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개월 아기의 발화에 감탄하는 요즘
18개월 때쯤부터 오물조물 말을 해대는 모습 자체가 유독 신기하게 다가왔었다. 육아가 처음이니 당연했다.
어디서 저런 말들을 다 배웠을까,
어떻게 조사를 적절하게 사용할까,
저런 표현은 어떻게 하게 되는 걸까 등등..!
그때는 주로 ‘묘사’하는 것, 그리고 일차원적인 감정이나 본인의 놀라움을 표현하는 문장 위주였다.
딸아이의 말문이 막 터졌을 때의 이쁨을 기록한 글은 여기에....!
요즘은 표현의 스펙트럼이 엄청 넓어졌다.
가끔은 딸아이가 하는 말을 되뇌다가 내가 새로운 깨달음을 얻을 정도이다. 이건 마치 동시를 보고 세상 이치를 깨달아 마음이 몽글 혹은 뭉클해지는 기분이랄까.
어제 그리고 오늘, 딸아이가 한 말에 느꼈던 기분 떨림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 기록으로 남겨본다.
올해 생일 코로나 확진을 확인했다.
어떻게 될지 몰라 안방에서 만 이틀을 꼬박 집에 없는 사람인 척 갇혀 지내고 그 이틀 동안 딸아이는 남편과 모든 것을 했다.
생각보다 엄마를 찾지 않고 잘 견뎌주어서 신기(?)했다.
나의 확진 이틀 뒤, 딸아이의 확진 소식을 들었고 그때부터 3일간은 그동안의 분리 수면을 멈추고 세 가족이 함께 거실에서 잤다. 새벽 사이에 열이 오르면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해서였다.
그렇게 5일을 보냈더니 다시 방 분리 수면을 하는 날 새벽이 전쟁통이었다. 깰 때마다 일어나서 엄마를 찾으며 오열을 하는 것이었다.
그러고 나의 격리가 끝난 건 그저께, 딸아이의 격리 해제까지 남은 이틀 동안 나는 재택근무를 했다.
아기와 함께 재택근무를 하는 것은 정말 고역이다.
특히 혼자 노는 것을 할 줄 모르는 영유아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영상 틀어주기 뿐이었다.
아침부터 눈도 제대로 못 맞춰주고,
하루 종일 영상을 틀어주는 엄마가 이상했는지
영상에는 눈도 안 주고, 틀어주는 영상마다 재미없다를 남발하던 아이는 나에게 조금 삐진 것 같아 보였다.
그러고서 하루를 보내고 퇴근하고 본격적으로 놀아주려 했더니 엄청나게 투정을 부리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이렇게 말했다.
지금 기분이 없어!
투정이 너무 지나쳐서 단호하게 이야기를 해서 투정의 반복을 끊어내야 하나 하고 마음을 먹었던 찰나에 딸아이의 말 때문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버리고 말았다.
기분이 없다니....! 기분이 안 좋아라는 표현을 모르는 딸아이가 아니었다. ‘너무’나 ‘진짜’, ‘엄청’이라는 표현도 쓸 줄 안다. 그렇다면 정말로 너무너무너무 기분이 안 좋은 자기 마음을 표현할 길을 찾다가 나름으로 생각해 낸 말이었던 게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니 딸아이의 참신함과 표현력에 감탄하게 되고 내심 부럽기까지 했다.
감정 소모가 크다, 소진됐다, 공허하다 처럼 어렵고 진부한 표현이 아니더라도 저렇게 단어 한마디로 감정을 표현을 해낼 수 있는 게 언어였지 하는 깨달음이 절로 들었다. 코로나에 먼저 확진되어버린 것도, 복귀 첫날이라고 일부러 할 일을 더 찾고, 재택근무를 하는 것에 눈치를 보지 않으려고 일부러 모니터를 더 뚫어지게 쳐다봤던 그날의 나 자신이 너무 미안해졌다.
무슨 일이 있어도 자기가 일 순위였던 상대가 눈도 안 마주쳐주는 것은 정말 그렇게 ‘기분이 없어질’ 일이긴 하다. 아이가 느낀 좌절감이 컸겠구나 하는 마음에 미안하고 미안했다.
아이의 격리 해제 마지막 날, 전날과 다름없이 재택근무를 하고 퇴근한 이후 아이와 찐하게 놀았다.
날이 제법 추워져 아이 방에 난방 텐트를 설치했다.
난방 텐트를 꺼내며 남편은 “서아 어릴 때 여기서 잤었는데 기억나??”라고 물었고, 아이는 한참을 두리번대다가 정말로 기억이 났는지 “응 기억나!”라고 했다.
그러고선 설치된 난방 텐트의 지퍼를 열었다 닫았다 하는 놀이가 재밌었는지 한참을 몰두했다.
침대 머리맡에 늘 놓던 인형들을 텐트 안으로 넣어줬고 아이는 “우와 텐트 집 좋아요!”하며 연신 기쁨을 표현했다.
그러더니, 엄청난 걸 깨달은 것처럼 하이톤으로 나에게 외쳤다.
엄마! 좋은 마음이 났어요!!
무슨 말인가 싶었다. ‘좋은 마음??’ 그러더니 나에게 “좋은 마음이 났어요, 엄마도 빨리 여기 들어와요!”라며 난방 텐트 문을 열어주는 것이었다. 생각이라는 표현을 모르지 않는 딸아인데, 이건 정말 생각보다 ‘마음’에 가까웠구나 싶어서 귀여웠다. 그 마음이.
머리를 굴려서 한 생각이 아니라, 엄마랑 놀고 싶은 마음에 절로 나온 흐름이었으니 그건 실로 생각보단 마음이었겠구나 싶었다. 어른들도 노는 덴 진심이 된다고, 누가 생각해봐라 아이디어 내라 하지 않아도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노는 방법엔 다들 진심이 돼 이 제안, 저 제안 가리지 않고 하게 되는 것처럼. 아이들이라고 다를까 싶었다.
그렇게나 기쁜 제안을 받을 수 있는 엄마여서 기쁜 밤이었다. 아직은 친구와 노는 것보다 엄마 아빠와 노는 게 제일인 어린아이의 부모여서 즐거운 나날들. 성인들끼리 했으면 정말로 재미없을, 남들이 보면 바보 같아 보이는 놀이도 아이의 까르르 웃음이랑 함께하면 그 어떤 예능보다 재밌고 내가 바보 같아도 꽤 괜찮은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 세상 모든 엄마 아빠들이라면 그 마음을 알겠지? ‘생각’해서 하는 게 아니라 ‘마음’에서 하는 놀이라고 표현해주는 딸 덕에 한층 더 행복했다.
조금 더 사전적인 의미를 알게 되는 유년기가 되면 저런 표현들도 사라지게 될까. 그 변화가 꽤 아쉬울 것 같다. 떠올려보려도 해도 쉽사리 생각나지 않는 어른의 뇌와 마음으로 아이의 표현력을 받아들이는 건 정말 진귀한 경험이다. 아이가 나에게 건네주는 그 소중한 경험들이 그다지 소중하지 않은 나의 바쁨에 묻혀 희미해지지 않게 내가 가진 짧은 안테나를 잘 늘려봐야겠다.
새로운 세계 하나가 우리 집에 굴러들어 온 느낌인 요즘, 육체는 고되고 가끔 멘탈도 ‘탈탈’ 털리고 스스로의 바닥도 자주 목격하지만 그 모든 게 새로운 세계를 만나기 위한 값치름 정도라고 생각해야지. 새로운 세계의 주인공이 나에게 주는 기쁨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더 값지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