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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ocharlie Jul 18. 2019

“가까워야 잘 보인다고 생각하는 건 환상입니다.”

<파이널 포트레이트>

어느 한 사람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가? 특정인의 성향이나 패턴에 대해서는 잘 알 수 있지만, 그 안의 본질과 의도는 알아채기 힘들다. 자신조차 완벽히 이해하기 힘든데 하물며 타인에 대한 이해는 더욱 그러하다. 그런 의미에서 온전한 이해는 아마도 불가능하다고 말할 것이다. 이런 불가능성을 인지하면서도 사람들은 끊임없이 타인을 이해하기 위한 시도를 멈추지 않는다. 그런 시도를 누군가는 예술을 통해서 하기도 한다. 예술가는 모델로 삼은 대상의 본질을 파악하기 위해 자신의 시선으로 탐구하고, 대중은 작품을 통해 예술가의 의도에 다가가려 한다. 일차원적 관계에 있는 사람도 온전히 이해하기 힘든데, 작품을 통해 예술가를 혹은 모델로 삼은 대상을 이해하기란 과연 가능한 것인가? 그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순간 혹은 작품을 우리는 예술이라고 칭한다. 미술의 예술적 가치는 미적, 조형적 표현의 시각화에 있지 않다. 끊임없는 대상의 관찰로 이 세계상 혹은 인간상에서 존재의 본질을 파악하거나 이해함에서 오는 쾌락에 있다고 할 것이다. 관찰하지 않으면 다가설 수도 파악할 수도 없다. 대상의 관찰은 가장 중요한 시작이자 거의 전부와도 같다.

작업에 열중하는 자코메티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마지막 초상화 작업을 그린 영화 <파이널 포트레이트>에는 대상의 본질에 다가서려는 자코메티의 철학과 예술세계가 모자람 없이 담겨 있다. 영화는 자코메티가 생을 마감하기 직전 2년의 짧은 시기만을 담고 있지만, 그마저도 그의 친구인 미국인 작가 제임스 로드를 모델로 초상화 작업한 18일 동안의 시간에 집중한다. 단 18일 동안의 작업 기간을 통해 그의 예술세계 전체를 조명하긴 어렵다. 중요한 것은 그의 전체 예술세계가 아닌 자코메티라는 예술가가 추구한 예술철학에 조금이라도 다가서려는 시도이다. 때론 하나의 단어가 어떤 철학에 대한 충분한 설명을 대신하듯이 말이다.

가까이에서 관찰한다는 것

     조각가이자 화가 알베르토 자코메티(1901~1966)는 구성주의와 초현실주의 작가들과 교류하며 조각과 회화 양면에서 독창적인 양식을 발전시켜 나갔다. 영화에는 그가 피카소와 세잔에 대해 언급하는 장면이 나온다. 20세기 입체파와 추상파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폴 세잔은 그가 거의 유일하게 존경한 예술가였다. 대상에 대한 철저한 관찰과 표면 너머의 본질을 탐구한 세잔의 예술적 태도를 본받았다. 기다랗고 앙상한 인물 조각상을 통해 이른바 ‘자코메티 스타일’을 확립했지만, 회화 특히 초상화에 관한 연구를 평생 멈추지 않은 이유가 여기 있을 것이다. “인간의 얼굴은 그 어떤 얼굴도, 심지어 내가 수없이 봐왔던 얼굴조차도 그렇게 낯설 수가 없다.” 제임스와의 작업 첫날, 그는 마치 제임스를 처음 보는 얼굴처럼 자세히 관찰한다. 서양인의 얼굴은 동양인의 얼굴에 비해서 입체적이다. 그런 서양인의 특징을 잘 담아내는 초상화는 대부분 얼굴의 각도를 형성한다. 각도를 통해서 드러나는 입체적인 특징이 대상을 상징한다. 입체적인 특징은 시각적 형성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완벽한 대칭이 아니라면 보이는 면에 따라 혹은 보는 각도에 따라 대상의 시각적 아우라가 달라지기 마련이다. 다른 면이 존재하는 이상 그것은 본질을 담기 어렵다. 제임스 역을 맡은 아미 해머의 얼굴이 카메라를 180도로 바라본다. 이미 수없이 봐온 그의 얼굴이 낯설게 느껴진다. 입체미가 느껴지지 않는 그의 얼굴에서 자코메티가 언급한 낯섦에 공감했다. 처음 약속한 이틀의 작업 기한은 기약 없이 연기된다. 그는 거의 완성한 제임스의 얼굴을 지우고 또 지운다. 그렇게 그들은 18일 동안 지우고 다시 그리기를 반복한다.

관찰만큼 중요한 것이 대화를 통한 대상의 이해

     영화 속 제임스는 비교적 일관성을 갖추고 있다. 다양한 감정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표정을 담지도 않고, 겉과 속이 다른 행동을 보이지도 않는다. 그런 그에게서 다름과 낯섦을 발견하는 사람은 오직 자코메티이다. 그가 무엇에서 다름을 느끼고 낯섦을 느끼는지는 오직 그만이 알고 있다. 그런 그의 예술적 지향과 철학을 이해하기에 제임스는 지연되는 작업일정을 거부할 수 없다. 오히려 흥미롭게 느끼고 그 끝이 궁금할 뿐이다. 그에 반해 자코메티에 대해서는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동료 예술가 혹은 지인들과 어울리는 모습, 제임스와 대화하며 드러내는 그의 예술철학, 뮤즈이자 연인인 창녀 캐롤라인과의 관계, 이제는 소원해졌음에도 여전히 서로를 떠나지 못하는 아내와의 관계 등 제멋대로인 면모의 그는 기인에 가깝고 우리가 생각했던 고뇌에 찬 예술가의 모습과 사뭇 다르다. 영화는 두 사람의 대조적인 태도, 자코메티의 기행을 통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시각적 혹은 관념적으로 정형화된 대상에 대한 인식에서 벗어나 본질을 꿰뚫기 위해 다가가려는 자코메티의 예술혼을 부각한다.

멈추지 않는 초상화 마무리

     대상의 본질을 찾으려는 자코메티에게 초상화의 완성이란 한 사람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과 같이 불가능에 가깝다. 제임스는 자신이 직접 나서서 그의 초상화 작업을 멈추게 한다. 이 정도면 이미 훌륭하다고 만족한다며 그려놓은 얼굴을 다시 덧칠하려는 자코메티의 손을 붙잡는다. 모델이 만족한다는 말에 이내 붓을 내려놓는 자코메티에게 초상화의 완성이란 예술가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작가와 모델이 함께 완성해 나가는 것이다. 모델이었던 제임스 로드는 그와의 작업을 담은 <작업실의 자코메티>를 펴냈고, 이것이 영화의 원작이 되었다. 때론 한 사람의 전기보다 작은 에피소드를 통해서 그 사람을 더 잘 이해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가 보려고 했던 관찰과 응시의 끝에 완벽하게 만족할만한 결과가 한 번은 있었는지 궁금하다. 우리는 어떤 목적을 가지고 대상을 진지하게 응시해 본 적 있는가? 저마다의 답이 존재할 것이다. 그래서인지 그의 이 말이 이해될 법도 하다. “정말 한심하지 않습니까? 본 대로 그리기만 하면 되는데 그걸 못하는 게 말입니다. 그걸 하자면 목숨을 걸어야 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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