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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리얼리스트 Feb 10. 2019

Cityzen인 이유는 말이죠.

Reason why I love Manchester City.

몰입할 걸 찾아보는 건 어때?


대학입시를 또래 학생들보다 일찍 끝마쳐, 지루한 고등학교 생활을 하던 내게 친구가 건넨 조언이었다. 테니스, 수영, 탁구, 산책, 프라모델 조립까지 꽤 많은 취미를 가졌다고 생각했건만, 그 당시 내겐 애착을 붙일만한 무언가가 부족했다. 이번엔 여러 친구들과 함께 즐길 수 있는 주제를 파기로 결심했고, 그런 이유로 해외축구에 입문했다. 화려한 스타플레이어들의 인터뷰나 경기 영상들을 매일 뉴스로 접할 수 있었고, 학교에선 친구들끼리 축구게임도 종종 했으니 흥미를 붙이기에 좋았다. 허나 애착이란 불현듯 생겨나는 감정이 아니다. 뭉뚱그려 축구를 좋아하는 것보단, 나만의 서포팅 클럽을 정하고, 그 팀을 중심으로 가랑비에 옷 젖듯이 흥미를 넓혀 가는 게 바람직한 방향이었다. 친구들끼리 이야기를 하는 데에 있어서도 그 편이 훨씬 재미있었고, 그 일환으로 나는 맨체스터 시티의 서포터즈가 되기로 결심했다. 축구팀 하나 좋아하는데 서론이 너무 길다 싶지만, 맨체스터 시티에 대한 기억들은 언젠가 꼭 긴 호흡으로, 스스로 대화하는 기분으로 적어보고 싶은 주제다. 부슬비에 옷이 젖는 과정이야 어찌 됐든, 첫 게임 속 유니폼이 예뻐 눈이 갔던 그 클럽은 어느새 나를 소개할 때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주제가 될 정도로 내 삶에 깊숙이 자리 잡았다.




맨시티의 과거와 현재를 함께


요즘은 맨체스터 시티(이하 맨시티)가 누구나 인정하는 축구계의 강팀이지만, 그렇게 발전하기까진 만수르 인수 이후로도 꽤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전통명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와 리버풀, 2000년대 신흥 강자로 도약한 첼시, 전무후무한 무패 우승의 아스날 등 다른 영국 클럽들에 비해 초라한 위상. 그러나 만수르 구단주가 맨시티를 인수하면서 선언한 당찬 포부들은 멋 모르고 해외축구에 입문하던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유럽 축구계의 역사를 새로 써 보이겠다." 속된 말로 '고인 물'들의 경쟁이던 유럽 축구계에, 新 강자의 등장을 예고하는 순간이었다. 당시엔 돈만 많은 초보 구단주의 치기 어린 허언으로 치부됐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만수르의 적극적이고 지속적인 투자는 여타 재벌 구단과는 다른 방식으로 현대 축구계의 거함을 만들어냈다.  중하위권 클럽이 우승후보로 성장해, 매 시즌마다 대회를 가리지 않고 우승 경쟁을 하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는 것. 내가 맨시티 팬, "CITYZEN" 이 된 이유 중 하나다.


형이나 누나, 동생이 없는 나에게 맨시티는 일종의 성장 파트너다. 맨시티라는 신흥 구단이 다른 강팀들과 경쟁하며 성장해 나가는 모습은 그 자체로 나에게 영감을 주고 동기부여가 된다. 축구계에 새로운 역사가 쓰이는 순간들, 예컨대 11-12 시즌 극적 우승, 13-14 시즌 역전 우승, 17-18 시즌 압도적 우승을 직접 화면으로 보면서 함께하는 것은 나에게 있어서 작은 행복이자 성취다. 맨시티라는 클럽이 지금의 위상을 유지하는 한 서포터인 나도 이 기분좋은 경험을 계속 이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화제를 바꿔서, 몇몇 친구들은 그와 같은 경험은 다른 우승 경쟁 클럽을 좋아해도 충분히 할 수 있는 것이라 말한다. 특정 클럽이 다른 강팀을 만나서 고생하지만 결국 이겨내고, 이를 보면서 동기부여를 얻으며 스스로 추억하는 일 말이다.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물론 다른 강팀, 예를 들면 맨유나 바르샤, 레알을 좋아해도 팀의 경쟁 과정 속에서 개인적 동기부여는 얻을 수 있다. 허나 이 같은 팀들의 우승이, 내게 기억에 남을 만한 역사로 남을지는 의문이다. 그런 팀들에게 우승은 더 이상 새로운 경험이 아니기 때문이다. 팬들에게도 순간의 기쁨으론 남을지 몰라도, 꾸준히 회자되기는 쉽지 않다. 맨시티의 11-12 시즌 QPR전 극장골로 인한 '극적 우승'이나, 레스터 시티의 15-16 시즌 '동화 우승'은 타 팀 팬들에게도 꾸준히 회자된다. 그만큼 성장 스토리가 두드러지면서. 예측하기 힘든 과정을 뚫어낸 전례는 발견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소위 말하는 '언더독'이 승리했을 때, 사람들은 열광하고, 팬들의 가슴에는 역사로 남게 된다. 그와 같은 과정을 이미 거친 다른 '빅클럽'들은 많은 수의 팬들에게 꾸준한 사랑과 응원을 받을 수는 있어도, 수십 차례의 우승에 한 번을 더했다고 언더독과 같은 찬사를 받지는 못한다. 그런 의미에서 40년 동안 1부와 3부 리그를 오고 가며 힘든 시기를 거친 맨시티의 성공가도는 나에게 색다른 의미로 다가옴과 동시에, 이따금씩 게을러지는 스스로에게 건네는 일종의 채찍이다. 




맨시티를 좋아하는 두 번째 이유는 그들이 구사하는 축구 스타일에 있다. 공격적인 축구를 하든, 수비적인 축구를 하든 상관없이 맨시티는 항상 과정 지향적인 축구를 한다는 점에서 박수받을 만하다. 이는 만수르의 구단 인수 후 부임한 감독들의 스타일을 확인해보면 더 분명해진다. 만치니와 폐예그리니 감독은 직접 "우승도 중요하지만, 우승하는 방식이 가장 중요하다."라고 인터뷰하며 초기 맨시티가 지향해야 하는 방향을 명확하게 지시했다. 무리뉴 감독의 '안티 풋볼', 즉 승리를 위해 실리적인 선택만을 강조하는 방식이 대세를 이룰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만치니 감독은 맨시티에 극단적인 공격 축구 전술을, 페예그리니 감독은 개인기보단 팀워크를 높이는 방식을 도입함으로써 맨시티를 전보다 나은 방향으로 이끌었다. 이들은 결국 앞에서 설명한 11-12 시즌, 13-14 시즌 각각 우승을 일궈냄으로써,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과정 지향적 방식이 틀리지 않았음을 입증했다. 리그뿐만이 아니라 FA컵, EFL컵, 그리고 챔피언스리그에서 맨시티가 보여준 장족의 발전은, 후에 21세기 최고의 명장이라 평가받는 과르디올라가 맨시티에 부임하게 되는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Josep Pep Guardiola, 現 맨체스터 시티 감독


펩 과르디올라(Josep Pep Guardiola) 감독의 부임은 맨시티를 더 사랑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내가 축구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시절, 즉 펩이 바르셀로나와 바이에른 뮌헨을 지도할 때부터 그는 나의 우상이었다. 어떻게 축구선수가 아닌 축구감독에게 빠지냐고 친구들은 신기해했지만, 자서전이나 인터뷰에서 드러나는 펩의 가치관과 태도가 나에게는 상당히 매력적이고 본받을 만하다고 생각했다.


Quality without result is meaningless,
  Result without Quality is unsatisfiable.  


과르디올라의 스승인 요한 크루이프가 항상 강조했던 신조이자, 지금은 펩의 신조가 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명언이다. 특별한 재능과 자질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스스로에게 과정과 결과 모두를 요구해야 한다는 뜻이다. 과르디올라는 이 모토를 항상 가슴에 새기고 있으며, 어느 팀을 지도하더라도 선수들로 하여금 과정과 승리를 쟁취하길 바란다고 말한다. 만치니 감독과 페예그리니 감독이 이어오던 과정 지향적 축구를 이어가는 것이다. 펩의 전술로 일컬어지는 방법론들은 수 없이 많다. 티키타카, 오버로드 투 아이솔레이션, 인버티드 풀백, 후방 빌드업, 6초 압박 전술 등, 공격에서 수비까지 과르디올라와 선수들은 성취감 있는 과정을 만들기 위해서 끊임없이 새로운 전술을 개발하고 연습한다.


"무언가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나 자신부터 바꿔야 한다." 과르디올라는 이 말을 가장 잘 이해하고 실천하는 인물이다. 선수 시절에도 모든 영광을 뒤로 한채 새로운 전술을 배우고 싶다며 바르셀로나를 떠나 이탈리아 리그, 멕시코까지 건너가 수습 감독 생활을 한 일화는 유명하다. 티키타카로 대변되던 패스와 포지션 플레이가 독일에서 한계에 부딪히자 농구와 수구에서 영감을 받아 오버로드-아이솔레이션 전술을 착안했고, 잉글랜드에서는 그 전술에 전통 윙플레이와 속도감까지 추구하는 특유의 스타일을 구현해 냈다. 항상 전술적으로 아름다운 과정을 추구하고,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선수들에게 동기부여를 해내는 그의 방식은 17-18 시즌 영국리그 최초 승점 100점이라는 압도적인 성적을 거두며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최다 승점, 최다 연승, 최다 승, 2위와의 최다 승점 차, 최다 골득실은 이 같은 과정의 명예로운 산물이다. 과르디올라의 맨시티 ( 통칭 펩시티 )는 각종 기록을 갈아치우며 역대 잉글랜드 역사상 최강의 팀으로 남았다. 직전 16-17 시즌 펩시티가 그 어떤 트로피도 들지 못하고 3위로 시즌을 종료했던 것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대단한 발전이 아닐 수 없다.

 



맨시티의 서포터즈를 고유명사로 "CITYZEN"이라고 부른다. CITYZEN이 된 이유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에게는 '성장파트너로서의 맨시티'가 가장 큰 이유다. 맨시티가 진정한 빅클럽으로 발돋움하는 과정을 보며 나 역시 꾸준히 성장하고 싶다. 지금까지 많은 것을 이뤘음에도, 맨시티는 아직 발전할 부분이 남아있는 팀이다. 만수르의 재정지원을 벗어나, 이제는 클럽에서 성장시킨 어린 선수들로 스쿼드를 꾸려야 하고, 꾸준히 리그 우승컵을 들어 올리며 '근본'을 다져나가야 한다. 유럽 최고 클럽을 가리는 챔피언스리그 우승도 맨시티 팬이라면 포기할 수 없는 목표다. 나아가야 할 길이 멀고 험한 건 나도 마찬가지다. 2019 season greeting 편에서 작성한 것들 뿐만 아니라, 해가 지나갈수록 지금은 상상도 못 한, 생각하지도 않은 목표들이나 과정 속에서 지내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 고된 순간순간마다 맨시티 경기를 보면서 동기부여를 받았다. 그리고 그들처럼 나도 끝까지 과정의 소중함을 느끼면서 나아가고 싶다. 누구 말처럼 결과 없는 과정은 의미가 없고, 과정 없는 결과에는 스스로 만족하지 못할 테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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