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꾹꾹 참았구나."
"네, 블라블라 아브라카 다브라, 쑝쑝 우르르 바르르 사르르 수런수런 두런두런...."
최근 글밥 있는 책 읽기가 훌쩍 좋아진 아이가 씩씩 거리며 분을 드러냈다. 말이 없고 느리며 매사 진지한 선비 같은 아이의 반전 모습. 친구에 대해 불쾌한 마음을 더 이상 담고 있을 수 없는지, 평소와 달리 말을 뿜어냈다.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말의 내용은 친구에 대한 불만이었다. 그 친구를 떠올리면 뭐든 하기가 싫다며 평소 쌓인 감정을 주체하지 못했다. 말이 말을 부르듯, 아이는 점점 더 격앙된 모습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그 친구 때문에 불편한 게, 네가 뭔가 하려는 것을 양보하지 않고, 자기만 먼저 다 해버리기 때문에 더 화가 나는구나. 많이 속상했겠네. 화가 많이 나겠어"라고 말했다.
아이를 계속 공감하기만 하면 "너의 분노의 이유가 정당하다"라고 가르치는 게 될까 봐 감정을 그대로 수용하면서 다른 질문으로 환기를 유도했다. "그 아이가 더 직접적인 피해를 끼친 게 있을까?" "결국 너도 그 아이가 만지던 것을 하고 싶었던 것이구나"라며 속마음의 본질을 건드렸다.
나는 중간에 위치한 입장에 골고루 기회가 가게 한다면 분노가 줄어들 것이라 생각했다.
일주일에 반반 나눠서 쓸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하고, 곧 하나 더 구입해서 원할 때 사용할 수 있게 하겠다는 의견을 냈더니, 아이가 풋웃음을 짓더니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그렇게 까지는......"
나와 이야기를 나누며 방언으로 쏟아냈더니 감정이 많이 누그러졌고, 자신의 불만을 상대 친구는 모를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한 터였다.
말도 없고 느리며 신중한 아이는 갈등의 요소를 만나면 오래 묵혀놓기 쉽다. 갈등의 대부분이 외적 갈등의 요소가 없기 때문에 시비를 가릴 수 없다. 그런데 설명할 수 없게 "친구가 싫다"라는 감정을 누적하기만 하면 결국 다치는 것은 쌓은 쪽이다. 아이는 특정 친구가 한 공간에 있으면 감정이 올라와 독서와 글쓰기에 진입하는 시간이 지체되곤 했다.
"오늘, 네 마음을 용감하게 꺼내줘서 고마워. 다음에도 마음이 답답하고 힘들고 화가 나는 문제가 다른 일 때문에 생긴다면, 오래 쌓아두지 말고 꼭 말해줘. 누구의 잘못도 아닌데 화가 날 수 있는 문제라면 해결방법을 찾으면 되니까"
말하는 아이를 두둔하지도 않고,
화의 대상이 된 아이를 편들지도 않으면서
화를 가라앉히면서, 이유 없이 미움받는 아이를 향한
화살이 말랑해지는 상황을 겪으면서
중간에서 갈등을 조정하는 일이 민감한 일임을 다시 한 번 느꼈다.
까딱했다가는 말하는 아이의 마음을 상하게 하거나, 상대 아이를 함께 비난하는 실수를 범할 수 있다. 형제, 자매, 남매를 키우는 가정이라면 이런 애매한 갈등 사황이 많다. 어느 한 편을 공감하다가는 다른 편을 놓치는 일이 쌓이고 쌓여, 결국 아이들 사이가 막연히 멀어지는 일이 많다. 양 쪽을 놓치지 않는 지혜가 필요한데, 앎의 부족과 지혜가 필요함을 더 느낀 하루였다. 배우지 않을 수 없는 이유를 또 하나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