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적기의 문화 구색

by 라이팅

‘구색을 맞추다’라는 말이 있다. 요즘에는 불필요한 요소를 그저 남들에게 보이기 위해서나 별 가치 없는 습성에 따라 억지로 끼어맞춘다는 부정적인 뜻으로 많이 쓰이는 듯하다. 그러나 ‘골고루 모양을 갖춘다’는 단어 본래의 의미처럼, 갖추어야 할 것은 갖춰야 제대로 맵시가 나는 법이다.

대한민국 국적기 ‘대한항공’의 ‘기내 엔터테인먼트’ 이야기다.

지난 3월 대한항공을 이용해 해외로 나갈 일 있었는데, 기내에서 제공되는 콘텐츠에 ‘대한민국의 음악’, 즉 ‘국악’이 없었다. 그나마 얼마 전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정년이’의 OST가 ‘구색을 맞추고 있는 듯’ 했으나, 이후에는 그마저 사라져서, 우리나라 국적기에 우리 국악에 대한 영상도, 음악도 아예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국악의 대중화, 활성화, 저변의 확대’는 늘 우리 사회의 숙제였다. 물론 지구촌의 빠른 문화 흐름으로 전 인류가 비슷한 문화예술, 특히 음악을 공유하고 있고, 전 세계가 열광하고 있는 K-pop도 그 덕을 본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럼에도 국악 향유가 남다르게 느껴질 만큼 여전히 낯설다는 것은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할 문제이다. 국악은 오천년 역사를 내려오면서 한민족의 정서와 혼을 구성한 우리만의 고유한 예술이며, 우리가 계승하지 않으면 그 누구도 대신 이를 이어가 주지 않는 우리의 전통이기 때문이다.

국악의 발전이 더딘 이유 중 하나는, ‘극히 낮은 노출의 빈도’에 있다고 본다. 한국은 식민지와 전쟁, 근대화, 산업화라는 격변의 고비, 고비를 넘으며 고유의 예술을 지키는데 더 많은 수고가 들 수 밖에 없었고, 그 가운데 국악은 명맥을 유지하는 것이 최선이 되어 버렸다. 몇 세대에 걸친 이러한 결핍으로, 한국인은 국악 향유의 기회를 놓쳐버렸고, 익숙해야 할 전통음악을 오히려 특별하게 여기게 되었다. 이러한 문제를 타개하기 위해 특히 문화예술계에서 다방면의 노력을 기울여 왔으나, 기대를 채우기에는 역불급이었다.

이와 달리 바다 건너에서는 우리 국악에 대한 매우 신선한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해외에서 열리는 국악 공연마다 현지인들이 자리를 가득 메우고 있으며, ‘센세이션’이라고 할만큼 뜨거운 현지 반응에 우리 국악인들이 도리어 놀라곤 한다. 나아가 한국으로 국악을 배우기 위해 유학 오는 외국인들이 심심찮게 늘고 있다. 낯선 문화에 대한 호기심과 가사와 해설이 제공되어 깊이있는 체험을 가능하게 한다는 외국 공연의 특징을 감안한다해도, 우리 국악에 우리보다 더 감동하고 기립박수를 날리는 모습을 보면 국악에는 인간의 보편적인 감정을 건드는 ‘무언가’가 있다는 확신이 들 수밖에 없다.

그런데 우리나라 국적기에 실린 그 많은 음악 중에 우리 음악 국악은 빠져있다.

우리 국적기에 실린 우리 음악은,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구색이다. 그렇기에 설령 국악이 당장 ‘안 팔리는’ 분야라고 해도, 우리 국적기라면 응당 갖춰야 한다. 더구나 다양한 승객들의 취향을 적극 고려할만한 항공서비스이지 않는가.

비행기 안에서 만난 국악이 어느 외국인에게는 한국의 이미지로 각인될 수 있고, K-pop만큼 반하고 즐길 수 있는 통로가 될 수 있다. 이는 한국인에게도 마찬가지로, 국악에 대한 자연스러운 노출로 국악 애호 인구를 늘리는 귀한 기회가 되고, 국악의 저변확대를 위해 동분서주하는 문화예술계에 예상보다 큰 힘이 될 수 있다.

‘전통문화의 계승·발전’이라는 거창한 단어를 굳이 들먹이지 않아도, 한국 국적기에서 한국 문화 정수를 만나는 반가움을 느끼고 싶다. 대한항공이 한국의 혼(魂), 정(精), 미(美)를 전하는 첫째가는 기업이라는데 자부심을 갖고 정성스럽게 나서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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