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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결Lib Sep 11. 2017

프라하의 존 레논 벽을 아시나요

여행지에서

존 레논 벽

이 곳이 바로 존 레논 벽.

내게는 맥주 꼴레뇨 성곽 까를교 그 어떤 프라하의 상징들보다 인상이 깊게 남은 곳이다.


50미터도 되지 않을 법한 짤막한 이 벽을 마주한다면 누구나 감탄보다는 '에게?'라는 말이 나올 것이다. '존 레논' 벽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도 존 레논은 이 벽을 들른 적조차 없다.

소련 지배 시절, 몰타 대사관 옆에 서 있던 이 벽에 프라하 시민들은 자신들의 분노, 염원, 소망을 이 벽에 적었다. 치외법권으로 인해 거의 유일하게 허용된 정치적 의사 표현의 공간이었던 셈이다. 평화로운 세계를 꿈꾸는 가사의 Imagine을 노래한 존 레넌이 죽자 이 벽에는 그의 이름이 붙여졌다.

저항은 번번이 실패했다. 수 많은 시민들이 죽어나갔다고 한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바플라츠 광장에 모였던 강직한 체코인들의 열정은 결국 유럽 전역에 퍼졌고, 굳건해 보이던 공산 독재도 무너졌다.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조, 독일 나치, 소련 공산당, 총 500년이 넘는 지배를 거치면서 체코는 각각 다른 나라의 문화를 흡수하게 됐지만 그럼에도 그들만의 색깔을 잃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한 흔적을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그들의 무뚝뚝한(어쩌면 불친절한) 성격도 하나의 증거, 수 차례의 외세 침략 때문에 생긴 일정의 방어기제랄까.

이렇게 바라보니 비슷한 비극을 공유한, 아니 어쩌면 훨씬 혹독한 시간을 견뎠을 체코인들에게서 동질감이 느껴지고, 존중까지 생긴다. 궁전에서 호사를 즐겼던 비엔나 왕족의 후손들에게선 느끼지 못했던 감정이다.

지금 프라하의 광장엔 '봄'이 찾아왔다. 결혼식을 막 올린 부부가 새로운 시작을 알리고, 알록달록 비누방울들이 떠다니고, 애인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과거의 영향으로 인한 음울한 분위기를 전부 지우긴 어려워 보이지만 그럼에도 프라하는 자세히 보면 볼수록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추운 겨울 견디고 꿋꿋이 살아남은 풀꽃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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