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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결Lib Jul 22. 2022

스웨덴에선 손님 빼고 식사를 한다?

스웨덴 게이트와 다원주의

넌 방에 남아있어!


   5~6년 전쯤 국내 서점가와 방송가에서는 ‘북유럽 열풍’이 불었다. 북유럽의 교육, 생활방식, 기업 등을 마치 지향해야 할 문화적 이상향으로 소개하는 것이 유행이었다. 한국의 집단주의 문화에 피로감을 느낀 이들에게 이러한 자극은 꽤 컸던 탓인지 국내의 북유럽 여행 및 이주 수요는 계속해서 증가하는 추세라고 한다.


   그런데 최근에 북유럽 문화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과는 대조적인 반응이 쏟아지게 된 사건이 있었다. 최근 Reddit이라는 커뮤니티에는 스웨덴에서 친구 집에 놀러 간 짧은 후기 글이 올라왔는데, 그 내용은 저녁 시간쯤이 되자 친구가“vänta på rummet!”(“넌 방에 남아있어!”)라는 말을 남기고 나가고선 한참 돌아오지 않아 글쓴이가 1층 거실로 내려 가보았더니 친구네 가족이 한창 저녁 식사를 하고 있던 것을 목격해 기분이 끔찍했다는 것이었다. 이 글은 금세 유명해져‘스웨덴 게이트(Sweden Gate)’라는 이름으로 전 세계에 퍼졌고 스웨덴의 ‘손님만 쏙 빼고 식사를 하는’접객 문화에 대해 갑론을박이 펼쳐지고 있다. 특히 (비판적인) 반응이 뜨거운 곳은 공동체주의가 발달한 아시아와 중남미의 국가들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스웨덴의 접객문화가 생소하고 이해가 어렵다는 반응이 쏟아지고 있다.‘큰 쌀독 열어 놓고 손님 대접한다’라는 속담이 있을 만큼 한국은 집에 찾아온 손님을 후하게 대접하는 문화가 있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스웨덴에선 왜 이런 접객문화가 생겨났을까? 


   스웨덴의 접객문화가 논란이 되자 스웨덴인들은 이러한 논쟁이 생기는 것 자체가 의아하다는 반응이다. 개인주의 문화가 깊이 자리 잡은 스웨덴에서는 ‘너와 나의 관계는 대등한 1:1의 관계이며, 집에 놀러 오게 되더라도 타인의 부모가 너의 식사를 챙길 의무가 없고, 너도 그러한 식사를 원하지 않을 수 있으므로’식사를 대접할 수도 있으나 대접하지 않을 자유도 있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러한 주장은 다소 차갑게 들리지만 그 이면을 더 깊이 살펴보면 이러한 문화가 자리 잡게 된 것이 스웨덴인들의 냉정함에 기인한 것만은 아님을 알 수 있다.


   첫째로 스웨덴인들은 ‘약속과 계획을 굉장히 중요시한다’. 학생들은 주로 3시에 학교에서 마치고, 노동자들은 4-5시에 퇴근해 6시 전에는 가족 모두가 집에 도착하게 되는데, 따라서 가족 전부가 참여하는 저녁 식사는 가족 중심주의적인 스웨덴인들에게 일정하게 행해져야 하는 신성한 규칙이다. 또 보통 가족 구성원 간에 식사 담당이 돌아가기 때문에 담당이 알맞게 요리를 준비할 수 있도록 가족 간일지라도 식사 일정의 변화가 생기면 미리 고지하는 것이 관행처럼 행해진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남의 가족 구성원이 예고 없이 식탁에 오는 것은 얼마나 비일상적인지 알 수 있다. 물론 스웨덴에서도 초대 문화가 존재한다. 그들은 사람을 초대할 때 여유롭게 초대를 준비하는 과정을 즐긴다. 초대 자체를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예상치 못한 방문에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을 뿐인 것이다.

   

   다음은 역사적 배경에 관한 것이다. 척박한 북유럽의 지형으로 인해 스웨덴은 지금과 달리 과거에 먹고 살기 어려웠던 나라였다. 대기근을 겪은 시절에 미국으로 이주한 역사가 있을 만큼 농경 작물로 한 해를 보내야 했던 스웨덴인들에게 저녁 식사를 철저히 계획해 아껴 먹는 것은 굉장히 중요했다. 그리고 받았으면 그대로 다시 갚아야 한다는 부담을 느끼기 때문에 지나친 베품은 오히려 상대방을 곤란해하게 할 수 있다는 인식이 공유되었다. 이런 역사적 배경은 누군가를 후하게 대접하는 문화가 자리 잡지 못했데 기여한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스웨덴의 식사 문화를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스웨덴에서는 견과류는 물론, 글루틴, 제품 등 채식이나 다양한 식습관을 가진 이들을 배려하는 것이 일상적이라 서로의 식습관을 자세히 알지 못한 상황에서 초대를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또한 스웨덴의 케쥬얼한 저녁 식사는 샐러드나 탄수화물을 추가해 먹는 스타일로 밑반찬을 요리해놓고 보관해서 먹는 것이 아니라 매일매일 그날 식사에 맞는 양의 식재료를 준비하고 새로운 저녁 식사를 해 먹는다고 하니 갑작스런 식사 대접이 어렵게 느껴지는 것이다.


개인주의 문화가 주는 영향

 

   한국인에게 충격으로 다가온 ‘무려 밥을 안 주는’ 문화는 그 나름의 이유와 배경이 있고, 듣다 보면 이것이 반드시 정 없는 개인주의 때문만이 아니라 오히려 끈끈한 가족 내의 원칙과 애정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뿐 아니라 스웨덴인들은 같은 사회 안에 구성원 임에도 타인과 내가 철저히 다를 수 있음을 받아들이고자 얼마나 깊이 노력하는지 알게  된다. 공동체주의 문화권에서는 개개인의 개성이나 의견이 예의, 허례허식, 분위기라는 이유에 쉽게 묻히기도 한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오히려 도드라지는 문화적 장점일 것이다.


   그러나 개인주의가 스웨덴 사회에서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리만은 없다. 언젠가 핀란드 친구는 내게 “우리나라에선 서로에게 밀착되는 것이 싫어 정류장에서도 앉아 있지 않고 서서 기다린다”라고 말했던 적이 있다. 그만큼 존중이라는 단어에 숨어 개개인들은 서로에게 무관심하다. 방어적이고, 냉소적으로 커가는 아이들이 많아지는 것은 스웨덴에서도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고 한다. 싱글 가구의 수가 유난히 많은 나라, 정자를 기증받아 아이를 낳는 스웨덴의 싱글 여성들, 고독사가 유독 많은 나라, 북유럽 선진국으로 추앙되는 스웨덴 사회의 이면이다.


어떤 문화도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하지 않다


   ‘스웨덴 게이트’는 다원주의를 대하는 자세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는 사건이다. 각자의 문화마다 존중받을 지점이 있다. 이상적으로 생각되던 개인주의가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라는 것. 한국의 공동체주의도, 서양의 개인주의도 정답도 오답도 아니다. 바람직한 사회라면 개인이 어떤 문화를 선호하고 선택하는지에 대해 자유를 부여하고 그러한 자유를 존중하는 사회여야 할 것이다.


   개인적인 경험을 이야기해보자면, 개인주의라 스스로 여겼던 필자는 영국 교환학생 생활을 거치고 나서 스스로가 뼛속까지 ‘한국인’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그 이후론‘정’이라는 단어와 함께 끈끈한 동료애, 살을 쉽게 맞대는 나눔을 선호하는 공동체주의 문화가 잘 맞고 새삼 참 매력적으로 느껴 진다. 굳이 더 바람이 있다면 한국인으로서 체화한 공동체주의를 더욱 건전하고 따뜻하게 내면에서 발전시키고 싶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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