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컵 속에 핀 장미

온전한 너

by 허니베리


라테아트 수업 시간. 결하트 위에 차곡차곡 하트를 쌓아 올렸다. 마지막으로 장미를 그려 작품을 완성하려는 찰나, 눈의 초점이 어긋났다. 장미가 짓이겨졌다.


'아....'

나를 둘러싸고 시연을 지켜보던 학생들 입에서 짧은 탄식이 새 나왔다.


늙다, 눈, 때문.

‘노안 때문에.’라고 수어로 변명하고는 학생들을 둘러보았다.


“노안이라고요?”

M이 커다랗게 입 모양을 지으며 물었다.


“응, 맞아. 가까운 게 잘 안 보여. 초점 맞추기도 어렵고.”


머뭇거리던 M이 조심스러운 손동작으로 또다시 질문했다.

“늙다, 눈.... 창피하지 않으세요?”


M의 의중을 살피기 위해 잠시 숨을 골랐다. 수어가 모국어인 M에게 수어 표현이 낯설었을 리는 없었다.


“창피하긴. 내 몸에 나타난 새로운 현상인걸. 근데 불편하긴 해. 안경을 끼니까 미모도 확 가려지고.”


박장대소하는 학생들 사이에서 M은 고개를 기울인 채 생각에 잠긴 듯했다. 잠시 뒤, M이 고개를 바로 세우며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자, 가려졌던 보청기가 드러났다. 나와 눈이 마주친 M이 수줍은 듯 살며시 미소 지었다.


나를 둘러싼 학생들 사이에 커다란 눈망울을 끔벅이며 서 있는 D가 눈에 들어왔다. 구어를 사용하는 D는 실력과 외모 모두 어디에 내놓아도 뒤지지 않는다. 하지만, 친밀한 거리 안에서만 간신히 들리는 작은 성량이 늘 아쉬웠다.


D를 향한 시선을 거두지 않은 채 질문을 던졌다.

“너희한테 내 청력에 대해서도 알려준 적 있던가?”

내 입과 손에 학생들의 눈길이 모였다.


“실은, 나도 소리가 잘 안 들려. 몇 년 전 코로나에 걸린 이후로 왼쪽 귀에 난청이 생겼거든.”


“아, 진짜요?”

D가 중얼거리더니 입을 벌린 채 나를 바라보았다.


“그래. 네가 말할 때 크게 말해 달라고 한 건 내 청력이 약해서이기도 해.”


“선생님, 병원에서 진단받았을 때 괜찮으셨어요?”

D가 한층 커진 목소리로 물었다.


“처음에는 받아들이기 어려웠지. 하지만 괴로워한다고 현실이 바뀌진 않잖아. 그래서 솔직하게 주변에 알리기 시작했어. 그랬더니 서로가해지더라.”


어깨를 으쓱하는 학생, 고개를 끄덕이는 학생 속에서 D는 잠시 생각에 잠긴 듯 보였다. 어느 순간, 투명하던 D의 눈에 채도가 강렬하게 입혀졌다. 목소리에도 그렇게 색이 채워질 것이다. D의 모습을 바라보는 내 코끝이 뜨거워졌다.


빨간, 꽃

C가 내 코를 가리키며 수어로 '장미'를 표현했다. 덩치 큰 녀석의 손가락으로 섬세하게 피어나는 꽃 모양에 학생들이 나비처럼 팔을 흔들며 웃었다.


“그만. 오늘 수업은 여기에서 마치자. 너희는 3단 하트 연습해 와. 나는 눈 감고도 장미를 띄울 수 있을 때까지 연습해 봐야겠다.”

C 덕에 웃으며 수업을 마무리했다.


학생들이 돌아간 후 고요한 실습실에 홀로 남아 라테아트 연습을 했다.

컵에 에스프레소가 채워지며 D의 눈망울이 떠올랐다. 그 위에 스팀 우유를 부어 장미를 그려냈다. 완벽한 장미보다 짓이겨진 장미가 많았다. 그럼에도 어느 컵도 골라내어 버릴 수 없었다. 바람에 잎이 찢기고, 벌레 먹어 파이고, 발에 밟혀 아스러져도 장미는 장미였다. 커피향과 장미향이 감미롭게 뒤섞였다.



사진: 학생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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