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투사 트릴로지 Part Ⅰ, 돌이켜보면 잊을 수 없을 시기들의 기억
군 복무는 신체 건강한 한국 남성에게 피해갈 수 없는 과정이다. 요즘에야 "누가 더 편한 군생활을 하나?"로 경쟁을 한다는 우스갯소리도 심심치 않게 들리지만, 육군이든 해군이든 공군이든 공익이든, 하물며 상근이든 의무소방이든 의경이든 생전 연고 없던 조직에 짧게는 1년 반, 길게는 3년까지 묶여 있어야 하는 것은 큰 스트레스다. 필자는 정말 운이 좋게도, 스무 살에 지원한 카투사 모집에 붙어서 남 부럽지 않은 군 생활을 하고 있다. 앞으로의 글에서는 필자가 경험한 카투사, 그중에서도 통역병의 삶에 대해서, 그리고 함께 생활한 미군들을 보고 느낀 몇 가지를 적어본다. 이번 글에서는 간략하게나마 소위 말하는 '카투사 라이프'를 다루고 싶다.
재정회계, 박물관장도 아니고 통역병이라고..?
우선 카투사는 5-6주간의 논산기초훈련, 3주간의 KTA(Katusa Training Academy)를 거치면, 전산추첨을 통해서 1년 반 동안 역할 수행을 할 보직을 지정받는다. 전산, 의무, 운전, 전투, 항공 등 여러 분야가 있지만 대부분의 카투사들은 행정 직책 속 다양한 보직 중 하나를 지정받아 생활하게 된다. 필자가 KTA를 수료할 즈음엔 전산 모집 이외에도 면담 선발로 뽑는 보직들도 8개 정도 홍보되었다.
금융업계를 희망하는 필자로서는 어린 생각에 군대에서도 관련된 직종을 받아보겠다는 일념으로 재정회계병을 희망해서, 실제로 면접 준비도 하고 있었으나 운전면허가 필수라는 난관 앞에서 포기할 수밖에 없었고 차선으로는 평택에 넓은 미군 박물관을 활보하는 박물관장 보직을 소망했던 기억이 있다. 허나 무자비한 전산 추첨은 필자의 기본 제출 영어점수(TOEFL 115점)와 KTA 영어시험 점수를 높게 평가했는지 작전 통역병, 그것도 카투사 중에서는 가장 삼엄한 업무를 담당한다는 동두천 지역대로 보내버렸고, 어안이 벙벙한 채 내 통역병 라이프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CPL Ahn's contribution while assigned to the 210th FA BDE LNO section and in support of the 1st ROK FAB will have a lasting effect on the future operations of the LNO. His ability to effectively and efficiently translate fire missions has drastically reduced the time in which counter-fire missions are send and recieved between the U.S HHB 210th FAB, 1st ROK FAB, and the 3rd ROK army Headquaters.
- HHB 210th LNO NCOIC,
SGT JORDAN. K. ANDERSON
통역병의 역할을 처음 배정받고 필자가 해야 했던 일은 단어를 외우는 것이었다. 12년 동안 시험만을 위한 영어공부를 하다가, 막상 실전에 투입되어 생활영어를 구사해야 하는 것도 난관이라면 난관이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군 통역을 하기 위해서 외워야 하는 새로운 군사용어들이 더 막막했던 듯하다. 군사용어가 어려운 이유는 지금까지 영어 공부를 얼마나 많이 했건 상관없이 처음 보는 단어들이 우후죽순 등장하는 데다가, 막상 군 복무를 마치고 나면 사용할 일이 없어진다는 사실에 스스로 동기부여를 하는 것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허나 모든 군 지식들이 그러하듯, 자신이 맡은 바 직책에서 일을 하기 위해서는 익혀야 하는 것들이기에 나름 빠른 시기에 암기했던 것 같다, 이는 현재 통역팀으로 새로 배정된 신병 친구들에게 완연한 선임 통역병이 된 내가 강조하는 바이기도 하다.
통역병의 업무는 영내 훈련보다는 영외 훈련 시에 더 바빠지는 경향이 있다. 다른 카투사들과는 다르게, 육군의 훈련에도 참여하면서 육군 생활관에서 미군 군복을 입고 미군과 함께 2박 3일 자는 진귀한 경험도 할 수 있다. 어찌 되었든 통역병의 업무는 훈련 시에 파견을 나가서 미군과 육군 사이 언어의 장벽을 부수는 데 있다. 이병이나 일병 초기 때만 해도 장교진들이나 중요인사의 통역은 맡지 않는다. 통역의 숙련도도 문제지만, 군사훈련 또한 이들에겐 비즈니스라, 오랫동안 얼굴을 마주하고 함께한 카투사를 대동하는 것이 말을 전하는 미군에게도, 통역을 듣는 육군에게도 더 편안한 입장에서 업무를 볼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비록 통역 섹션의 최고선임이 된 지금은 장교진 통역에, 작전 계획 브리핑 ppt에, 맡아서 해야 하는 일이 많지만, 군 경력이 많지 않았을 때만 하더라도 선임들의 뒤에 붙어서 부대 견학만 했던 기억이 있다. 과정이야 어찌 되었건, 내 미군 ARCOM( Army Commedation Medal)에 적혀있듯이, 일병 5호봉부터는 본격적으로 프로젝트를 맡음으로써 육군 삼군사와 1 포병여단과의 연합훈련에서 통역을 전담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미군과 함께 하는 카투사 군생활에서는 자기 계발이 항상 중요하다.
CPL Ahn's APFT score, 270 has become the standard for every KATUSAs that have followed after him. His mentorship has led to changes in how the KATUSAs are used for daily activities and will continue to influence the section. On top of it, he has also managed to continue working to achieving degrees in Economics by studying several major courses by himself.
-HHB 210th LNO NCOIC,
SSG JOSEPH.BAIRD
미군과 함께 생활하는 카투사의 특성상 자기 계발에 쓸 수 있는 시간이 상당히 많을뿐더러, 체력을 비롯한 자기 계발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필자 역시 카투사 생활을 하면서 개인적인 목표로 삼았던 것은 헬스장에서 운동하는 법을 미군 친구들한테 배워서 몸 만들기, 영어실력 향상시키고 공부하는 법 배우기, 또 진로 결정하고 관련 공부 서너 개 하기였는데, 전역이 6개월 남은 지금 개인적으로는 만족할만한 시간을 보냈다고 생각한다.
카투사는 매일 아침마다 팀별로 피티를 하기도 하고, 미군 하나하나가 몸을 만드는 데에 관심이 많기 때문에 상당히 많은 운동꿀팁을 배울 수 있었다. 필자는 카투사 생활을 하면서 단백질 보충제랑 BCAA도 처음 구입해보고, 어깨부터 가슴, 등, 이두 삼두 운동을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었다. 팔굽혀펴기와 윗몸일으키기, 2마일(3.2km) 달리기를 보는 APFT(Army Physical Fitness Test)에서도 고득점을 받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고 이 같은 노력이 주변 미군들에게는 긍정적으로 보였던 모양이다. 무엇보다 내가 카투사 생활에 보람을 느낀 것은 진로방향을 설정했다는 점, 그리고 필요한 기본과목들을 공부하고 준비할 충분한 시간을 보장받았다는 데에 있다. 카투사를 지망하는 남학생들이 가장 바라는 점 중 하나로 생각되는데, 주변 카투사를 보면 그 시간을 그냥 흘려보내는 사람들도 있고, 입대 전부터 목표한 바를 위해서 전력투구하는 존경스러운 사람들도 있다. 어찌 됐든 시간은 모두에게 평등하고, 여유롭게 주어져 있으니 스스로 생각하기에 가치 있고 보람찬 일을 한다면 후회가 없지 않을까 싶다.
2017.11월에 입대한 필자는 이제 전역이 얼마 남지 않았다. 카투사는 클리어링(Clearing)이라고 하는 전역 준비 기간도 있기에 실상 출근하는 날짜가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번 글도 지금까지의 변변찮은 군 생활을 새해를 맞아 돌아보며 회상하려고 적게 되었다. 계속해서 수정하는 글이 될 테지만, 카투사를 꿈꾸거나, 앞으로 카투사로 입대하게 될 예비 카투사 분들에게 조금이나 카투사의 생활을 엿볼 수 있는 창이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