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곁에 두고 싶은 마음
지금 시각은 밤 열한 시 반을 훌쩍 넘겼다.
나는 이 늦은 시간에 돌아가신 엄마의 생일 미역국을 끓이고 있다. 경기도에 살고 있어 엄마가 모셔져 있는 부산까지 갈 수도 없고, 남편은 미역국을 좋아하지 않아 아마도 나만 이 미역국을 부지런히 먹게 되겠지만.
조금은 늦은 퇴근을 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딸아이와 마트에 들러 한우 국거리를 샀다. 집에 가서 아이와 놀아주고 목욕시키고 재우고 나면 밤 열 시가 훌쩍 넘을 걸 알았기에 잠깐은 망설였다. 미역국을 끓이지 않고 그냥 넘어갈까도 잠깐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나 혼자만 챙겨 온 엄마 생일인데, 나마저 안 챙기면 엄마가 너무 서운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기운이 쭉 빠지려 했다. 하루 피곤한 건 다음날 푹 자면 나아질 테니, 그게 뭐가 대수냐는 생각이 걱정과 함께 고개를 들었다. 그렇게 나는 한우 국거리와 함께 집으로 돌아오게 됐다.
요 몇 주는 엄마 생각이 정말 많이 났다. 불과 몇 주 전 추석 당일에는 엄청 오랜만에 친정집에서 하룻밤 묵으며 엄마를 많이 많이 생각했다. 여전히 그대로인 엄마의 옷가지들과 살림살이들을 보며, 시간이 멈춘듯한 그 집에 엄마가 없어짐으로 인해 자리 잡은 생기 없음에 유독 마음을 저몄다.
시간이 맞아 오빠네와 아빠와 함께 점심을 먹고 찜질방에 가서 모두 한 자리에 누워 여유로운 한 때를 보내며, 이 자리에 엄마가 있었다면 소녀 같은 우리 엄마는 얼마나 이 순간을 행복해했을까 하는 생각이 계속 맴돌았었다.
그리고 며칠 뒤, 나를 너무 잘 아는 언니가 내가 생각난다며 어느 인스타그램 게시물 링크를 보내왔다. “나를 꽃 피우기 위해 (엄마는) 거름이 되어버렸던 그을린 그 시간들을 내가 깨끗이 모아서“ 자신의 삶을 잘 살아내고 있다는 한 딸의 글에 당장 슬픈 일이라도 있는 어린아이처럼 눈물을 흘렸다. 어떤 내용인지도 모르고 무심히 클릭했다가, 눈물을 감추려 화장실로 숨어야 했을 정도로 마음이 힘들었다.
엄마의 보호자로 살 수 있었던 그날들을 떠올리며, 살아 있었다면 아무런 걱정 없이 살아도 되었을 이 시절의 엄마를 상상하며 마음이 힘들었다. ‘부향숙 씨의 보호자’로 살았던 그 몇 안 되는 날들이 그리웠다. 마음과 몸은 바스러지지만 적어도 그날들에는 살아있는 엄마의 손을 잡고 이야기를 나누고, 엄마와 무언가를 할 수 있었으니깐. 이게 마음에 안 든다, 이렇게 말고 저렇게 해 줄 수는 없겠냐 까탈을 부리며 잔소리를 하는 엄마마저도 그리웠다. 잔소리를 들어도 기분 상하지 않는 누군가가 곁에 있다는 건 세상 큰 축복임에 엄마가 살아계신 세상 모든 딸들이 부러워서 마음이 힘들었다.
그리고 또 며칠이 지난 어제, 내가 보면 분명 공감할 거라며 회사 선배가 알려준 영상을 보며 나는 또 한참을 엄마 생각에 빠졌다.
https://youtu.be/kcPVDWAT4pU
채널 특성상 웃음 포인트가 엉뚱한 곳에 숨겨져 있어 그걸 기대했던 시청자들이 모두 울음을 멈추지 못했다는 영상을 보며, 엄마가 없는 나는 정말로 울음을 참기가 어려웠다.
요 몇 주간 이런 식으로 엄마 생각이 맴돌아 감정이 부쳤었다. 이 정도의 힘듦은 오랜만이었다. 올해 11월 23일 내 생일이 되면 엄마가 돌아가신 지 꼭 5년이 된다. 엄마가 꿈에 나오거나, 엄마 생각이 너무너무 사무쳐서 감정의 늪에서 빠져나오기가 힘든 때에 흐르는 대로 메모장에 글을 남겼었는데, 그 메모도 작년 11월이 마지막이었다. 마지막 메모의 날짜를 보며, 이제는 ‘애도’가 끝난 건지, 그동안 내가 너무 바빴던 것인지, 딸아이를 위해 밝은 마음으로만 살자고 내 무의식이 나를 지배했던 것인지 여러 생각을 해봤다. 그 질문에 답은 찾지 못했다. 그냥 내가 어렴풋이 찾아보는 답은, ‘일상’에 좀 더 맞게 감정의 모양새와 에너지의 쓰임새를 맞춘 것 같다는 것뿐이다.
조금 더 감정 소모가 덜하게,
꺼이꺼이 울어서 다음날 아침 눈이 아픈 정도로까지는 울지 않게,
아직은 엄마를 잃은 슬픔을 모르는 남편이 나를 위로할 방법을 찾기가 힘들어 당황하지 않게,
죽음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세 살짜리 딸아이에게 내 눈물의 이유를 설명해도 되지 않게.
그렇게 엄마를 조금씩 일상에서 지워가고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패턴을 찾아가던 생활에 힘든 사이클이 또 찾아온 것 같다. 가족들이 얼굴 마주해 행복한 추석이 있고, 얼마 안 지나 남편의 생일이 있고, 또 얼마 안 지나 엄마의 생일이 있는 9-10월. 그리고 곧 찾아오는 엄마가 돌아가신 나의 생일날이 있는 11월. 엄마가 사무치는 가을이 올해도 또 이렇게 온 것 같다. 그래서 유독 더 엄마를 떠올리게 하는 글과 영상에 감정이 요동치나 싶다.
아이 반찬으로도 자주 끓이는 미역국을 끓이며,
괜히 엄청난 의미를 붙여 혼자 슬퍼지는 걸 보니.
감정이 요동치는 그 계절이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온 것이 분명하다.
내일 저녁, 남편과 이 미역국을 먹으며 엄마 생각에 또 눈물짓게 될 것 같다. 꿈에 찾아오지 않는 엄마를 농담처럼 탓하다, 결국엔 내 일상을 잘 살아가기 위해 엄마 생각을 멀리하고 있는 듯한 내 무의식을 질책하고, 무뎌지는 내 슬픔에 실망하게 될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일에도 ‘실망하지 마라’ 던 엄마의 유일한 당부를 떠올리며 일상을 또 덤덤하게 나는 살아갈 것 같이다. 힘든 가을이 지나고, 한 해를 마무리하는 연말이 되면 그다음 해를 잘 살아가기 위해 가라앉았던 마음을 또 다잡겠지. 살아있었다면, 가라앉는 나를 슬픈 눈으로 바라봤을 엄마를 떠올리면서.
늦은 밤 미역국을 끓이며, 이렇게 스치는 감정과 생각이 엄마를 조금이라도 내 곁에 오래 두게 할까 싶어 글을 남겨본다.
엄마, 생일 축하해요.
엄마가 끓여주던 미역국보단 훨씬 못한 맛이지만,
엄마가 있는 곳으로 들고 찾아가지도 못하지만
맛있게 먹어줘요.
엄마가 그렇게 예뻐하던 ‘내 딸’이 엄마 생각하며 끓였으니.
많이 많이 보고 싶어요.
22.09.22 am 12:27 (엄마의 64살 생일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