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육아소회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재주껏빛나는 Aug 18. 2024

50개월 아이가 하는 귀여운 이야기들

나중에 까먹을까 봐 다급히 남겨보기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지?‘ 싶을 정도로 창의적이고 귀여운 이야기를 할 때도 있고

이제 막 말을 배워가는 과정에서 아는 대로 뱉어서 그럴싸하게 엉망진창인 단어들도 있다.

요즘 하는 발상과 말들이 너무 귀여운데 나중에 시간이 지나면 까먹을까 봐 급하게 남겨본다.

(많이, 자주 남기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한 게 내심 아쉽다. 지나고 보니 말을 막 배울 때만큼 귀여운 때가 또 없건만…)


1. 정말 덥고 습한 여름날, 남편이 운전하고 나랑 딸이 뒷좌석에 타 있었다.

차 안과 밖의 온도 차이 때문에 김이 서린 걸 보고 왜 저렇게 뽀얗게 됐냐고 물었다. (진짜 ‘뿌옇게’가 아니라 매번 ‘뽀옇게’ 쯤으로 발음하는 게 귀엽다.)

밖은 너무 덥고 안이 시원해서 그렇다고 말해줬더니

“엄마, 나는 차가 달리다가 너무 더워서 땀을 흘리는 건 줄 알았어요.”라고 말했다. 귀엽다.


2. 어린이집 친구가 머리를 싹둑 자르고 왔다. “서아야! OO이 머리 잘랐던데?”라고 했더니

“응 맞아! 반달머리로 잘랐어!!”라고 엄청 당당하게 이야기한다. 귀엽다… ㅠ_ㅠ


3. 성교육 동화책 중 <솔비가 태어났어요>라는 책에서 엄마의 아기씨와 아빠의 아기씨가 만나서 생명이 탄생한다는 이야기를 봤다.

엄마 아기씨랑 아빠 아기씨가 못 만나면 어떻게 되냐고 물어서, 그럼 그냥 그건 그대로 아기씨야라고 답해줬다.

그날 밤 목욕을 하고선, 갑자기 내 배꼽에 입을 대더니

“아기씨야, 안녕! 난 서아야~~ 들려??”라고 물어봤다. 내가 너무 웃겨서 쿡쿡 웃었더니, “움직이지 마요~!” 한다… 귀엽다 큭.


4. 위 책을 처음 읽었을 때부터 자주 하는 말은 “서아는 아기 낳기 싫어요. 너무 아플 것 같아요.”인데, 가관은

“엄마, 의사 선생님한테 서아는 아기 낳지 않겠다고 이야기해 주세요.”라고 진지하게 이야기할 때다.

그… 그래.. 엄마가 꼭 나중에 전달해 드릴게…


5. 동생이 있으면 좋겠냐고 물었다. “아니요. 엄마 배에 아기가 생겼을 때 아기가 여자인지 남자인지 모르잖아요. 서아는 여자 동생이 있으면 좋겠는데, 혹시 모르니 안 돼요.”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똑똑한데…?


6. 요즘 유치원에서 신체 부위 명칭을 많이 배우는 중인듯하다. 머리 꼭대기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엄마, 여기를 뭐라고 하게요? “라고 묻는다.

“글쎼?? 엄만 모르겠는데?”라고 연기했더니, 엄청 당당하게 “정수기!!!!”라고 답했다. 맞아 거기서 더우면 물 나와….!!!!


7. 백희나 작가님의 <알사탕> 책에는 신기한 풍선껌이 나온다. (추측건대) 하늘나라에 간 할머니와 이야기를 주고받게 도와주는 풍선껌이다. 어느 날 갑자기 외식하러 가는 와중에, "서아한테도 그 풍선껌이 있으면 좋을 텐데. 그럼 미미(할머니)랑 이야기 나눌 수 있을 텐데. 엄마, 엄마도 그 풍선껌 있으면 좋겠어요? 미미가 엄마의 엄마니깐?" 하고 물어서 걸어가다가 울 뻔했다. 마음씨 예쁜 우리 딸, 엄마한테 와줘서 고마워.


8. 선물은 생일, 어린이날, 크리스마스, 아니면 엄청 착하게 하거나 약속을 잘 지킨 특별한 날에만 사는 거라고 늘 신신당부를 해두었다. 백화점이나 마트에서 장난감, 구두, 이런 것들을 지나칠 때마다, “엄마, 서아 다음 생일에 아무것도 안 살 테니깐 이거 사줄 수 있을까요?”라고 물어본다. 어떤 날은 살 것 목록에 올려둔 게 너무 많다 느꼈는지, “엄마, 서아 대학생 되면 이거 사주세요.”라고 말한다. 티니핑 목걸이, 귀걸이 이런 것들….


9. 남편이랑 내가 “이거 왜 이렇게 비싸?” 뉘앙스로 이야기하는 것들을 다 듣고 있었는지 무엇이든 사려고 망설일 때면 엄청 큰 목소리로 물어본다.

“왜요 엄마? 이거 비싸요??” 그.. 다이소에서 너무 크게 물어봐서 조금 민망했다.


10. 안경을 막 쓰기 시작했는데, 아직 많이 불편한 것 같다. 차 안에서 잠깐 눈 붙일 때도, 예전에는 실신하듯 잠든 거였는데 분명…! 이제 잘 거라서 불편하니깐 안경 좀 가지고 있어 달라고 하고선 할머니처럼 눈을 가만히 감고 있는다. 안경이 쓰기 싫은 건지, 잠 오는 상태를 잘 캐치하게 된 건지 분간이 잘 안 간다.



이 외에도 엄청 많았는데… 많이 또 날아갔다.

휘발되기 전에 잦게 자주 남겨야지 싶은 마음이 드는 밤. 급하게 끄적여봤다.


오늘 처음 본 이모의 손도 살포시 잡고, 헤어질 때 자기 집에 이모가 지금 당장 같이 갔으면 좋겠다고 꺼이꺼이 우는 아이를 보니

아직 다 자라지 않았구나, 너무 다행이다 싶은 이상한 안도감이 들었다.

너무 빨리 커버리지 않게 만드는 건,

날아가는 순간들을 정성껏 잘 붙잡는 엄마의 마음과 부지런하게 기록하는 습관일 것 같다는 생각도 어렴풋이 하며.



잘 크고 있는 우리 딸.

이 귀여운 말들이 모여 10년, 20년, 30년 뒤의 나에게 얼마나 큰 빛이 될까 가늠도 안 된다.

이런 순간들이 있기에 나라는 사람이 엄마 됨의 기쁨을 알아간다.


어린이들은 너무나 소중하다. 지금 나의 딸은, 내가 매일 입버릇처럼 말하듯 ‘내 인생 제일 소중한 보물’이다.


앞으로도 예쁜 말, 귀여운 말, 놀라운 말 많이 들려줘 서아야!


24.08.18

매거진의 이전글 기분이 없어! 좋은 마음이 났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