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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진 Jul 05. 2016

오로지 글쓰기에만 전념하고 싶었던 카프카의 소망

독서테라피 5. 변신

  언젠가는 읽어봐야지,,, 하고 벼르고 벼른 프란츠 카프카의 대표작 <변신>입니다. 하~~~ 읽긴 했는데, 역시나 어렵더군요. 비현실 적인 이 소설을 통해 무얼 말하고 싶었던 걸까요. 수많은 문학가들이 이 작품에 대한 글을 썼다고 합니다. 저는 물론 문학가도 아니고 평론가도 아니기에 이 책에 대한 무언가의 글을 쓴다는 게 좀 웃기긴 합니다만, 나름대로 읽고 느낀(생각난) 글들을 끄적거려볼까 합니다. 수준미달의 낙서가 나오더라도요.


@pixabay


  '충'의 시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남혐 여혐을 넘어 온갖 대상에 '충'을 붙이는 시대입니다. 온 세상이 벌레입니다. '맘충'은 육아에 너무 유별난 엄마들에게 붙인 별칭입니다. 벌레는 처다보는 것만으로도 혐오감을 느낍니다. 그래서 혐오스러운 대상에게 '벌레'라는 별칭을 붙입니다. 벌레라는 별칭은 예전에도 있었습니다. 공부벌레, 돈벌레처럼 무언가에 열중한 사람을 벌레로 불렀습니다. 하지만 요즘의 '충'은 다릅니다. 혐오의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일베충'에서 시작한 '충'자 돌림은 유행처럼 번지고 있습니다. '충'으로 불린 순간부터 혐오의 대상이 됩니다. 이 소설 속 그레고르처럼요.


<변신> 초판 책표지 @위키백과


  그레고르는 보통 사람입니다. 보통 직장인입니다. 그에게는 가족도 있습니다. 엄마, 아빠, 여동생. 평범한 가족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이유에선지 그는 벌레가 됩니다. 밑도끝도 없이 그냥 벌레가 되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그는 딱딱한 등껍질로 인해 몸이 부자연스럽고 말을 하려고 노력해도 말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습니다. 가족이 모두 알아본 걸 보니 바퀴벌레처럼 작은 벌레는 아니고 어느정도 덩치가 있는 벌레인 것 같습니다. 처음 가족들은 그레고르가 벌레로 변한 것에 충격을 먹고 그를 가둡니다. 출근은 커녕 방 밖으로도 못 나가게 감금된 것입니다. 여동생 그레테는 오빠에게 먹을 것을 줍니다. 이게 1부 내용입니다.


@pixabay


  2부로 넘어가며 상황이 급변합니다. 몸만 벌레가 된 게 아니라 모든 게 벌레와 닮아갑니다. 가족들도 이제 그를 벌레로 취급합니다. 그리고 3장으로 넘어가며 그는 벌레도 아닌 물건취급을 받습니다. '저것'으로 불리게 된 것입니다. 그레고르는 아버지의 어려워진 사업 때문에 출근하기 싫은 직장에 억지로 출근한 멋진 아들이었습니다. 적어도 가족에게만큼은요. 가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가족 구성원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벌레가 되고 나자 가족들은 그를 멀리하더니 상처를 입히고는 없어져버렸으면 합니다. 이제 가족들에게 그는 없는 존재나 마찬가집니다. 마치 처음부터 없던 존재였던 것처럼 가족은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갑니다. 그레고르가 죽자 가족은 소풍까지 갑니다.


프란츠 카프카 동상 @pixabay


  카프카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걸까요. 이 소설을 이해하려면 우선 카프카를 이해해야 하더군요. 그의 생을 알아야 이 소설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소설은 오로지 글쓰기에만 전념하고 싶었던 카프카의 소망이 반영된 것'일지도 모른다고 합니다. 그는 소설을 쓰기 위해 결혼도 하지 않았더군요. 결혼을 하면 온갖 의무들이 더해지기 때문에 소설을 쓸 시간이 없을 테니까요.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하지만 문학에 대한 꿈을 버리지 못했다고 합니다. 낮에는 회사에서 일하고 밤에는 소설을 썼습니다. 매일 밤 소설을 쓰며 약해진 체력으로 인해 41살에 죽었더군요. 그의 생을 알고 나니 많이 안타까웠고, 나는 그 길로 가지 않은 것에 나와 다르다는 걸 느꼈습니다.


@pixabay


  저도 소설을 미치도록 쓰고 싶었습니다. 낮에는 회사에서 일하고 밤에는 소설을 썼습니다. 하루에 3~4시간씩 자며 첫 소설을 완성했지만 공모전마다 떨어지고, 출판사들은 제 원고를 거부했습니다. 인정받지는 못하더라도 소설을 쓰는 사람으로 살고 싶었지만, 대한민국에서 소설로 먹고 살기에는 불가능하더군요. 제가 만약 카프카처럼 문학에 대한 소망이 매우 간절했다면 결혼을 하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카프카 만큼은 아니었나 봅니다. 저는 소설가 보다는 아빠가 더 되고 싶었거든요. 카프카가 생각했던 것처럼, 저는 결혼한 댓가로 아빠가 된 댓가로 열심히 일해야 합니다. 열심히 돈을 벌어야 합니다. 물론 소설 쓸 시간은 너무 내기 힘듭니다. 하지만 저는 불행하다는 생각은 안 합니다. 제가 선택한 길이니까요. 제가 선택한 아내와 제가 선택한 두 아들이 있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카프카 같은 소설가는 될 수 없나 봅니다. 이 소설을 읽으며 카프카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싶어졌습니다. 그의 다른 소설들도 찾아서 읽어봐야 겠습니다.


http://book.daum.net/detail/book.do?bookid=BOK00025213778Y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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