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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끝자락의 눈

코스타리카

by 허니베리


"기안 다시 작성하셔야 할 것 같아요. 메신저로 보내드렸던 내용 참고하시고요."

그녀에게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이번이 대체 몇 번째인지. 한숨 쉬지 않으려 숨을 잘게 나누어 뱉었다. 언제쯤 더위가 가시려나. 선풍기 전원을 눌렀다.

그녀는 뭔가를 잡으려는 사람처럼 공중에 손을 띄운 채로 자리에 멈춰서 있었다. 단발 머리카락이 바람에 흔들리며 상기된 뺨을 스쳤다. 가뿐히 해결할 수 있는 일이라고 여기고 맡겼지만, 그녀가 어두운 얼굴로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이 상황이 내게도 점차 무거운 과제가 되어가고 있었다.


일이야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나아질 터였다. 정작 난감한 것은 그녀의 시선이었다. 내가 말을 시작하면 그녀는 다부진 눈빛을 내게 고정했다. 깜빡이는 방법을 잊은 듯한 눈길을 받을 때마다, 태연한 척하는 겉과는 달리 머릿속은 복잡해졌다.


“급하게 하느라 메신저를 꼼꼼히 보지 못한 것 같습니다. 바로 수정하겠습니다.”


한랭전선과 온난전선. 그녀와 내 사이를 맴도는 두 기류가 내 머리 위에서 부딪힐 것만 같았다.


조용히 'MZ 시선 특징'을 검색창에 입력했다. 눈 내리기 직전의 하늘을 꾹꾹 쑤셔보는 기분이었다.

‘MZ세대는 빠르고 가볍게 시선을 처리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만일 이 말이 맞다면, 그녀의 태도는 MZ의 특성도 아니었다. 고개를 저었다.


그때, 교무실로 학생이 들어왔다. 그녀가 학생과 수어로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었다. 모국어로 소통하는 그들은 서로의 눈을 주목하며 손과 표정, 입 모양으로 정보와 감정을 주고받았다. 내가 노력해도 온전히 다다르기 어려운 세계. 그들은 그 화려한 공기 속에서 자유로웠다.


눈을 바라보며 대화하는 것이 존중과 몰입의 표현인 농인 문화에서 자란 그녀와, 시선을 적당히 두었다가 거두는 리듬을 예의로 여기는 청인 문화에서 살아온 나. 학생들의 눈빛은 당연하게 받아들이면서도, 그녀의 시선에는 내가 속한 문화적 잣대를 무심코 들이대고 있었다.


커피의 향을 맡으면 정신이 번쩍 들지 않을까. 예민하게 깨어난 감각으로 세상을 마주하고 싶었다.


학생이 돌아간 뒤, 그녀의 자리로 다가갔다. 그녀가 바퀴 달린 의자를 굴리며 뒤로 조금 물러섰다.

"커피 테스트하러 갈 건데 같이 내려가실래요?"

"커피요?"

그녀가 나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나 역시 그녀의 눈을 응시했다.

"며칠 전 코스타리카 커피를 로스팅했거든요."


잠시 뒤, 그녀의 얼굴에 웃음이 번지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저, 무슨 맛일지 기대돼요!"

"아마 몇 번은 추출해 봐야 할 거예요. 레시피를 단번에 잡기는 어렵거든요."

로스팅실에 다가가자, 내 반걸음 뒤로 따라오던 그녀가 얼른 나를 앞질러 문을 열어주었다.


커피를 내려 함께 잔을 들었다. 오렌지 향과 캐러멜의 단맛이 어우러지며 긴 여운을 남겼다.

커피를 향했던 시선이 서로에게 옮겨갔다. 비슷한 기류를 띤 눈빛들이 공중에서 부드럽게 만났다. 비나 눈이 내릴 가능성은 매우 낮아 보였다.



이미지 출처: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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