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독 엄마가 그리워지는 때
엄마가 떠나고 나서 맞이하는 명절 연휴가 벌써 열한 번째다. 아이가 잠들고 나면 넷플릭스로 밤시간을 보내려 아이패드를 시댁에 챙겨 왔다. 아이패드를 깨끗이 쓰려고 사진첩을 비워뒀었는데, 어떤 설정 오류인 건 지 클라우드 속 사진이 다 동기화 돼버렸다. 그래서 위젯에 예전 사진들이 등장했다. 반가운 마음에 별생각 없이 위젯을 클릭했다가, 항암 투병 중이었지만 예쁘고 통통했던 시절의 엄마 사진을 맞닥뜨리게 됐다.
감정이 너무 바닥으로 가라앉거나, 꺼이꺼이 울게 되는 정도는 아니지만 그리웠던 엄마가 사진으로 나타나자 한층 더 그리워졌다. 참 예뻤던 엄마와 엄마의 죽음에 대해서는 왜인지 모르게 낙관적이었던 행복한 얼굴의 내가 있다. 항암 투병 중인 와중에도 살이 빠지지 않고 식욕이 유지되는 엄마를 보며 우리 엄마가 이겨낼 것 같다는 막연한 확신을 가졌던 시절의 나를 보니 그때 왜 더 조급해지지 않았냐고 다그치고 싶은 마음이 올라온다. 그때 더 조급했다면 강박이 있는 사람처럼 엄마와의 일거수일투족을 영상으로 남겨놓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운 마음이 든다. 더듬듯 기억해내야 하는 엄마의 목소리가, 단번에 확정적인 감각으로 떠올려지지 않는 엄마의 목소리가 너무 아쉽기 때문이다.
그러다 한 편으론, 조급해지지 않았고 비관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티 없이 엄마와 조금 더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것 같다고 그 시절의 나를 다시 달래주고 싶다.
부산으로 출발해야했던 연휴 전날,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낮잠을 자지 않았다고 했다. 기차 타러 가는 길에 낮잠 안 자고 선생님이랑 뭐하고 놀았냐 물었더니 “부향숙 미미(할머니)가 없어서 잉잉 우는 놀이를 했다”고 딸아이가 말간 얼굴로 답했다. 딸아이가 정말 뭔가를 알고 한 소리일까.
손녀딸에게 넘치는 사랑을 마음껏 베푸시는 시어머니를 보며 그보다 더 했을 엄마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뭐가 그렇게 급해서 이 행복을 못 보고 갔을까 하는 원망스러운 마음이 올라오려 해 타자를 두드려보자고 마음먹었다. 어두운 집안, 작은 핸드폰 네모 불빛에 집중해 마음을 쏟아놓고 나면 조금은 마음이 정화되는 기분을 알기에 오늘 밤도 덜 울어보려 글을 남겨본다.
사진으로 마주친 엄마의 미소를 꿈에서 움직이는 모습으로 만날 수 있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