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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주껏빛나는 Mar 02. 2023

다 큰 어른에게도 칭찬 스티커가 필요한 이유

리추얼의 힘, 별 거 아닌 거에 움직이는 몸뚱이


2023년 3월 첫 째 날, 올 해의 지난 두 달을 간단하게나마 회고해 본다.

가장 잘한 것을 꼽아보자면 방문에 대자보만 하게 큰 365일 캘린더를 붙여서 칭찬 스티커판으로 활용하자고 마음먹은 것이다.


육아휴직에서 복직한 이후, 독서량이 현저하게 줄었다.

아이가 낮잠을 자는 시간에 책을 꽤나 많이 읽었었던 모양이다. 복직을 하고 나니 그렇게 쓰던 독서시간이 사라졌다.

그러면서 줄어드는 독서량에 늘 마음 한 켠으로 신경 써 왔다.

누구 보여주자고 하는 독서가 아닌데 왜 줄어든 독서량에 자꾸 마음이 쓰일까 진지하게 고민해 본 적이 있다.

’여유 시간에 가장 쉽고 빠르게 즐거움을 찾을 수 있는 무언가를 하고 마음에 위안을 얻으면 그만 아닌가? 왜 자꾸 찜찜해하는 거야?‘라고

스스로에게 물어서 얻은 답은 ‘나에게 보여주려고 하는 독서’이기 때문에 그렇게 마음이 찜찜하다는 결론이었다.


책을 읽으며 느꼈던 감정, 감탄을 금치 못했던 문장들도 시간이 지나면 아무렇지 않게 휘발되어 가는 것이 아쉽고

미천한 내 기억력이 안타까워 독후감 인스타그램 부계정을 팠었다. 2017년 2월부터 시작했으나 벌써 만 5년이 꽉 찼다. 그런데 2022년 나의 독서량은 너무 처참했다. 연도별로 살펴보니,

“2017년 25권, 2018년 20권, 2019년 17권, 2020년 31권, 2021년 21권, 2022년 17권” 이렇게 줄어든 것이었다.



나는 아직도 무언가를 떠올려야 할 때 나의 독서 계정을 훑어본다.

그러면 거기에 내가 수집해 놓은 문장들에서 어떤 실마리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독서량이 줄어드는 건, 내가 나 스스로에게 계속 던져주던 그 실마리가 줄어드는 것이다.

나 스스로가 그것을 알기 때문에, 독서와 멀어지는 것이 나를 너무 방치하고 좁은 시야에 머물게 하고, 도태되게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계속 신경이 쓰여왔던 것이다.


그래서 2023년이 되면서 결심을 한 것이었다.

내가 여유시간에 우선순위를 두고 해야 할 자기 계발 to do list를 정하고 매일매일 그 목표를 잘 성취했는지 체크해 보겠다고.


그 위대한 결심은….!!! 오롤리데이의 365일 캘린더로 완성됐다!

나에게 꼭 필요한 것이었다. 요즘은 투두리스트 어플들도 엄청나게 많지만 눈만 뜨면 내 앞에 보일만한 커다란 것이 필요했다.

다소 유치하다 생각됐지만 더 이상 나태해지는 나 자신을 보는 것보단 잠깐의 부끄러움을 참아보자는 마음으로 올 한 해는 나 스스로에게 칭찬 스티커를 줘 보기로 했다.

(캘린더가 부끄럽다는 게 아니라, 나를 위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체크를 해야만 기어코 움직여지는 나의 미숙함이 부끄럽다는 뜻…)


오롤리데이의 캘린더와 못나니 얼굴 스티커 그리고 롸잇요라이프 마스킹 테이프까지 야심 차게 구매하고선

나 혼자만의 다짐이면 작심삼일로 끝날까 봐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올 한 해 목표를 올려버렸다.


내가 올해 정한 우선수위는 4가지였다.

1)독서, 2)영어공부, 3)운동, 4)글쓰기!

4번 글쓰기는 사실 나 혼자만의 사적인 취미생활이라(내 브런치 계정은 남편도 모른다.) SNS에 공유할 수 없었지만

올해의 다짐으로 1,2,3번의 내용을 공유하니 이런 DM들이 쏟아졌다.

나랑 같은 사람이 많다니 다행이라 생각됐다...




그러고선 두 달이 지났다…!!!!!


유치했지만 칭찬스티커는 정말 통했다.

내가 목표로 정했던 4가지 중에 2가지 이상의 것을 클리어 한 날에 칭찬스티커를 붙였다.

설 연휴와 휴가기간에는 체크하지 않았다. (일종의 치팅데이….!)


일주일도 안 가서 멈추면 어쩌나 싶었는데 내 예상보다 꽤 많은 날 스티커를 얻었고! 지금 이 브런치 글을 쓰는 오늘도 스티커를 붙일 수 있을 예정이다!

(오늘 내가 클리어한 건 운동과 글쓰기)


이 칭찬스티커를 붙여내는

두 달 동안 6권의 책을 읽었고, 14번의 전화영어 수업을 했다. 케이크 영어회화 공부 어플을 활용해 노션에 기록한 영어문장만 해도 100문장이 넘는다.

육아와 엄마에 관한 글을 2편 썼고, 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도 처음으로 글을 남기기 시작해 2편을 썼다. 

(일과 관련한 글은 나중에 다시 업로드하려고 현재 브런치 계정에서는 삭제했다..!)

두 달 동안 완독한 여섯 권의 책



내가 이렇게 올해 다짐을 하게 된 가장 큰 계기는 사실 남편의 자격시험공부 시작이었다.

마흔 살이 되면서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라고 말은 하지만 속내는 다 알 수 있다.)

자격시험공부를 시작해 보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붙을 확률보다 떨어질 확률이 훨씬 더 높은 고난도의 시험에 도전하는 그의 마음을 응원하고 싶었다.

육퇴 후 맥주&넷플릭스 타임을 함께할 파트너가 사라진 것이 사실 가장 큰 이유이지만, 그를 응원하기 위해 나도 ‘수험생 모드’ 비슷하게나마 시간을 쪼개서 살아보자고 마음먹은 것이었다.

이렇게 두 달이 지나고서 남편과 내가 느낀 바는 정확하게 일치했다.


“와, TV 안 보니 할 수 있는 게 진짜 많네.”
“그런데 좀 피곤해… 체력이 달리는 듯… 뭐 좋은 것 좀 더 챙겨 먹자….. “
“그래도 잠들 때 좀 뿌듯하지 않아?”


우리의 기분과 뇌는 ‘뿌듯함’에 동요되고 있었다.




나는 아기자기한 소품들을 좋아해 오롤리데이 캘린더와 롸잇요라이프의 마스킹테이프를 나만의 칭찬 스티커로 활용하는 반면 남편은 ‘일품타’라는 엄청난 어플을 사용하고 있다.

공부라는 것과 멀어져 그런 시장이 있는지도 몰랐는데 공부한 시간을 초 단위로 카운트해주고 (그 어플을 끄고 다른 어플을 켜는 순간 공부 시간 카운트에서 제외된다) 통계도 내주고, 그룹을 구성하면 그룹원들의 스터디 시간도 다 보여주고, 전국에 나랑 같은 공부를 하고 있는 사람들 간의 랭킹도 보여주는 어플이다. 엄청나다..!


남편은 그 어플의 통계화면을 자기만의 칭찬 스티커로 활용하고 있다.

공부 시간이 길수록 더 진한 색깔의 음영이 데일리로 채워지는데, 달력 전체를 진한 초록색 (공부시간 4시간을 넘기면 진한 초록색으로 채워지게끔 설정돼 있다)으로 채우고 싶어 ‘안달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칭찬 스티커를 붙일 때마다 뿌듯한 마음이 마구마구 올라온다.

내 나이 35살, 칭찬 스티커로 내 몸이 움직이고 있다. 기억이 남아있는 시기 이후로 내 기억 속에 난 그런 행동을 해본 적이 없다. 스티커 하나에 몸을 움직이는 행동 말이다. 이런 게 없어도 나에게 주어진 과업을 충분히 자기 주도적으로 꽤 욕심 있게 해내는 스타이일이었다.

내 기억에는 없는 더 어린 시절에는 아마도 엄마와 혹은 선생님과 함께 해봤을 테다.

어쨌든 내 기억에는 없어서, 처음으로 느껴보는 생경한 기분이다. 스티커 하나에 기뻐하는 이 마음은.

칭찬 스티커 하나에 마음이 동요되는 이 기분이 너무 낯설다.


그런데 분명 이런 것이 통하고 있었다.

근래 몇 년간, 코로나 이후로 늘어난 자기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으려는 이들 사이에서

‘리추얼’, ‘루틴’이라는 프레임으로 이런 의식들이 마구마구 샘솟고 있었다.

미라클 모닝 챌린지가 유행했고, 플로깅이 유행했었다.

모트모트라는 다이어리 아이템이 엄청 핫해졌고.


어쩜 다 큰 어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자기로부터의 인정’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엄청난 성취를 이뤄내는 일반인들이 점점 많아지지만, 그것이 영영 나에게 일어날 일은 아닐 것 같고.

회사에서도 혹은 내 사업에서도 엄청나게 이름을 날리고 큰 성공을 거둔다는 것이 나와는 멀기만 한 일 같고.

지금까지 이뤄온 것이 너무 보잘것없다고 느껴져 가끔 주눅이 드는 어른들에게.

‘칭찬’이란 것이 생소해진 어른들에게, 스스로를 잘했다고 치켜세워주는 이 간단한 의식이 너무나도 필요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도 해 주는 이 없다면 나라도 해 줘야지! (칭찬)

오늘도 칭찬 스티커를 3월 1일 자리에 붙이고 뿌듯하게 잠들어 봐야겠다.

아무도 몰라줘도 나만은 스스로가 하루를 잘 보냈음을 기특하게 알아봐 주는 소소하게 기특하고 장한 35살 3월의 첫날 마무리로 아주 좋을 것 같다.


부디 12월에도 뿌듯하게 회고글을 쓸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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