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늘쫑의 계절이닷

내 기억 속 음식사전

초록의 자태는 빼어나 속은 어찌 단단한지

봄볕을 가득 품은 줄기를 한 움큼 잘라 묶으면

한 단의 마늘쫑이 된다

반찬으로 만들기에 더없이 순조로운 녀석의 기운

다만 열기에 오래 닿아야

억센 기운 흐느적거리도록 부드러워지고

속에 머금은 간장이며 고추장이며 식초 물, 멸치까지 곁들이면

절이고 졸이고 무치고 볶으면서 산해진미 부럽잖은 요리가 된다

내가 즐기는 조리법은 조림인데, 간장조림으로

재탄생하면 아린 맛은 어디 가고

달콤 짭조름하고 살캉이는 식감에 천국이 따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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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을 해본 적 없으니 모든게 서툴렀다.

첫아이 어릴 적, 심심하게 볶은 것을

내밀었는데, 다행스럽게도 실험적인 입맛을 자랑하는 아이는 넙죽 잘 받아먹더란다. 변변찮은 밥상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순수함으로.

자정이 다 되어갈 무렵 친정에서 공수한 마늘쫑 여러 봉지가 생각나

신선할 때 간장조림이라도 해두면 두고두고 먹겠거니 서둘러 불을 댕긴다

내일 아침 메뉴는 마늘쫑 소를 넣은 김밥.

딸아이는 나의 원대한 계획을 듣자마자 게워내는 시늉을 하며 방문을 닫는다.

굴하지 않는 나는, 내일 아무에게도 권하지 않을 작정이다.

마늘쫑 한 접시만으로도 밥 한 공기 순삭이거늘, 김밥으로 재탄생 하면 얼마나 어엿하고 대견스러운 맛일런지

상상할 수 없겠지? 벌써 군침이 목구멍으로 넘어간다.

마늘쫑은 나의 가난한 신혼살림을 떠오르게 하고

서툰 첫아이의 밥상을 떠올리게 만든다

손쉬운 반찬임에도 귀찮다며 애써 만들지 않고, 바쁘다는 핑계로 머뭇거렸는데

갑자기 봄이 가기 전 물릴 때까지 짜고 달고 씹을 만한 그것을 먹어두어야겠다고 팔을 걷었다.

가난을 무사히 잘 통과한, 아이를 무사히 키워낸 내가 마치 겨울을 건너온 봄처럼 대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