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폰 불빛에 기대 새벽녘에 남긴 기록들
어떨 때는 한 달에 한 번, 어떨 때는 일주일에 두세 번도 넘게 엄마가 꿈에 찾아오던 때가 있었다.
어떤 때는 아픈 모습으로, 어떤 때는 풍성한 머리에 통통한 아프지 않았던 모습으로. 어떤 때는 음성만 나오기도 하고.
엄마가 꿈에 나온 날에는 울면서 하루를 시작해, 아침마다 눈물을 닦고 생활을 위해 마음을 다잡는 게 힘들었었다.
지금은 그마저 그리운 일들이 되었다.
엄마가 꿈에 안 나온 지 일 년이 되어간다.
꿈을 꿀 때면 엄마는 내 속에 있는 것 같다 확신했었는데, 엄마는 이제는 어디에 있는 걸까.
여보세요
어
밥은?
저녁 생각 없는데 먹어라드라
누가?
병원에서
병원에서?? 오늘은 집에 사람 왔어?
아니, 병원 갈 때 맨날 이모한테 '병원 간다' 이렇게 문자 보낸다
엄마, 내 결혼하기 전보다 몸 많이 힘들어?
어
엄마, 그냥 내 회사 때려치우고 내려갈까?
유경아, 나는 우리 딸이... 하는 게 제일....
꿈속에서 엉엉 울어버려 ... 의 부분을 듣지 못했다. 그런데 꿈속에서 울며 통화하는 나는 부산 우리 집 옥상에 있었다. 꿈속의 꿈에 평소 친하지도 않은 회사 선배가 등장했는데, 그 선배에게 엄마 이야기를 하다 울음이 터졌다. 한참을 울며 통화하다가 저녁 9시가 다 돼가는 걸 급하게 확인하곤 엄마에게 전화를 건 것이었다. 내가 아는 엄마는 늘 그 옥상 아래 아래층에 자리한 그 집에서 많은 시간을 심심해하며 있었는데.. 왜 그 계단을 뛰어 내려가지 못하고 난 전화기를 붙잡고 울었을까. 이미 꿈속에서 엄마는 먼 곳으로 떠났던 걸까.
하루 종일 누군가를 기다리며 울적해했을 엄마를 생각하니 사촌언니네에 애들을 봐주러 가지 않은 주말에는 할 일이 없어 심심하다며 전화기 너머로 웃던 이모 생각이 난다. 오늘 퇴근길에는 부산으로 가는 기차 안일 이모에게 전화를 해야지. 그렇게 재잘재잘 떠들어 엄마를 향한 그리움을 조금 덜어봐야지.
엄마랑 전화 통화가 너무 하고 싶다. 얼굴은 못 보고 매일 전화를 의식처럼 하던 세월이 10년이 쌓여 그런지, 나에게 있어 엄마를 만나는 하루 일과는 전화였어서 그런가 보다.
헤어지는 데 허접이라는 드라마 속 대사가 생각난다. 나는 그녀처럼 고아로 살아온 것이 아닌데도 헤어지는 데 허접이다 정말. 아직도 엄마랑 못 헤어지고 새벽녘에 이렇게 날아갈 꿈을 붙잡으려고 꾸역꾸역 메모를 남기고 있는 걸 보면.
아직도 헤어지는 중이다. 아마 평생을 이러겠지만, 꿈에서나마 만나는 엄마의 음성이랑 모습이 나에게는 단비같이 소중하다. 인생을 잘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들만큼. 죄의식과 마음의 빚을 사라지게 하는 그런 의식이다.
그러니 또 나타나 줘 엄마.
19.11.15 am 03:38
엄마가 오랜만에 꿈에 나왔다.
이모도 같이 나왔는데,
회사 창립기념일 행사에 엄마가 놀러 왔고
나의 결혼식 때 모습과 거의 흡사하게 나왔다.
통통하고 예쁜 얼굴에 화장도 곱게 하고.
그것만으로도 어찌나 기뻤던지,
꿈속의 나는 이미 내가 꿈 속인 걸 알아서 사진이랑 영상을 엄청 남겨댔다.
엄마 살아생전에 그렇게 하지 못한 게 많이 후회가 됐었던 모양이다.
임신하고 요즘 거의 매일 꿈을 꾸는데 엄마가 나타나지 않아 아쉬웠었다.
이렇게 오랜만에 예쁜 엄마를 보니 마음이 기쁘다.
19.11.10 am 06:26
어제 내 꿈에 나온 엄마가 사촌 언니의 꿈에도 나왔단다.
아침부터 수진이 언니에게 전화가 왔다.
나도 엄마 꿈을 꿨다고, 무슨 꿈인지 이야기했더니 왜 그렇게 슬픈 꿈을 꾸냐고 언니는 웃으며 말했다.
언니 꿈에 나온 엄마는 "유경이 임신해서 힘들 텐데"라고 말했단다. 이모가 내 걱정을 하는 것 같아 전화를 했다는 언니.
여기저기 여러 사람에게 걱정을 끼치고 있다 나는. 괜찮아야 한다 그래서. 감정적이여 지지 말고, 좋은 것만 생각해도 모자라게 보내야 한다.
19.10.13 am 11:00
오늘 꿈에 나온 우리는 예전에 세 들어살던 빌라 3층 집에 다 같이 있었다.
처음인 것 같다. 꿈에 네 가족이 다 같이 나온 건. 어찌나 반가운지...!
오빠와 내가 미국 출장을 가게 됐는데,
회사 추천 인원이라 가게 되는 것을 몰랐던 엄마는 우리가 자기만 두고 가는 줄 알고 내내 툴툴거렸다. 회사에서 추천받아 가는 거라고 했더니, 금세 환해지던 표정이 기억난다. 비행기 타러 가기 전 밥을 차려줘서 밥을 먹다가 갑자기 미국에서 태풍을 만난 걸로 이상하게 끝난 꿈.
밑도 끝도 없이 이상한 꿈이었지만,
풍성한 머리에 이제는 추억이 되어버린 그 공간에서 네 가족을 만난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은 꿈이었다.
그립다. 네 가족이던 때가.
그게 참 아무렇지 않게 당연하던 때가 있었는데.
그 기간이, 나중에 내가 늙어 돌아봤을 때 내 인생의 1/3도 안 되는 시간이었다 생각하면 정말 서글플 것 같다.
가족은 소중하다.
하나하나가 소중하다.
모두가 잊지 않았으면.
그 마음에 오늘 아침엔 얼굴을 보려다 못 본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잘한 일 같다.
엄마, 아빠 꿈에도 한 번 나타나 줘! 이왕이면 밝은 모습으로!
19.12.09 am 07: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