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진에서 사비로 넘어가는 백제
곰사당 : 충남 공주시 웅진동 452-3에는 곰사당이 있다. 고마나루의 전설은 백제시대 때부터 내려왔다. 고마나루의 전설은 곰나루 북쪽에 솟아 있는 연미산 중턱에는 전설 속의 곰이 살았다는 동굴이 곰나루를 내려보며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인간인 남자를 붙잡아 새끼 두 마리를 낳고 살았으나 남자가 몰래 강을 건너 도망쳤다. 이에 어미곰은 자신의 남자를 잃어버린 것에 실망하여 새끼 두 마리와 함께 금강에 빠져 죽었다. 이후 금강은 건너기 힘들 만큼 비가 쏟아지고 조용할 날이 없었다. 마을에서는 곰의 원한을 풀고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하여 나루터 인근에 곰사당을 짓고 제사를 지내면서 금강이 예전 모습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수진 : 진수는 논문 잘 준비하고 있는 거야?
진수 : 지금 자료수집 중이야. 이제 전체 프레임을 잡아야지.
소희 : 주제가 뭔데 그래? 뭔지 말해봐.
진수 : 이번에 주제는 잡긴 했는데 딱히 머리에서 안 떠오르네. 지도교수님에게 내 주제가 "세종특별자치시 vs 서울특별시의 역학관계와 국민 삶의 변화"인데 좀처럼 실마리가 안 잡히네.
수진 : 그래? 그럼 오늘 가는 곳에서 힌트를 얻을 수도 있겠다.
주만 : 오늘 공주 간다고 한 거 아냐?
수진 : 응 맞아. 단군신화 같은 전설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거든. 그걸 보면 진수 정도면 무언가 머리에 떠오르는 것이 있을 거야.
소윤 : 단군신화요? 곰과 호랑이 사람 되는 머 그런 거 말인가요?
수진 : 맞아 그런 비슷한 이야기지.
진수 : 그래? 아무튼 가보자.
성현 : 생각해보니 그럴 수도 있겠네.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가 아니니까. 혹시 고마나루 전설이야기를 들어본 적 있어?
주만 : 아니. 처음 들어봐.
성현 : 공주에 가면 고마나루라는 곳이 있는데 고마나루는 공주의 옛 지명으로 금강변 나루 일대를 지칭하는 말로 백제의 수도 웅진의 옛 이름이기도 했던 고마나루의 '고마'는 곰의 옛말이며 '나루'는 배가 건너 다니는 곳이었어.
소윤 : 예 그런데요. 그냥 전설이잖아요.
수진 : 그 전설이라는 것이 곰나루 맞은편 연미산에 암곰이 살았는데 나무꾼 사내를 붙잡아 와 굴에서 함께 지냈는데 아이가 둘 생기자 암곰이 안심한 틈을 타 나무꾼이 강을 건너 도망쳐 버렸어. 이에 암곰은 두 아이와 함께 강물에 몸을 던졌는데 그 후 저 곳 금강에서는 배가 뒤집히는 일이 잦아졌고 사당을 지어 곰의 넋을 위로하자 재앙이 그쳤다고 전해지고 있어.
주만 : 그래 전설이야기 잘 들었는데 그게 진수 논문과 무슨 연관이 있다고 그래?
성현 : 지금 한국에서 가장 사람이 많이 사는 도시는 서울이잖아. 서울 빼놓고는 모두 지방시라고 부를 정도로 모든 행정기능, 국회, 청와대 등이 모두 그곳에 몰려 있는데 고 노무현 대통령 때 세종시로 행정기능을 옮기는 세종시 특별법이 만들어진 것은 잘 알고 있을 거야.
진수 : 그거야 잘 알지. 세종시 특별법 때문에 위헌 소동도 있었지만 결국은 과천청사 대부분 그곳으로 옮겼잖아.
수진 : 왜 그리 반대가 심했을까? 이전에는 공무원들의 대부분 과천에서 일하고 있었지만 상당수가 서울에 적을 두고 있었고 대다수의 대기업의 본사가 서울에 있기 때문에 그들 역시 정부와 일하기 편한 그곳에 그대로 있는 것이 좋았겠지. 게다가 집값이 떨어질까 봐 싫어한 서울시민들도 적지 않았어. 지금도 세종시에서 일하는 상당수의 공무원은 가족이 서울에 있는 경우가 많아. 행정기능은 모두 옮겨왔지만 국회가 서울에 있기 때문에 공무원이 서울에서 출장 근무하는 경우도 많잖아.
소윤 : 아~ 그건 저도 뉴스로 접하거나 선배한테 들은 적이 있어요.
성현 : 바로 그거야. 고마나루의 전설이 그냥 전설이 아니라는 의미야. 백제가 웅진(공주)에서 사비(부여)로 수도를 옮기는 것은 지금의 행정기능을 이전하는 세종시와 비슷한 맥락에서 볼 수 있어. 대부분 고대국가의 수도는 강을 끼고 있었는데 금강을 끼고 있는 공주는 수도로서 괜찮은 지역지만 한 국가의 수도로서의 역할을 하기에는 규모가 작았어. 그러다가 538년에 백제는 사비(부여) 천도를 시도하게 되고 지금과 규모를 비교할 수는 없지만 당시 공주에 거주하던 토착세력 등은 수도를 옮기는 것을 당연히 싫어했겠지.
소희 : 아~~ 그럼 그 곰을 상징하는 것이 공주의 토착세력이겠네.
수진 : 맞아. 백제라는 국가의 역학구도에 변화가 생기는 거야. 그 남자가 도망친 것이 바로 사비로의 이주라고 볼 수 있고 결국 공주에 남아 있던 곰 가족이 금강에 투신자살한 것은 도읍 변경으로 인한 토착세력이 몰락한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진수 : 역학구도의 변화라... 그냥 전설로만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당시 상황을 전설처럼 만든 것이구나.
수진 : 그 후부터 웅진으로 가는 선박에 대해 토착세력들이 해코지 하면서 저항을 했었고 백제라는 하나의 국가 내에 알력이 생긴 거지. 아마도 백제왕은 웅진의 토착세력에 대한 배려를 해주었을 거야. 그리고 사비와 웅진의 우호적인 관계 형성에 도움이 되었을 테고 이는 화해의 형태로 사당 건립 등을 통해 기념했을 거야. 그게 곰사당이라고도 볼 수 있지.
소윤 : 아~ 그럼 그때의 역사적인 흔적을 찾아보면 역학관계라던가 백성 삶의 변화 등을 알 수 있겠네요.
소희 : 진수가 실마리를 잡는데 도움이 되겠네.
주만 : 전설이야기가 그냥 단순한 것만은 아니구나.
수진 : 한국의 모든 지역명은 모두 그 나름의 의미가 있고 전설은 그 시대의 삶을 투영하고 있어.
진수 : 고마워. 올라가면 자료 조사하러 도서관에 가봐야 되겠다.
성현 : 그래 프레임이 잡히면 우리한테도 보여줘 봐.
주만 : 그런데 이상하지 않아? '곰 같은 여자'는 많이 말해도 '곰 같은 남자'라는 말은 잘 안 하지 않아?
수진 : 단군신화에서도 호랑이는 남자, 곰은 여자를 상징하기 때문 아닐까?
돌 곰의 발견 : 백제때부터 시작된 제사는 통일신라시대에는 서독, 조선시대에는 남독으로 숭배되어 오다가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제사의식이 중단되었다. 잊혔던 이야기는 1972년 곰사당이 있던 자리에서 화강암으로 된 높이 34㎝, 폭 29㎝의 돌 곰상이 발견되면서 고마나루의 전설이 다시 이어졌다. 곰사당은 시간이 흐르면서 웅진 연소, 웅진사, 운진 신사, 웅진단으로도 불려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