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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니베리 Oct 03. 2023

아프지만, 아프지 않게 계승되는 사랑


 출근 준비를 하는데 집안에 친정엄마의 목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린다.

 “밥 먹다가 왜 일어나서 돌아다니는 거니?”

 “숙제 안 챙긴 거 생각나서 잠깐 일어선 것도 안 돼?”

 “연필은 깎았니? 아니, 이게 뭐니? 미리미리 깎아놓았어야지.”

 “이렇게 써도 아무 문제없었는데.... 주말에 깎으려고 했어요!”

 “너 지금 또 옷 물어뜯고 있는 거니? 그러지 말랬지!”


 친정엄마가 아들에게 하는 잔소리, 아들의 앙칼진 말투. 이 두 사람이 티격태격하는 소리를 듣고 있자니, 고부갈등을 지켜보는 남편들의 심정이 이해되는 듯했다. 잠시 뒤, 아들이 내가 화장하고 있는 안방으로 들어오더니 내 침대에 엎드렸다. 아이에게 가만히 다가가 머리를 어루만지며 아이를 살펴보니 숨죽여 울고 있다.

 “원아, 아침부터 속상했구나. 오늘 할머니께서 좀 피곤하신가 봐. 엄마도, 너도 피곤하면 날카로워지잖니. 그런데 말이야, 할머니한테 대답할 때는 예의를 지켜줬으면 해.”


 밖으로 나왔더니 엄마가 연필을 깎고 있었다. 엄마에게 조용조용 속삭였다.

“엄마, 원이 또래 남자아이가 스스로 연필 깎는 거 챙기는 경우가 적어요. 제가 옆에서 챙겨줬어야 했는데 놓쳤어요. 그리고 원이, 불안하면 옷을 물어뜯으니 조금은 모른 척해주세요. 차차 좋아질 거예요.”


 엄마에게 인사한 뒤, 아이를 꼭 끌어안고 뽀뽀했다. 동글동글한 코, 보들보들한 양쪽 뺨, 말랑말랑한 이마. 그리고 다시 한번 아이의 작은 몸통을 꼭 끌어안았다. 그때, 엄마가 멀리서 소리치셨다.

“애 닳겠다! 어서 가라.”

“다녀올게요.”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며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유치원 다니기 전이니 네다섯 살 무렵이었을 거다. 마루에 앉아있는데 엄마가 기둥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엄마의 등과 엉덩이는 보였지만, 얼굴이 보이지 않으니, 겁이 덜컥 났다. 엄마를 부르자 기둥 뒤에서 엄마 얼굴이 나타났다. 반가움에 엄마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다시 “엄마, 엄마!”를 외쳤다.

“엄마 닳겠다. 그만 불러라. 얼굴도 그만 쳐다보고.”

 엄마는 웃으며 말했지만, 어린 마음에 겁이 덜컥 났다. 엄마를 자주 부르면 안 되는 건가? 엄마 얼굴을 계속 바라보면 진짜 닳아서 사라지는 건가? 사랑 표현에 인색한 엄마 아래에서 자라서인지 지금도 엄마와의 스킨십은 상상되지 않을 정도로 어색하다. 하지만, 아들에게는 내가 받지 못한 것에 대한 보상심리인지 애정표현을 듬뿍 한다. 남자아이니 사춘기 이전까지만 가능할 것이라 아쉬워하며.


 퇴근하고 집에 돌아왔다. 엄마와 아이가 나를 반겨주었다. 아이에게 두 손을 뻗으면서 고생했을 엄마에게 먼저 인사말을 건넸다.


“오늘도 수고 많으셨어요. 힘드셨죠?”

“수고는 무슨. 예쁜 원이를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힘이 나는데. 너만 안 아프고 건강하면 돼. 나는 괜찮다.”




 그날 밤, 아이 곁에 누워 잠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다.

“원아, 아침에 속상했지? 근데 말이야, 원이도 알겠지만, 할머니께서 하시는 말씀이 옳은 게 많아. 원이 걱정하셔서 그런 거고. 그리고 엄마는 말이지, 원이가 할머니 속상하지 않게 하면 좋겠어. 이건 할머니를 위해서가 아니라 원이를 위해서야.”

“왜요?”

“엄마의 아빠가 들려주신 말씀이 있어.”

아이 눈동자가 흔들렸다. 아마도 묻고 싶은 거겠지. 아이의 마음을 알아채고 덧붙였다.

“지금 외할아버지 말고, 엄마의 돌아가신 친아빠. 엄마가 아빠 속을 많이 썩였거든. 그때 아빠가 말씀하시더라. 아빠도 키워주신 할머니 속 많이 상하게 했는데, 나중에 커서 보니 너무 후회된다고. 할머니한테 죄송하다고 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어서 말이야.”

“왜 죄송하다고 할 수 없었....” 아이가 묻다가 이내 입을 닫았다.

이런.... 어리석은 엄마가 어린 네게 감당하기엔 너무 무거운 이야기를 풀어놓아 버렸구나.

아이가 조용해지더니 코를 풀겠다며 휴지를 찾았다.

“그래도 원아, 다행히 우리는 할머니한테 사과할 수도 있고, 잘할 기회도 있어. 그러니까 좀 노력해 보자.”

아이가 울음을 그치고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나는 학창 시절 부모님 속을 상당히 썩였다. 몸이  또래 아이들처럼 미래를 꿈꿀 수 없었기 때문이다. 좌절감에 식음을 전하며 일주일이고 이 주일이고 방을 나가지 않았던 적도 있었다. 신에게, 부모에게 나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게 나았을 거라는 말까지 쏟아내곤 했다. 어느 날, 아빠가 나를 차에 태우고 달리던 중 핸들을 확 꺾으려다가 다시 방향을 틀었다. 1초 정도의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아빠가 어떠한 선택을 하려다가 말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왜 이 선량한 분을 고통의 낭떠러지로 밀고 있을까.  


 한참 후 아빠의 떨리던 팔이 진정되더니 아빠가 담담히 말했다.

 “아빠가 말이야, 할머니 속을 많이 썩였어. 너처럼 몸도 많이 아팠고, 많이 방황했어. 그때 할머니가 그러시더라. 나한테 한 모진 말들과 행동, 나는 괜찮은데 나중에 네가 후회할까 봐, 그게 너무 맘 아프다고. 요새 할머니 생각이 많이 난다. 아빠도 그래. 네가 나중에 마음 아플까 봐 가슴이 아프다. 나중에라도 네가 후회하거나 마음 아프지 않으면 좋겠다. 아빠는 진짜 괜찮으니까.”




 그 뒤로 오랜 세월이 흘렀다. 증조할머니의 사랑이 아빠에게로, 아빠의 사랑이 내게로 흘러왔고 그 사랑은 또 나의 아들에게 흘러가고 있다. 엄마의 투박한 사랑 역시 나를 통해 아들에게로 흘러가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아프지만 아프지 않게 사랑을 계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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