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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ocharlie Aug 29. 2019

가랑비에 옷이 젖는 무서움

<데드 돈 다이>

 

 최근 좀비 영화의 대부분이 달리는 좀비를 그리고 있다. 인터넷, 통신기술의 발달에 따른 시대의 변화 그리고 새로운 자극을 요구하는 관객에 대한 반영일 것이다. 무차별로 살아있는 모든 대상을 습격하는 좀비라는 존재가 무서운 속도로 달리기까지 한다니! 달리는 좀비에 대한 반응은 그야말로 폭발적이다. 그럼 달리지 않는 좀비는 더 이상 무서운 존재가 아닌가?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을 통해 좀비라는 호러 캐릭터를 창조한 조지 로메로는 달리는 좀비를 싫어했다고 한다. 자신이 창조한 캐릭터가 가진 설정이 훼손되었다는 이유는 아닐 것이다. 좀비가 달리면서 공포는 극대화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반감되었다. 달리는 좀비는 달리는 순간 공격의 대상이 되는 인간에게 바로 인지되기 마련이다. 인지한 순간 인간은 생존을 위해 대처한다. 반면, 흐느적거리며 서서히 다가와 어느새 등 뒤에 와있는 좀비는 어떠한가. 등 뒤의 존재를 알아차린 순간은 좀비에게 물리는 순간이다. 그보다 더한 공포는 자신의 가족 혹은 지인의 얼굴로 다가오는 좀비의 존재이다. 과거의 감정과 현재의 두려움이 교차하는 순간, 연민과 공포가 교차하며 망설이게 만든다. 얼굴을 식별하기 힘든 좀비가 빠른 속도로 접근하는 동안 생존의 욕구가 강하게 반응한다면, 어린 딸의 얼굴을 한 좀비를 인식하는 순간에는 서서히 걸어오는 존재에게 차라리 목숨을 포기하게 만드는 연민이 작용하는 것이다.

쓸모없는 머리는 날려버리고!

 <데드 돈 다이> 속 좀비들이 달리지 않는 이유가 여기 있다. 환경문제, 세대갈등, 인종갈등 등 인간사회는 많은 문제에 직면해있다. 이런 문제들은 어느새 다가온 것이 아니다. 급격하게 심각한 갈등과 문제를 생산했다면 빠른 조치가 이뤄졌을 것이다. 우리가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손을 놓은 사이 발생한 문제들은 눈덩이처럼 불어나 있다.

 영화 속 좀비들은 인간일 때 했던 행동들을 좀비가 되어서도 반복한다. 스마트폰에 중독되어 와이파이를 찾아 헤맨다. 인간은 새로운 것에 익숙해지기 힘들지만 한번 익숙해지면 변하기 힘든 존재이기도 하다. 좀비라는 존재는 인간과 다르지 않다. 인간이거나 좀비이거나 행동은 변하지 않는다. 뇌가 행하는 사고 없이 본능에 의해 움직이는 존재가 좀비라면, TV라는 바보상자나 스마트폰에 의해 사고 없이 무분별하게 받아들이고 그것에만 반응하는 인간과의 구분은 어렵다. 머리를 사용하지 않는다면 좀비랑 다름이 없으니 잘라내서 없애야 한다. 머리를 공격하는 이유다. 짐 자무시의 지독히 냉소적인 유머가 빛을 발한다.

 

외계인만이 살아남는다.

 영화는 시작부터 결말이 좋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인간사회가 지금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현실의 결말 역시 같을 것이라 얘기한다. 초반부터 반복적으로 강조하지만, 언급의 이유를 후반부를 앞두고 밝히는 이유다. 알면서도 모른척하며 모르는 것은 관심도 두지 않는다. 사회 시스템 자체가 그렇게 만들어졌고 유지된다. 파국을 상징하는 장의사의 존재를 마을 사람들은 멀리한다. 대다수를 상징하는 평범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남들과 다르고, 새로운 것에 대한 이해는 또 무시된다. 유일무이하게 좀비에게 맞서며 생존한 인물은 결국 외계인이 되어 지구를 떠난다. 좀비이자 좀비와 마찬가지의 존재인 인간들로 남겨진 지구는 더 이상 희망이 없는 곳이다. 익숙한 것에서 벗어나야 한다. 변해야 한다. 인간은 좀비가 아닌 외계인이 되어야 한다고 강변한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했다. 이미 우리가 입고 있는 옷은 속옷까지 흠뻑 젖어있는지 모른다. 그것을 깨닫는 순간은 이미 늦었다. 난처하지만 되돌릴 수 없다. 비를 피하지 않고 온전히 맞은 결과이다. 달리는 좀비보다 등 뒤에 어느새 다가와 당신을 노리는 좀비가 더 무섭지 않은가? 영화를 보는 동안 키득거리며 웃었지만, 극장을 나서는 순간의 찝찝함이 더 오래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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