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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주껏빛나는 Jan 02. 2022

말문이 갓 터진 아기의 미친 이쁨

이대로 멈출 수 없나요

내가 글을 쓰는 지금은 2021년 12월 29일,

작고 소중한 나의 딸은 595일 치의 인생을 살았다.


나중에 육아가 힘들 그 어느 때를 위해 피곤함을 이겨내고 글을 남겨보자며 타자를 두드리고 있다.

요즘 딸아이는 말문이 트였다. 아니다, 원래도 트였는데 요 며칠 말 그대로 '폭발'을 하고 있다.

물건을 묘사하는 단어 선택이 놀라우리만치 정확하고, 어이없게도 '조사'를 사용하는 것이 너무 웃기고, 스펀지 같은 흡수력이 경이롭고 어눌한 발음과 녹아내릴 듯한 목소리가 너무 귀여워 절대 이 감정을 잊고 싶지 않아 글로 남기자 마음먹었다.


특정 단어를 소리 높여 반복해 주면 곧잘 따라 하는 것이 너무 귀여워 뭐든지 반복해서 들려주곤 한다. 요즘이 정말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시기라는 걸 실감한다. 상호작용이 되는 아기와의 시간은 형용할 수 없는 놀라움과 기쁨을 준다.


나중에 시간 지나면 다 까먹어버릴까 봐 말문 트인 590일 경의 딸아이의 멘트를 기록해보자면

"너무 조크나~"(딸기 먹으며)

"이거 뭐야?" (무엇이든지 가르키며)

"고모 오니??" (고모에게 전화해보자는 할머니 말에)

"어디 한번 보까?" (거울 보러 가면서)

"서아는 햄복해" (딸기 먹으며)

"깔끔해" (홍시 먹으며)

"탐툔 여기 어디야?" (삼촌한테 안겨서 외할아버지 집에 가면서)

"밥에 물 말아줄까?" (밥에 보리차 물 말아달라고 할 때)

"물이 묻었네? 하투!!" (할머니 바지에 묻은 하트 모양 물 자국을 보며)

"어렵네!" (엄마 아빠가 자꾸 뭐 시키니깐)

"영차 영차, 할 뚜 이따!" (소파 위에 올라가면서)

"사과는 주렁주렁" (할머니가 사과 주겠다고 하니)

"항땅규!! 앙재구!!" (아빠의 이름 황상규, 친할아버지의 이름 황재구를 외친다)

특히 '햄복'하다는 어눌한 발음과 목소리, 그리고 그때의  표정이 너무 귀여워 나도 모르게 딸아이의 이름을 계속 불러본다. 내가 "서아는~?" 이렇게 물으면 "햄복해"라고 딸아이가 답하는 이 넘치는 행복을 언제 또 겪을 수 있을까.


동화책에서도 장난감에서도 누군가를 부를 때 "OO야"라고 하는 것을 터득했는지 모든 것을 그렇게 부르는 것도 너무 귀엽다. '할미야, 할비야, 계란아, 뽀로로야, 페티야, 키위야' 등등.


유령 모양의 스티커를 보고 '문어'라고 외치고 동화책에서 초승달을 보며 신이 나서 '바나나'라고 외치는 걸 보면 신기한 마음에 미소가 절로 난다. 19개월을 살면서 이리저리 얻은 많은 듯 적을 그 데이터 안에서 자기만의 알고리즘을 작동시켜 가장 그럴듯한 것을 말로 표현하는 법을 대체 어떻게 터득한 것일까. 내가 스치듯 일러준 단어들, 아이와 놀아주며 아무 생각 없이 내뱉었던 의성어, 의태어들이 백지의 아이 머릿속에 내색도 없이 쌓이고 있었을 테다.


이 시절 귀엽지 않은 구석이 어디 있겠냐만은, 말문이 갓 터진 아기의 귀여움은 정말 차원이 다름에 매일을 감탄하고 있다. 이 시절이 가는 아쉬움을 무엇으로 달랠 수 있을까. 네 살 까지 살면서 할 효도의 절반 이상은 다 한다는 옛 어른들의 우스갯소리가 하나도 틀린 게 없었다. 지금도 매일 잠들기 전 SNS에 기록해 둔 아이의 영상을 본다. 그렇게 하루의 피로를 씻어낸다. 손 안의 기기로 촬영부터 편집까지 다 하고 그 많은 기록들을 보관할 플랫폼이 제공되는 요즘의 신기술에 감사할 따름이다. 앞으로도 난 틈날 때마다 이 시절 남긴 기록을 뒤적거리며 살겠지. 그렇게 과거와 오늘을 수도 없이 왔다 갔다 하며 아이를 향한 사랑을 매일 조금씩 더 키워갈 것 같다.


새해가 되어 세 살이 되는 아이를 보며, 남편과 농담으로 "네가 뭐 했다고 벌써 세 살이냐" 했지만 19개월의 시간 동안 우리의 딸아이는 정말 큰 걸 이뤄냈다.


건강했고, 행복했고, 아무것도 못 하던 핏덩어리에서 행복함을 표현할 줄 아는 기특한 어린이가 되었다. 이보다 더한 성장이 있을까. 이 시절에, 다른 걱정 없이 아이의 커감을 함께할 수 있는 평온한 나날들에 감사한다.


새해에도 우리 무럭무럭 커보자. 이 세상에 있는 무수한 단어들, 아름다움을 들려줄 수 있게 엄마가 많이 많이 노력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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