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근과 국악

by 라이팅

입사하고 인턴이 끝나자마자, 맡는 업무마다 야근이 '쏟아졌다'. 주말도 반납하며 전화통을 붙들고 시달리나 했더니, 바뀐 부서에서는 퇴근 자체가 평균 새벽 2시가 되었다. 누가 시킨게 아니라, 일 자체가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었다. 새벽 두시에 집에 들어오면 오히려 잠이 달아난다. 평일에는 계속 각성상태로 있다가 주말에 몰아자는 형국이었다. 그러다보니 건강도 생활도 말이 아니었다. 겨우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며, 마지막 준비로 양말을 신으면, '아 죽고싶다'라는 말이 그냥 머리에서 튀어나왔다. 직장에서는 차마 감정을 못 내비치다가 집에만 오면 상당히 예민해졌다. 그 정도가 심해지니 귀여워 쪽쪽 빨던 반려견을 발로 차질 않나, 식사 중에 갑자기 화를 내며 먹던 국밥을 몸 속으로 마구 들이밀며 폭식을 하지 않나, 내 스스로에게 폭력적이 되는 것을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야근이 준 그로기, 번아웃, 그리고 번아웃 자살 직전이었다.


야근으로 달아난 잠, 그러나 피곤하고 지친 몸과 뇌. 남들은 새벽이라고 하는 한밤중에 할 수 있는거라곤 텔레비전 채널을 처음부터 끝까지 돌리는 것이었다.


그러다 멈춘 한 채널에서 명랑하게 생긴 한 여성 명창이 부채 끝과 끝을 양손가락을 대어 잡고는 구성지게 소리하고 있었다. '판소리'라는 것만 알뿐, 사실 '판소리'는 몰랐다. 판소리는 재미없고 알 수 없는 옛 가락이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가만히 듣고 있노라니, 누가 곤장맞고 있는 대목인 듯 했다. 근데 내 엉덩이가 뭐에 맞은 듯 아파왔다. 하나요 둘이요 하는거 같긴 한데 잘 모르겠고, 그럴 때마다 엉덩이 아픈 듯 하니 희안했다. 그리고 그 기억이 일상을 사는 중에 어쩌다 나고 또났다.


열흘이 지났을 때인지 한달이 지났을 때인지, 꽤 지나서 인터넷을 뒤졌다. 내가 들은 건 춘향가에서 춘향이 매맞는 장면, '십장가'였다.

어머 보시게, 내 엉덩이기 아프더니만 진짜 매맞는 노래였구만.


그리고 새벽 한 두시 들어오면 무슨 소린지도 모르는 판소리를 듣는게 하루의 피로를 푸는 낙이 되었다.

그러다보니 어느날은 판소리를 듣는데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어떤 눈대목이었는지 지금은 기억이 안나지만, 이것이 판소리로구나 싶었다.

눈앞 허공에 풍경이, 사람이, 이야기가 그려졌다. 이것이 판소리의 매력이었다.


심청이 모친이 죽을 땐 눈물이 날 수 밖에 없고, 흥보가 마누라랑 박을 탈 때는 창자가 조금 빨리 불렀으면 좋겠다 싶을 정도로 박터지길 기다리게 되고, 바다 속 용궁에 들어간 토끼가 본인은 토끼가 아니라 개요, 소요 하는건 얼마나 재미난지. 자라가 죽기살기로 대드니 호랑이가 자라한테 지는 대목에서는 나도 자라같은 지혜를 갖겠다는 교훈까지 얻는다. 심청 아버지가 목욕하러 냇물에 들어갈 때는 물소리가 콸콸 들리는 듯하고, '에헤야 방아요~' 하는 노래를 들을 때는 가사 속 애호박 째기가 먹고 싶어진다.


창자가 숨이 끊어질 정도로 노래를 넘고 넘어 부르며, 멈췄다 이어졌다, 잡았다 놓았다 하는 것은 기교라고 표현하기에는 너무 미안한 엄청난 예술혼이었다. 그러다보니 좋아하는 '판소리 가수'도 생겨났다.

글쎼 이렇게 재미난 판소리를 고등학교 시절 국어 교과서에서 어렵게 밑줄을 쳐가며 사설로 배웠으니, 그 매력과 재미를 다 알 수가 있나.

일 때문에 죽겠다 하던 것이, 판소리가, 국악 전 분야가 좋아 죽겄다가 되어 버렸다.


여전히 주말에는 커피를 마시지 않으면 맥이 하나도 없게 된다. 하지만 오전에 커피 한잔 마시면, 오후에는 국악을 보고 들으며 스트레스를 달랜다.


그리고 관심이 생기다보니, 이 바쁜 중에 공부아닌 공부에도 손을 뻗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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