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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ocharlie Sep 19. 2019

도와준다고 끝나지 않는 세상

<그녀들을 도와줘 Support the Girls>

그녀들이 이분들이다.

 차 안에서 눈물을 훔치는 여인, 리사. 무슨 사연인지 알 수 없지만 도움이 필요해 보인다. 스포츠 바 ‘더블웨미’의 매니저인 그녀는 정작 직원 챙기기에 바쁘다. 전 남편과 문제가 생겨 변호사가 필요한 샤이아를 위해 사장 몰래 세차 모금 행사를 벌이고, 몸이 아파 맡길 곳이 없는 아들을 데리고 출근한 대니얼을 위해 보모를 알아봐 준다. 새롭게 지원한 직원 면접에 금고를 노리고 침입하려다 갇힌 도둑처리에 가게 내 케이블 방송은 말썽을 일으킨다. 여러 잡다한 사건과 사고 거기다 직원과 손님 관리까지 그녀의 매니저 업무는 끝이 없다.

 그녀의 손길을 기다리는 여러 숙제는 사실 스스로 자처한 것이 대부분이다. 스포츠 바라는 공간은 남성을 대상으로 노출이 있는 유니폼을 입고 웃음을 보이며 술과 음식, 스포츠 경기 중계를 제공하는 곳이다. 그곳에 일하는 여성은 남성이 원하고 요구하는 것을 충족시켜줌으로써 대가를 얻는다. 이는 여성의 생존법은 남성을 통해서 이뤄진다고 묘사하는 것이다. 남성을 만족하게 해야 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리사는 직원만을 챙긴다. 정확히는 여성을 챙기고 보살핀다. 남성의 만족에 반하는 행위는 결국 남성의 지위와 권력에 의해서 내몰리는 일만 남는다. 사장인 커비에게 해고를 당하고 남편과도 좋지 않은 마무리로 헤어진다.

조롱하는 남자 손님 무리

 영화 속 모든 사고와 판단의 주체는 남성을 중심으로 이뤄진다. 남성의 욕구 충족과 만족을 위해 노출을 감수하는 것은 여성이지만,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조심하는 것도 여성의 몫이다. 좀 더 노골적으로 노출하고 자극적인 몸짓을 통해서 더 많은 팁과 수입을 얻을 수 있다. 리사는 이를 알고 있지만, 정해진 혹은 강요된 선을 넘지 않도록 강조한다. 그 선의 기준은 정확히 정의하기 어렵다. 남성이 정한 기준이지만 여성을 향한 기준이며, 남성에 의한 기준이지만 여성을 위한 기준이기도 하다. 선을 넘어 남성에게 의존하게 되면 언제나 상처 받는 쪽은 여성이다. 버림받아 홀로 아들을 키우거나 전 남편에게 괴롭힘을 당한다. 그럼에도 남성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에 반해 남성을 만족하게 하려는 행위의 선도 기준을 넘지 않는다. 여성의 생존을 위한 몸짓이 절실하더라도 한낱 스포츠 경기 중계보다 중요한 것이 되지 못하고, 고육지책으로 보인 가슴 노출은 브래지어 컵 밖으로 유두가 살짝 튀어나오더라도 남성에 의해 퇴폐적인 행동으로 판단되어 심판받는다. 경찰이 자주 가게에 들러 말썽을 해결해 준다고 하나, 경찰 역시 모두 남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텍사스라는 보수적이고 남성 우월적인 지역에서 법 집행자 역시 남성인 상황, 남성 위주의 생산과 소비의 세상인 것이다. 여성의 여성을 위한 판단과 행동은 제한받거나 거부되고 역행한다.

 예외는 통하지 않는다. 남성의 논리에 반하는 행동을 한 리사를 시작으로 메이시, 대니얼은 해고당한다. 보보는 직원이 아닌 여성인 손님이다. 성적 취향은 레즈비언이라 리사는 직원과 보보가 과도하게 친하게 지내는 것을 경계한다. 여성은 남성의 대상이지 여성의 대상이 되는 것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보보의 성적 결정성은 남성이다. 남성의 옷을 입고 짧은 머리를 하고 남성처럼 행동한다. 남성에 가까울 뿐 남성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보보 역시 예외가 되지 못한다.

성공한 여인이 아닌 잘 길들여진 여인 카라

 보보를 포함한 여성으로 묶인 이들은 분명 연대를 한다. 여성의 연대가 과연 해결책이 될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 해고를 당하고 이들이 다시 만나는 장소는 ‘맨케이브’라는 전국 체인의 스포츠 바이다. 산 넘어 산을 거쳐 들어간 곳이 남자 동굴이란 말. (Double Whammied가 이중고, 이중의 불운이라는 뜻, Mancave는 남자와 동굴의 합성어) 지역에 새로 생길 맨케이브 체인점의 매니저 자리에 면접을 보러 간 리사는 면접관 카라를 만난다. 맨케이브는 기업화된 곳이므로 정해진 시스템과 정립된 근무규칙과 이를 보호받고 보장받을 법적 지원도 구축된 곳이다. 이런 조건은 그녀에게 더 나은 환경을 제공하지 못한다. 금발의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카라는 맨케이브에서 자신의 경력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남성의 욕구를 모토로 삼는 카라의 마케팅 전략은 이미 남성 중심의 논리에 잠식당한 가치관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초반부 리사가 면접지원자에게 했던 언행과 대척된다. 그럼에도 카라의 가치관에 동조하는 리사는 이미 자신이 시도한 여성연대의 한계를 경험하고 남성 중심의 논리에 굴복하기로 마음먹은 듯하다. 자신의 굴복만으로 충분히 힘든 상황에서 메이시와 대니얼을 만난 비참함이란.

세상을 향해 외쳐!

 이 작품이 행여나 여성연대의 훈훈함을 그리고 있다고 착각하거나 헷갈리면 안 된다. 영화의 결말은 수미상관을 이룬다. 메이시가 옥상에서 발견한 울고 있는 여성은 오프닝의 리사가 떠오른다. 영화 내내 보인 그녀의 노력은 결국 결실도 없고 누군가에게 영향을 주지도 못했다. 여성이 울고 또 울면서 끝나는 세상이다. 영화는 여성연대의 필요와 필연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그 한계를 지적하는 것이다. 여성연대를 외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고 말한다. 남성 중심의 세상에서 여성연대가 작동하고 영향력이 작용하기 위해서는 변화가 필요하다. 가치관의 변화, 중심의 이동이 필요하다. 옥상에서 부르짖는 외침은 결국 세상을 향한 울부짖음이고, 변화를 부르는 아우성이다.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면, 그녀들을 도와달라는 요구는 계속될 것이다. 진정 다가올 변화된 세상은 여성연대를 통한 도움을 외침이 없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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