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J가 보청기 뺐어요. 선생님 목소리가 커서 귀가 아프대요.”
M이 허리를 굽힌 채 깔깔대며 수어로 말했다. 그 옆에선 J가 얼굴을 붉히며 야속한 눈빛으로 M을 흘끗 쳐다보았다.
장애인 바리스타 대회를 하루 앞두고 본선에 진출한 학생들과 최종 점검을 하던 중이었다. 하필 감기가 돌아 학생들은 마스크를 쓴 채 눈만 덩그러니 내놓고 있었다. 감기약 탓인지 여덟 개의 눈동자가 나를 느릿하게 따라다녔다. 평소처럼 수어와 말로 설명을 했지만 반응이 없자,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점점 커졌나 보다. 내 얼굴도 달아올라 두 손으로 뺨을 감쌌다.
잠시 뜨거운 기운을 식히기로 하고, 학생들에게 휴식 시간을 주었다. 교무실에 올라가 대회 일정표, 규정집, 공식 머신 사양, 준비물 리스트를 다시 확인한 뒤 실습실로 내려왔다. 이번에는 내가 어질어질했다.
학생들은 기운을 차렸는지 다시 연습에 몰입했다. 플랫버가 빠르게 회전하며 원두를 가는 소리, 우유가 마이크로폼으로 변해가는 스티밍 소리가 귓속을 파고들며 정신이 또렷해졌다.
대회 준비를 마친 학생은 차례대로 인터뷰 연습에 들어갔다.
강력한 우수 후보인 D가 첫 번째 순서였다.
“본인 소개 부탁해요.”
말을 마치고 미소 지으며 D를 바라봤다. 하지만 D는 질척한 커피퍽처럼 흘러내릴 듯 서서 아무 말이 없었다.
정적을 비집고 다른 학생들의 연습 소리가 겹쳐왔다.
보청기를 뺀 탓에 커진 J의 목소리, 만드는 작품처럼 언변도 화려한 Y, 발표 내용을 수어로 표현하며 내뱉는 M의 숨소리.
“이름, 소속 정도만 간단히 이야기해도 충분해.”
D의 윤기 맴도는 눈동자, 벌리다 만 입, 깍지 낀 손가락 사이로 어둠이 어른거렸다.
“D, 너에게 필요한 건 하나야. 내가 전에 말했던 거 기억 나니?”
D가 살짝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자신감.” D는 최면에서 풀린 듯 눈을 깜빡이며 내 눈을 응시했다.
“지금처럼 열심히 노력하면 청인 바리스타 사이에서도 돋보일 만한 실력을 지니게 될 거야. 내년에는 일반인 대회에도 도전해 보자. 선생님 부탁이 있는데 들어줄 수 있니?”
내가 말하는 동안 살며시 올라가던 D의 입꼬리가 멈췄다.
“나중에 네가 유명해지면, 대회나 시연 장소에서 선생님이랑 사진도 찍어주고, 사인도 해줄래?”
진담 섞인 농담에 D의 입꼬리가 다시금 올라갔다.
“그럴 거지?”
“네.” 이번에는 반응이 빨랐다.
다음 날, 최우수상을 받은 D의 곁에 서서 찍힌 사진 속 내 얼굴은 기쁨보다는 당연하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라고 어제, 즉 대회 전날 이 글의 마지막 문장을 미리 써 놓았다. D는 그라인더 세팅, 에스프레소 추출, 스티밍, 라테아트, 서비스 태도까지 느슨한 부분이 없었다.
그러나 본선 무대 위 에스프레소 머신 앞에 선 D의 굳은 등을 보는 순간, 실패를 직감했다. 한 컵에 로제타 세 개도 그리던 D는 결국 기본 로제타조차 완성하지 못했다.
대회 장면을 지켜보던 내 고개가 떨궈졌다. 잠시 후 고개를 들고 무대에 서서 심사 위원들의 평가를 기다리는 D를 주시했다. 나처럼 굳어있던 D의 얼굴 근육이 조금씩 풀리고 있었다.
대회 폐회 후 헤어지기 전 여학생들을 꼭 안아주면서도 시선은 D를 쫓았다. 이미 인사를 하고 돌아선 D를 불러세워 허그할 수 있는 문화는 아니었다.
집으로 돌아와 대회를 마친 후 찍은 단체 사진을 확대해 보았다. D는 입술을 일자로 굳게 다물고 있었으나, 손가락으로는 브이를 만들어 얼굴 옆에 댔다. 안정화를 마친 갈색 커피 표면 위로 스팀밀크가 서서히 떠오르며 모양이 생기듯, D가 작품이 되어가고 있었다. 이 청년은 앞으로 과연 어떤 모양으로 완성될까.
그날 밤 대회 참가자 단톡방에 메시지를 남겼다.
‘여러분 모두가 자랑스럽습니다.’
수상한 학생보다도, 그렇지 못한 학생들을 향한 메시지였다.
내년에 또다시 무대에 서게 될 D,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볼 나의 모습을 그려보았다.
어쩌면 또 다른 실패가 기다릴지도 모른다. 학생들을 데리고 대회에 출전하면 상을 휩쓸던 내가 전에 하지 못하던 생각이었다. 하지만, 내년 그 자리에는 더 단단한 손끝과 눈빛을 지닌 D와 내가 있을 것이다.
#전국장애인바리스타대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