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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니베리 Nov 10. 2023

길거리에서 우연히 전남편을 만났다.

오해


 길거리에서 우연히 전남편을 만났다. 185센티미터의 키에 호리호리하면서도 단단한 그의 모습은 2차선 도로 건너편 북적이는 행인 사이에서도 눈에 띄었다. 현기증이 일며 손끝이 저렸다. 그와 첫 데이트 하던 날, 성큼성큼 걷던 그가 갑자기 멈춰 서더니 나를 내려다보며 결혼할래요? 아니, 나랑 결혼해요.라고, 농담처럼 청혼했다. 그때도 지금처럼 현기증이 일며 두 팔이 저릿저릿했다.


  그의 이름을 부르려 했으나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후들거리는 다리를 한 걸음씩 떼어 그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찬바람이 목덜미 식은땀을 날카롭게 스치고 지나갔다. 우리의 짧았던 결혼 생활 동안 그는 집에서 보낸 시간보다 사무실에서 밤을 지새우는 날이 많았다. 나 역시 유난히 퇴근이 늦었던 어느 초겨울 밤이었다. 집으로 돌아가 문을 여니 환하게 불이 켜있었다. 들뜬 목소리로 남편의 이름을 불렀으나 인기척이 없었다. 한기가 감도는 고요한 집을 양쪽 팔을 감싸 안은 채 둘러보다가 그와 관련된 물건이 사라졌음을 깨달았다. 그의 옷가지와 책은 물론이고 결혼사진, 반지처럼 우리가 함께 소유했던 것도 다 증발했다.


 너의 곁으로 돌아갈 테니 기다려 줘.
우리, 다시 시작하자. 처음 만난 이들처럼.

 그의 흔적이라고는 휘갈겨 쓴 메모 한 장만이 책상 서랍 안에 남아있을 뿐이었다.




 그가 비탈진 언덕 위 골목 안으로 사라졌다. 그가 들어선 골목으로 따라 들어갔다. 막다른 골목 안쪽에 예상치 못한 너른 공간이 나타났다. 잔디가 깔린 대지 위로 1층과 2층을 엇갈려 쌓은 듯한 구조의 건물이 놓여있었다. 내가 운영하는 자그마한 카페에서 슬슬 걸어 올라오면 삼사 분도 채 걸리지 않았지만, 대로변에서는 눈에 띄지 않아 일부러 찾지 않는다면 발견하기 어려운 곳이었다. 회색도, 푸른색도 아닌 모호한 색상의 이 현대식 건물은 그의 작품일 것이다. 벽에 현판이 걸려있었다. ‘건축사사무소 지·은’. 김지석과 최은아. 그와 나의 이름이 한 글자씩 새겨진 현판을 아기 얼굴 만지듯 어루만졌다.




 문을 열고 사무실로 들어섰다. 은빛이 감돌기 시작한 그의 머리가 석양에 반사되어 빛났다. 그가 기대고 서있는 창 너머로 내 카페가 내려다보였다. 이 남자는 내 곁에 돌아올 거라던 약속을 지켰다. 세월의 흔적을 지닌 이 남자를 마주하고 있는 현재가 지난날의 나를 위로했다.


 그가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더니 눈가에 주름을 만들며 미소 지었다.

 “어떤 일로 찾아오셨나요?”

불을 켜지 않은 실내에는 어둠이 드리워져 있었다.

 “나예요.”

그가 다이어리 쪽으로 손을 뻗으며 물었다.

 “혹시 상담 예약하셨나요?”

나는 그에게 내 얼굴을 보여주기 위해 창가 쪽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나예요. 당신 아내.”

그가 두 팔로 등받이를 더듬으며 의자에 주저앉았다.

 “어떻게 나를 찾았어요?”

 “이 앞에서 당신을 봤어요. 당신 외국으로 떠났던 것까지는 수소문해 알고 있었는데 돌아온 줄 몰랐어요.”

 “우리, 일단 좀 나가요."

 “내 곁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었으면서, 왜 내 앞에는 나타나지 않았던 거죠?

그때, 한 여자가 걸어 들어오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지석 씨, 지켜보다니, 이게 무슨 말이야?”

그가 황급히 여자 쪽으로 다가가 속삭였다.

 “아무것도 아냐. 이 여자분이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아, 지은아.




이미지 출처: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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