든 결말을 알고서 그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나는 똑같이 행동했을거다. 휴대폰의 카카오톡 대화창을 켜자 차라리 몰랐으면 좋았을, 별것도 아닐 수 있었던 거짓말들이 줄줄이 이어졌다. 


제일 가볍고 이해할 수 있었던 건 나에게 말하지 않고 그녀를 만난던 것. 명절 때 그가 고향을 방문하고 돌아오는 길 그녀를 만나 점심을 먹고, 그녀가 바래다주어 터미널까지 그녀의 차를 타고 온 것이었다. 그럴 수 있지. 착한 아들인 그에게 부모님이 중매한 여자를 매몰차게 거절하긴 어려웠을꺼고, 그 멀리 시골까지 갔으니 밥 한끼 먹고 교통편 불편하니 그래 차 타고 올수 있지. 그리고 굳이 그래봤자 한두시간 되는 여정에 괜히 여자친구 걱정시킬 요량으로 말할 필요 없지. 그래. 그럴 수 있지. 그래 충분히 그럴 수 있어. 


하지만 서서히 판도라의 상자처럼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이어졌다. 장교로 전역한 그는 3박 4일인가 2박 3일간 예비군을 가야했고 그래서 나에게는 휴대폰을 아예 쓰지 못한다고 했었다. 그렇구나. '역시 장교는 좀 예비군도 제대로 하나보네?'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그렇게 몇일간 연락이 안된 상태로 지냈다. 그런데 가장 그녀와 연락을 자주했던 시점이 바로 나와 연락을 하지 않았던, 그의 말에 의하면 연락을 할 수 없었던 예비군 훈련 때였던거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긴 시간 연락이 안되는 것에 보고싶은 마음에 반차를 내고 서울에서 시골까지 버스를 타고 그가 예비군 훈련하는 부대 근처로 가서 기다리기까지 했다. 내가 영동 영서를 가로지르는 빅 호구였네. 


나를 속였다는 사실로 부글부글 속을 끓이며 카톡을 읽던 차에 또 하나 발견한 사실. 벌초에 갑자기 가야해 제주도에 가지 못한다던 그 날 알고보니 그는 그가 속한 역사 동호회의 필드 트립을 다녀왔더라. 그리고 그 박물관에서 본 것들에 대해서 그녀에게 이야기 했다. 빗살무늬 토기의 사진을 보내고 있는 그 대화방을 보며 나는 입이 떡 벌어졌다. 손이 덜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명절에 그냥 한 끼 밥 먹고 그것에 대해서 함구했더라면 장난스레 '뭐야~ 오빠 여자랑 밥 먹고 왜 말 안함, 딱 걸림~' 하고 넘어갔을 텐데 이건 우리 관계를 뒤흔들만한 큰 거짓말이었다. 갑자기 무서워졌다. 지금 세상 모르고 코 골고 자고 있는 이 남자. 몇 달 동안 늘 평온한 얼굴로, 어쩌면 내가 더 호들갑 떠는것처럼 내가 유난인것처럼 몰아간 이 사람은 내가 아는 사람이 맞나.


내가 본 흔적을 지우고 그의 손 옆에 다시 휴대폰을 엎어두고 조용히 거실로 나가 소파 누웠다. 잠을 잘 수 없는 환경이었지만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렇게 몇시간 뒤 우리의 휴가가 시작되었고 우리는 자동차 여행을 했다. 아름다운 시골 풍경과 여유로운 모습에 중간 중간 좋은 순간들이 훨씬 많았지만 그럴때마다 그의 거짓말과 태연했던 표정들이 떠올라 관자놀이가 찌릿하고 울렸다. 표정 관리를 잘 하는 편은 아닌데 이건 너무 무거운 문제여서 오히려 표정관리가 잘 되기까지 했다. 내가 이것에 대해 동요하고 있는 걸 알리고 싶지 않았다. 나 스스로 마음을 다스릴 시간이 필요했다. 내가 마음의 결정을 한 뒤에 그가 알아채길 바랬다. 


판도라의 상자를 연 후 사흘쯤 지났을까, 우리는 남도의 어느 바닷가 마을에서 하루를 묵었다. 숙소 문을 열고 들어와 어두운 방 밖으로 통유리에 반짝이는 바다와 항구의 모습을 마주하는데 갑자기 울컥했다. 아름다운 것을 보고도 아름다움을 그 자체로 느끼지 못하는 내 자신이 처량하게 느껴졌다. 침대에 걸터 앉아 아무것도 모르는 그에게 나는 대뜸 말했다.



"오빠. 왜 나한테 거짓말 했어?"

                    




* 본 내용은 제 시각에서 서술된 것으로 상대방의 시각에서는 다르게 해석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별다른 msg를 첨가하지 않았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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