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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신애 May 11. 2023

다 귀찮어! 옛다 김밥이닷

김밥을 싼다는 것은 엄마라는 존재의 손맛을 공식적으로 드러내는 사건이다.

유독 김밥을 싸는 게 어렵던 나는 아이들 체험학습 공지를 확인하면 속으로 벌벌 떨곤 했다.

입맛이 까다롭지 않았는지 아이들은 유부초밥을 선호했고, 그들의 속내는 엄마의 맛없는 김밥을 만천하에 공개하기 싫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대놓고 물어보지 않았던 이유는 내가 싼 김밥 나부랭이의 수준을 알기 때문이다. 아픈 곳을 다시 찌를 필요가 무에 있을까.



김밥이 어렵던 이유는 여러 가지다.

김밥김 위에 식힌 밥을 척척 올려 골고루 펼치는 것이 그리도 어렵더라.

각종 재료를 따로 가열하고 줄 세우는 일도 어찌나 귀찮스럽던지.

돌돌 말아야 할 때 필요한 악력을 조절하기 어렵고 그런 쭈뼛거림으로 어김없이 김이 찢어지거나 옆구리가 터져버렸었다. 물론 밥 양이 너무 많았다거나 속이 넘쳐서일 수도 있지만 다시 회상하는 것도 싫더라 어떨 때는 용기를 내서 쌌건만 밥에 간을 하지 않아 싱겁기 짝이 없는 김밥을 생산했고 어떨 때는 소에 간을 하지 않아 스리슬쩍 삼삼한 김밥을 만들기도 했다. 늘 김밥 속에 오만가지 색으로 화려하게 채워야 한다는 강박에 두세 가지 재료로는 성에 차지 않아 포기하기 일쑤였다. 실패를 세 번만 반복하면 있던 의욕도 잃는 성격이라 '우리 식탁에 수제 김밥은 없다'는 선포를 암암리에 해버렸다



김밥을 멀리하던 더 큰 이유가 있었다.

김밥을 멀리하던 세월이 20년이 가까울 때까지 나는 귀찮다는 이유를 대며 김밥을 싸지 않았고, 김밥 싸는 게 제일 쉽다는 주부 9단을 향해 고개를 절레절레 젓기 십상이었다. 지인 중 김밥달인이 있다. 지금도 남편 손에 김밥을 들려 보내는 아주 가깝고도 먼 이웃이다. 그녀의 솜씨로 말할 것 같으면 출장뷔페를 부른다는 소식에 손사래 치며 달려와 100인분의 음식을 각양각색 12첩 이상 산해진미로 차릴 수 있다. 그녀에게 김밥은 껌 씹는 것보다 쉽고 소파에 앉아 쉬는 일보다 가벼운 일일 것이다. 그녀가 만들어냈던 태극김밥, 누드김밥, 튤립김밥은 말할 것도 없고, 사슴김밥이나 호랑이 김밥도 주문하면 쌀 수 있을 만큼 신의 경지에 오른 분이다.


그녀의 손목스냅은 옆에서 보고 있노라면 황홀경을 느낄만치 빠르고도 정확하여 얄팍하면서도 구멍 나지 않게 밥을 도포하고 그 위에 각종 재료를 올리되 그녀 머리에 휘몰아치는 도면에 따라 김 반 장이 더 들어가거나 뒤집어지면서 마술 같은 결과물을 산출한다. 그녀의 놀라운 손놀림에 기함을 한 후로 김밥의 기준이 높아져 내가 쌀 법한 밋밋하고 표준적인 김밥을 쌀 의지가 뚝 떨어졌었다.



김밥의 황홀한 초대에 응하다

그런 나에게 김밥은 해사한 얼굴로 찾아와 요랑방울을 흔들듯 정신을 혼미하게 끌어당겼다. 김밥을 좋아하지도 않고 매일 바쁜 일상에 치여 먹는 일이 달갑지 않던 터였다. 세 숟가락만 입에 머금으면 포만감이 시작되고, 그 느낌이 불쾌해 숟가락을 놓는 일명 '소식좌'인 나야 뭐든 먹는 척만 해도 되련만 내 아이들을 그냥 둘 수는 없는 처지다. 청소년의 아이라 잘 먹여야 한다는 사명감이 귀차니즘을 겨우 이기고 있어 배달음식이 아닌 손수 만든 간단한 식사를 차려주고 있었다. 그런데 오십도 안되었는데 발칙하게 어깨가 아프기 시작하고 발목이 우지끈해서 누워만 있고 싶어 졌고 식사준비를 최소화하고 싶어졌다. 그때 머릿속에 번쩍 "김빠브"가 떠올랐다.


국, 반찬, 샐러드 등을 차려내는 수고보다 김밥 여러 줄이면 나의 도시락까지 싸고도 남으니 귀차니즘을 누릴 수 있는 메뉴로는 딱이다. 20년 가까이 김밥을 잘 못 싼다는 생각이 나를 막고 있었지만 실제 싸보니 구차한 이유는 쓸데없는 장애물일 뿐이었다. 그저 고두밥에 맛소금과 통깨와 참기름을 넣고 주걱을 각 세워 자르듯 버무리면 그것만으로 최상의 상태가 된다. 한 김 잘 식히고 김 위에 올리면 김이 줄어들지 않고 눅눅해지지도 않는다. 소로 말할 것 같으면 가시오이나 조선오이를 껍질채 길고 굵게 잘라 넣는다. 아무 간도 하지 않고 오이맛을 느끼게 한다. 간은 이미 밥에 해두었던 까닭이다. 단무지를 싫어하는 둘째 때문에 간이 잘 어울릴 법한 반찬을 올리면 그만이다. 시금치를 데치고 당근을 볶고 어묵과 계란지단을 만들 필요가 없다. 간소고를 양파와 볶아 올려도 되고 참치를 꼭 짜서 마요네즈와 버무려 듬뿍 넣으면 시중에 참치마요김밥을 능가할 수 있다. 밤 12시에 졸여 둔 마늘쫑을 넣으니 봄의 기운이 그대로 입안에 전해져 풍미가 가득하다.


김밥을 극복했으니 다음은 무엇이더냐


김밥에 대한 고정된 생각, 그리고 나는 김밥을 잘 싸지 못한다는 단정이 김밥과의 조우를 방해했었다. 물릴 때까지 김밥을 메인으로 올리겠다는 선포에도 가족들은 거부감은커녕 콧노래를 부르며 달려온다. "뭐야, 김밥보다 유부초밥이 좋다는 말은 립서비스였니?" 이리도 좋아할 줄 알았다면 진즉 내가 설치한 허들을 가뿐히 넘었을 것을. 일주일이 넘도록 재료를 바꿔가며 김밥을 싸고 있다. 밤이면 내일의 김밥에 설레고 아침이면 내일 쌀 김밥의 소를 생각한다. 귀찮은데 귀찮은 짓을 하는 것 보니 마음의 장벽이 사람을 묶어버릴 뿐, 풀어헤치면 금세 적응할 수 있음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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