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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주껏빛나는 Oct 11. 2024

날 부족해하는 아이의 얼굴

회사에도 아이에게도 소홀한 시간을 보내고서

“날 부족해하는 아이 얼굴이 눈에 그렇게 밟히는데도 매일 꾹 참고 출근하는 엄마, 아빠들에게 경의를.”


언젠가 황석희 번역가 님의 인스타그램에서 이 글을 보고선 캡처해 뒀었다.

‘날 부족해하는 아이 얼굴’이란 말에 마음이 저릿해서.

그리고 요즘 며칠, 아이가 아파서 회사에도 아이에게도 소홀한 시간을 보내고 나니 이 문장이 생각났다.


여름 끝자락에 아이가 다쳤다.

열 바늘 넘게 꿰매야 하는 상처가 났고, 시술을 하고 보니 도무지 유치원에 갈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올해는 이직을 한 해라, 연차도 모자라 부산에 계신 시어머니에게 올라와 달라고 도움을 청했다.


그렇게 상처는 아물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나 했더니,

이번 주 월요일 아이가 수족구에 걸렸다. 엎친 데 덮쳐서, 다쳤던 자리 상처가 벌어져 재봉합 시술까지 했다.


만 4년을 입원 한 번 안 하고 건강하게 커 왔는데,

크게 다치고 전염병까지 걸려서 유치원을 계속 빠져야 하는 상황이 생겼다.


아이의 아픔도 걱정인데, 그것보다 빠르게 스치는 생각은 ‘아, 내일 회사 어떡하지.’였다.


“내일 이 일 하려고 했었는데, 내일은 프로그램 진행하는 날인데, 이 미팅 하기로 했었는데…”


이런 생각부터 드는 내 자신에 섬찟 놀라며, 나 잘 살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며 허무한 기분이 들었다.


남편이랑 곡예하듯 스케줄을 맞추며 살아온 게 벌써 몇 년이다. 친정 엄마는 돌아가셨고, 시어머님은 부산에 계시니 기댈 곳이 없다. 시터를 고용해 보니, 변수가 생겨서 아이에게 계속 주양육자와 이별을 겪게 하는 굴레도 싫었다. 물론 경제적인 이유도 당연히 작용했다. 그래서 시터 없이 남편과 내가 오롯이 아이를 돌보고 있다. 직장 어린이집을 다니는 동안에도 아이와 나는 출퇴근을 같이 했고, 유치원을 다니는 지금도 아이와 나는 출퇴근을 같이 하는 일상을 보내고 있다.


재량 휴업일이나 아이가 하루 가끔 아프거나 한 날에는 남편과 내가 번갈아 연차를 소진해 가며 교대하듯 아이를 봐왔다. 평소에도 그렇게 살지 않았던 것이 아닌데도 일주일 통째로 비는 낮 8시간을 또다시 기관의 도움 없이 봐야 하는 날이 찾아오니 마음이 턱 막히며 답답한 기분이 들었다. 이번에도 시어머니께 도움을 요청할 염치는 없었다.


그렇게 이번 주의 시작부터 금요일인 오늘까지 곡예하듯 남편과 스케쥴링해 한 주를 보냈다. 금요일인 오늘도 바통 터치 하듯 아이를 돌봤다. 남편은 오전 일찍 일을 보고, 나는 11시 출근을 했다. 12시 30분, 우리 회사 근처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던 남편과 딸이랑 점심을 먹으러 나섰다. 고작 출근한 지 한 시간 반 만에 하던 일을 끊고 사무실을 나섰다. 쌓여 있는 일을 생각하면 점심은 대충 때우고 일을 했어야 했는데 내 마음이 그러질 못했다.


자기가 이렇게 아픈데, 왜 엄마는 계속 출근이란 걸 하는지.

일한다는 게 뭐길래 그렇게 자기를 제쳐두는지.

돈은 왜 꼭 벌어야 하는지.

왜 자기랑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날이 정해져만 있는 건지.


이 모든 걸 다 이해할 리 없는 아이의 말간 얼굴이 아른거려서 잠깐이지만 짬 내서 점심식사를 같이 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먼저 식당에 들어가 주문을 하고 앉아 있는 남편과 딸이 멀리서부터 보였다. 놀라게 해 주고 싶어 창가에 앉아있는 딸에게 유리창으로 똑똑 노크를 하고선 활짝 웃어 보였다. 아이는 세상을 다 가진 환한 미소를 보여줬고, 잠깐 머릿속에 떠다니는 일은 밀쳐놓고 아이와 남편과 신나게 밥을 먹었다.


식사가 끝나갈 무렵, 밥 다 먹고 나면 엄마는 회사에 가고 서아는 다시 아빠랑 병원에 다녀오면 된다고 이야기를 해줬다. 그때, 아이가 갑자기 입을 삐죽이며 울기 시작했다.


“아빠랑 둘만 있다가, 갑자기 엄마가 와서 너무 기뻤는데. 이렇게 잠깐만 보고 간다고 하니깐 너무 속상해요.”라고 말하며 울음을 터뜨렸다. 나를 부족해하는 아이의 얼굴이었다.


나도 정말 같이 울고 싶은 마음이었다.


매일 아침 10분이라도 일찍 가보려 아이를 재촉하며, 가끔 나무랐던 게 생각나 미안한 마음.

5시 50분에 칼퇴근을 하기 위해, 모든 타임라인을 그 안에 욱여넣어보려 동동거리며 일했던 날들.

더 완성도 있게 일을 해내고 싶은 욕심은 접어두고 늘 80% 정도밖에 못 해내 살짝 억울한 마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하는 삶도, 아이를 낳은 삶도, 회사를 옮긴 삶도 모두 다 내 선택이었기에 내가 다 감당해야 한다는 생각.

이럴 때 기대고 싶은 엄마가 너무 절실해 슬퍼지는 마음.

돈으로 시간을 사든, 사람을 사든, 삶의 구조를 미리 갖춰 놓지 않은 나를 탓하게 되는 마음.

저만치 앞서 나아가고 있는 것 같은 또래 직장인들을 보며 다급해지는 마음.

나는 무얼 하고 있나 하는 마음.


이 모든 것들이 버무려져 한번에 불쑥 올라와버렸다. 다행히 울지 않고, 아이에게 아이스크림을 쥐어준 채 다시 급하게 사무실로 돌아왔다. 그렇게 또 사무실에 돌아와서는 아무렇지 않게 일을 했다. 그리고 또 남들보다 이르게 사무실을 나섰다.


아이에게도, 회사에도 소홀했던 일주일. 아무 문제 없이 출퇴근하는 일상이, 너무나도 소중함을 절절히 느낀 일주일이었다.


내일은 드디어 고대하던 주말이다. 늘어지게 쉴 수 있어 좋은 주말이 아니라, 회사에 가야 하는 듀티가 없어, 아이한테 최선을 다할 수 있어 안도감이 드는 주말이다. 아이가 아파서 유치원에 못 가는 와중, 연차를 쓰고 아이를 돌보면서도 머리 한 편엔 계속해서 일을 되뇌었다. 아무도 눈치 안 주는데 혼자 눈치를 보며 마음 불편해했다. 그걸 하지 않아도 돼서 나 빼고 모두 다 쉬는 주말이 반갑다. 주중에 겪어낸 죄책감을 만회할 시간이 5일 만에 나에게 와서 안도감이 든다.


이런 생각들이 들던 와중, 딸아이가 색종이로 꼬깃꼬깃하게 접은 하트를 나에게 주고 침대에 자러 갔다. “엄마, 사랑(하는 마음) 듬뿍 담아 만들었어요. 이걸 보면 힘날 거예요!”라고 이야기해 주고선.



엄마가 일하는 이유를 이해하는 날이 왔을 때 즘엔,

아이가 절대 이만큼 나를 부족해하지 않겠지. 부족한 마음에 엄마를 더듬거려 찾기보단, 자기를 충족시킬 다른 재미를 찾아 떠나고 있겠지. 그런 생각이 들어 오늘이 또 다시 소중해졌다.


얼른 아이가 아픈 게 다 사라지고, 평온했던 일상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 일에도 육아에도 반씩만 걸쳐져 있는 것 같은 울적한 기분도 얼른 훌훌 털어낼 수 있기를. 아이도 나도, 남편도 이루 말할 수 없이 수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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