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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니베리 Feb 25. 2024

여행의 목적

'쉼'과 '간병'의 거리


 우리 시댁은 미국에 있다. 사람들은 이 말을 들으면 부러움을 감추지 못한다. 하지만 나는 결혼생활 10년 동안 번도 시댁에 가보지 못했고, 대신 시부모님께서 코로나 기간을 제외하고는 거의 매년 한국에 오셔서 짧게는 주부터 길게는 달간 머다는 사정알고 나상대방의 얼굴은 곧 안쓰러운 표정으로 바뀐다. 올해는 남편이 퇴직으로 시간적 여유가 생겨서 우리가 시댁에 방문하기로 했다. 미국, 미국에 말이다! 시부모님께 우리 계획을 말씀드리자, 어머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동안 너희 부부 너무 고생 많았다.
 미국에 오면 아무 생각 말고 푹 쉬다가 가렴.
 여행도 많이 다니고."




 출국을 며칠 앞둔 목요일, 눈이 많이 내릴 것이라는 일기예보가 계속 흘러나왔다. 짙은 회색빛 하늘과 습기를 가득 머금은 공기가 왠지 모를 불안감을 가져다주었다. 아이 등교를 도와주시는 친정어머니가 걱정됐다. 눈길에 다치시기라도 하면 어쩌지?


 "엄마, 오늘 눈 온다는데 길이 미끄러울 것 같아요. 원이 돌봄교실 보내지 말고 그냥 집에 있게 하면 엄마가 더 힘드시겠지?"

 "아이코, 너는 항상 걱정이 너무 많아. 눈 오는 게 뭐 어때서? 암시롱도 안 하니, 걱정하지 말고 어서 출근하셔."

출근하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하필 그날따라 처리할 업무가 많아 퇴근이 늦어졌다. 어두운 거리는 새하얀 눈과 얼음으로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집으로 들어가니 아이가 달려와 품에 안겼다. 오늘 하루도 고생하셨을 엄마에게 죄송한 마음 담아 인사드리고 배웅하는데 엄마의 걸음걸이가 유난히 느릿느릿하고 어색다. 엄마를 뒤따라가 여쭤보니,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돌아오는 길에 넘어지며 발 접질렸다고 하셨다.

 

 다음날 아침, 직장에 지참 처리를 하고 엄마를 모시고 병원에 다녀왔다. 다행히 뼈에는 이상이 없었으나 염좌가 심해 걸음을 잘 걷지 못하셨다. 매일 남편과 조를 짜서 아이를 등하교시키고, 엄마를 병원에 모시고 다니다 보니 여행 준비는 고사하고 매일 늦은 시간까지 업무처리를 해야만 했다.

 '그래도 이만하면 다행이지.'

 눈 내리던 감돌던 불안을 회상하며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던 그때, 남편이 어두운 표정으로 다가와 입을 열었다.


 "형한테 전화가 왔는데 엄마가 입원하셨대."

 "왜? 어디 편찮으세요?"

 "장모님 미끄러지신 날, 엄마도 눈길에 미끄러지셨다는데...."

 급히 아버님께 전화를 드렸다.

 "네 어머니가 넘어져서 병원에 데려왔는데 뇌진탕이라네. 지금은 괜찮아 보이는데 혹시 모르니 하루만 자고 퇴원하려고."

 아버님 역시 놀라셨는지 목소리 역시 힘이 빠져있었다. 두 분 모두 걱정되면서도 한편으로는 어머님께서 곧 퇴원하신다고 하니, 크게 다치신 건 아니실 거라고 다행이라 여겼다.


 하지만, 미국에 도착해 보니 생각보다 상황이 심각했다.

 "네 어머니가 미끄러져서 넘어지며 의식을 잃었는데 병원에 도착해서도 한참 동안 의식이 없었어. CT를 여덟 번 찍었는데 두 군데에서 뇌출혈이 있더라고. 그래도 수술할 정도는 아니라 퇴원한 건데 쉬면서 지켜보다가 다음 주에 병원에 가봐야 해."


 이렇게 나의 첫 시댁 방문은 '쉼'과는 거리가 멀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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