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생각이 많은 아이였다. 자려고 누우면 생각을 헤아리며 노느라 잠드는 데 오래 걸렸다. 하나의 생각으로 시작해 잠깐의 시간에도 전혀 연관 없어 보이는 다른 생각에 다다르는데, 그것을 다시 되짚어 거꾸로 가본다.
일부러 상상을 해보기도 했다. 좋아하는 연예인과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 드라마 같은 이야기들. 이런 생각은 괜찮았다.
사람들과 세상을 이해하는 것에 있어서 생각은 방해만 되었다. 누군가의 반응에 생각을 덧붙이고 나의 가치에 대한 생각도 굴리고 굴려 생각이 커지면 처음에는 느낌일 뿐이던 씨앗이 잔뜩 찌푸린 얼굴을 가진 실체 있는 무언가가 되어 있었다. 이런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그 생각이라는 것이 나를 갉아먹을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그래도 생각은 살기 위해 꼭 필요한 유용한 것인 줄 알았다. 생각이 없다는 말은 꽤 엄청난 비난이니까. '생각 없는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열심히 생각을 굴리며 살았다. 어릴 때부터 '진중하다'는 말을 들었던 그 어린이의 비결은 자극과 반응 사이에 넉넉한 생각의 시간을 가지는 것이었다. 쉽게 말해, 누가 툭 치면 '아! 왜 그래?!' 하기 전에 생각을 한다는 것이다. 차분하다, 진중하다는 칭찬으로 조각되어 가며, 나는 생각 많은 나 자신을 자랑스레 여기기까지 했다.
남편과 살면서 그가 주는 자극대로 생각을 하자니 저 사람에게 나는 아무 가치가 없는 인간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생각 있게 사는 사람'의 멀쩡한 뇌를 자연스러운 과정을 거쳐 도출된 결론인데, 그래도 이건 아니지 않나. 내 뇌를 계속 이렇게 철석같이 믿어도 되는 건가, 그제야 나는 생각으로 가득 찬 내 뇌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물론, '생각'은 믿을 놈이 못된다는 것을 안 것은 내 뇌의 열공 덕이었다. 상담심리학 공부로 얻은 가장 큰 배움은, '생각은 사실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이었다. 뇌는 40년 간 충분히 생각을 했으니 이제 뒤로 좀 물러나 있어도 된다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도 삶의 균형을 찾는 것에 큰 진전이 있었다.
다음 단계의 진전은 요가를 통해 왔다. 사실, 요가를 시작한 초반에 내가 한 것은 요가 중 '아사나', 몸을 움직여 수련하는 것 위주였으므로, 어느 종류의 몸을 쓰는 운동이더라도 비슷한 기능을 한다고 생각한다. 포인트는 '생각'에는 거리를 두고 '느낌'에 집중하기다. 몸을 움직이면서 몸의 곳곳으로 숨의 기운을 느끼는 것이 생각이 들어올 여지는 줄였고 '명료함'의 느낌은 키웠다. 육체적 요가를 위주로 하던 초반, 남편으로부터 또다시 부당함과 억울함을 느낄 때, 그것이 뇌로 생각의 집중포화를 퍼붓는 대신 온몸으로 감정을 느꼈고 그대로 표현했다. 진화의 초반 단계는 폭발적일 수밖에 없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었다. 그때 나는 감정을 폭발했다. 그것이 그때 내게 필요했던 정화의 과정이었다. 폭발적 과정을 지나는 것에는 명상의 도움이 컸다. 생각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고 흘려보내기를 반복하는 것, 그리고 아무것도 없는 때의 완전함을 경험한다. 0.00001초이더라도 그 완전함을 체험해 본다면 내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생각을 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고, 생각이 꼬리를 물고 다른 생각을 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떠오르는 모든 것에 잣대 없이 있는 그대로 지켜보면 남이 만든 기준에 휘둘림 없이 나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나와 남편은 각자 필요한 정화와 배움을 거쳤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성장은 진행형일 뿐 완성형은 될 수 없기에, 우리는 계속 부딪히면서도 나아지고 있는데, 요즘은 오히려 남편이 자신의 생각이 굴려 커지는 것에 힘들어하는 것이 보인다.
과한 생각은 몸을 인식하는 것을 방해하는 것 같다. 몸은 그 자체로 직관이고 지혜인데 말이다. 명상하면서 생각이 없이 산다는 것의 아름다움을 경험해 보니, 생각 없이 사는 것은 보편적인 믿음과 다르게, 위험하지 않다. 더 잘 굴러간다. 사람은 자신과 우주를 더 믿어야 한다. 필요한 상황에 필요한 일이 일어나고, 우리에게는 직관적으로 옳은 판단이 일어난다. 남이 세워둔 기준을 철석같이 믿는 생각, 그것을 바탕으로 힘을 얻는 생각을 내려놓아야 직관과 지혜의 존재가 단서를 드러낸다.
"나는 별 일 없이 산다, 하루하루가 즐거웁다!"
장기하는 생각 없이 사는 즐거움을 아는 사람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