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할머니를 꼭 끌어안는 아이를 보며 든 생각
어린이날 겸 어버이날 겸,
금요일 연차를 쓰고 고향에 왔다.
남편과 나는 고향이 같아서 이런 점이 좋다.
한 번에 내려와서, 양가 부모님을 다 뵙고 갈 수 있다.
다만 좀 슬프고 애석한 점은, 주중에는 타지에서 일하고 주말에만 고향집에서 지내는 아빠는
더 이상 우리를 본인 집에서 자게 하지 않는다.
아직은 어린 아기의 식사를 마땅히 마련하기도 어렵고, 집안일이 완벽하지 않기도 해, 할머니의 빈자리가 철저하게 느껴지는 외할아버지 집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 빈자리가 우리의 불편함이 되고, 그 불편함이 본인 마음의 불편이 되는 것이 싫어 절대 우리를 본인 집에서 자게 하지 않는다. 그렇게 친정 집에서 잔 지가 몇 년이 돼버렸다.
태어나서 외할머니를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나의 딸.
한 번도 손녀를 품에 품어보지 못한 우리 엄마. 이 두 문장은 아이의 출산 후 내가 가지고 있는 유일한 결핍이다. 일상을 잘 살다가도 저 사실을 생각하는 순간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지기도 한다.
오늘은 어린이날. 어제 퇴근하고 바삐 부산까지 내려와 오늘은 아침부터 시부모님과 아이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자려고 누운 침대에서 낮에 찍었던 영상을 돌려 보다가 문득 마음이 슬퍼진다.
영상 속에 나의 딸이 친할머니에게 강아지처럼 너무 기쁜 모습으로 달려가 친할머니를 꼭 안는 모습을 보니
그 모습이 너무 예뻐서 기쁘고, 기쁜 만큼 동시에 슬프다.
엄마가 있었다면 엄마도 저 기쁨을 맛봤겠지 싶어서.
손주를 향한 사랑은 어떤 면에선 자식을 향한 사랑보다도 더 크다던데.
언젠가 나에게도 손주를 만날 기회가 온다면, 그때 기쁨을 느낄 때마다 나는 또 엄마를 떠올리고 있겠지.
실제로도 친구였던 사돈을,
하늘에 있는 엄마는 조금은 질투하고 있을까.
눈에 넣어도 안 이쁜 손녀딸을 마음껏 안아보고 뽀뽀해보고 볼을 비벼볼 수 있어 좋겠다고 울음 띤 웃음을 짓고 있을까.
내일모레, 어버이날 겸 모이는 가족 식사 자리에 엄마만 없는 것이 나는 또 얼마나 슬퍼지려나 모르겠다.
남편은 엄마가 있어서 좋겠다고 생각한 날들이 많았다. 시댁에서 불편한 것 하나 없이 놀고먹고 쉬다 가는데도,
우리 집에 가서 설거지를 몇 시간하고 서 있어도 좋으니 엄마가 있는 집에서 나도 삼 박 사일을 내리 지내보고 싶다 생각한 날들이 많다. 그냥 얼굴을 보고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엄마는 힘이 되는 존재이니깐. 집에 와서 편해지는 남편을 보며, 나도 저런 편안함을 다시 느껴보고 싶어 부러워진 날들이 많았다. 해결할 수 없는 부러움이 자꾸 올라와 스스로가 짠했는데,
할머니를 꼭 껴안는 아이의 평온한 얼굴을 보고 엄마가 생각나는 어쩔 수 없는 이 마음은 또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냥 지금 내 마음으로는,
엄마를 대신해 우리 어머님이 참 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