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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관통 Jan 31. 2019

하고 싶은 일 도전하기(6)반년만에 스타킹에서 방송통역

신데렐라는 없다. 미리 준비해야 기회를 잡는다.

(2009년5월7일)


토요일에 스타킹의 유현아 작가님한테서 전화가 왔다. 오늘 밤 10시에 통역해 줄 수 있는지 물었다. 아침 10시든 밤 10시든 가리지 않고 갈 수 있다고 대답했다. 


동대문의 레지던스에서스웨덴에서 온 ‘플로어볼’이라는 스포츠 선수인 다니엘과 니콜을 만났다. 딱딱한 통역보다는 친구를 만난다는 생각으로 쉬는 시간에 농담도 섞어가면서 친근하게 대화를 나눴다. 알고보니 다니엘은 엄청난 축구광이고 스웨덴의 유명 축구선수인 라르손과 같은 플로어볼 팀에서 활약하고 있다고 했다. 박지성을 알고 있고 자기들도 맨유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팬이라고했다. 그래서 둘째 날 통역을 할 때 스웨덴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고 갔더니 '멋진 유니폼'이라면서 다들 좋아했고 사진까지 같이 찍었다. 덕분에 더 가까워졌고 녹화가 끝날 때까지 중간에서 소통을 돕고 조율하기가 한결 수월해졌다. 



다음 날, 목동 SBS 본사에 가서 다니엘과 니콜의 녹화 준비를 도왔다. 따가운 오후의 햇살 아래에서 2시간 넘게 녹화 때 어떤 것을 시도할 것인지 정했다. 덥고 지쳤지만 출연자들의 기를 북돋아주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녹화를 준비하는 과정을 유심히 관찰했다. 


이제는 SBS 건물도 익숙해졌다. 자주 오면 올수록 편해진다. 방송국에 오는 것이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반년 전에 무모하게 찾아왔던 로비를 출연자와 함께 지나갈 때마다 알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출입을 거절당했던 안내 데스크, 막막한 상태에서 돌파구를 고민했던 의자, 문이 열리길 기다렸다가 걸어올라 갔던 비상계단은 그대로인데 나는 그 사이에 성장했구나. 로비를 지날 때마다 초심을 잃지 말자고 다짐했다.



 이렇게 준비를 마치고 16층 예능국 사무실에 올라왔다. 그동안 미팅은 보통 회의실이나 13층의 로비에서 했기 때문에 사무실은 SBS에 처음 찾아왔을 때 이후로 2번째 방문이었다.  윤신혜 작가님이 시간이 있으면 남아서 일본어 미팅 통역도 해달라고 했다. 그동안 스타킹에선 영어만 사용했기에 일본어로 통역하는 건 처음이었다. 약간 떨렸지만 평소에 하던 대로 하자고 마음먹었다. 


사무실 벽의 화이트보드에는 출연예정자의 이름이 써있었다. 다음 주 월요일에는 스웨덴에서 온 플로어볼 팀과 일본에서 온 외발자전거 선수가 출연하는구나. 외국인 출연자가 2팀이라서 어느 때보다 무대 통역을 할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미팅은 내가 통역을 해도 저번처럼 당일에 올라가지 못할 수도 있었다. 어떻게 될지 궁금했지만 내가 먼저 나서서 묻지는 않았다. 가뜩이나 작가님들이 신경 써야 할 것들이 많은데 질문으로 신경 쓰게 하거나 작은 부담이라도 주고 싶지 않았다. 두 시간 후 외발자전거 챔피언 치하루를 만나서 간단한 미팅을 했다. 한 나절을 몸을 움직여가며 2팀이나 통역을 했더니 육체적으로는 힘들었다.하지만





 집에 돌아가서 쉬는데 윤신혜 작가님이 외발자전거 무대 통역을 부탁한다고 연락을 줬다. 


‘유석씨 월요일 오전 10시까지 깔끔한 옷차림으로~그리고 경쾌하고 밝은 에너지 가지고 오세요^^’


무대에 올라가는 것이 확정되었다. 드디어 무대 통역을 하는구나! 이메일을 몇 번이나 다시 읽어봤다. 기쁜 마음이 드는 한편 갑자기 긴장이 되기도 했다. 혹시나 엉망으로 하면 손을 내밀어준 윤신혜 작가님에게도, 프로그램에도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에 남은 하루 동안 스타킹 통역 준비를 제대로 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긴장이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반응이라고 마인드 컨트롤을 했다. 



스타킹에 외국인 출연자들이 나왔던 영상을 찾아보면서 기존 통역 선생님들이 통역하는 모습을 보고 배웠다. 배우고 싶은 사람을 선정한 후에 관찰하면서 배우자. 보기만 할 것이 아니라 따라 하자. 내가 저 자리에 있다고 생각하고 소리를 내서 통역하는 연습을 했다. 연습한다고 실수를 안 하는 것은 아니지만 실수할 확률을 줄여준다. 원하는 것이 있다면 반드시 연습하자. 잘하고 싶다는 생각만으로는 실력이 향상되지 않는다. 긍정적인 생각을 아무리 많이 하더라도 없던 실력이 갑자기 생기지는 않는다. 성공을 상상하면서 노력해야 한다.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의심이 들 때는 TV와 라디오에서 사사키씨의 통역을 성공적으로 했던 것을 돌려봤다. 일기를 다시 읽으면서 잘 할 수 있다고 스스로에게 말해주었다. 불안한 마음이 들 때는 기운을 주고, 올바른 길로 가고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주는 것을 보자. 세계적인 스포츠 선수들도 자신이 멋진 플레이를 한 영상을 돌려보면서 자신감을 갖는다고 한다. 나의 경우 노력하는 과정을 매일 일기에 썼고, 책을 읽다가 좋은 글귀를 발견하면 메모를 해놓았다가 다시 읽어봤다. 성공적으로 통역을 하는 모습을 상상하고 적극적으로 준비를 했다. 신기하다. 한동안 소홀히 했던 상상하기와 구체적인 노력을 다시 시작했더니 굉장한 경험이 이어지고 있다!



나탈리 화이트 수행 통역으로 녹화장을 찾은 후 조금씩 통역 횟수를 늘려왔다. 메이크업까지 받고 무대 바로 옆에서 스탠바이만 하다가 끝난 적도 있었지만 좌절하지 않고, 긍정적인 자세로 그 상황에서 최선을 다했다. 그렇게 조금씩 노력한 결과 무모하게 방송국을 찾은 지 6개월 만에 드디어 공식적으로 스타킹 무대에 설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원하는 삶의 모습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좋은 사람들도 만나고, 살아있다고 느끼는 가슴 뛰는 경험을 하는 삶! 조금씩 이뤄나가고 있구나! 정말 기쁘다. 



(2009년5월11일)


 10시까지 등촌동 공개홀로 일찍 아침을 먹고 집을 나섰다. 평소엔 아침에 일어나는 게 너무 힘들었는데 오늘은 소풍날 아침처럼 눈이 번쩍 떠졌다. 아마 좋아하는 일을 하기 때문인 것 같다. 지하철역으로 걸어가는 동안 성공적으로 통역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좋은 기분을 유지했다.


등촌동 공개홀에 도착 후 대기실에서 스웨덴 친구들과 반갑게 인사하고 잠시 후에 윤신혜작가님과 치하루도 만났다. 작가님의 소개로 기존 통역사 선생님들에게 인사를 했다. 예능 통역은 처음이라고 조언을 부탁 드렸고 정지우 중국어 통역 선생님과 김고운 영어 통역 선생님이 무대 위에서 통역할 때 유용한 조언을 해주었다. 무대에서 통역할 때 도래미파솔라시도의 '솔'의 톤으로 통역을 하라는 조언은 모니터링 할 때 파악하지 못한 것이었기에 도움이 많이 되었다.


윤신혜 작가님이 대본을 숙지할 것을 주문했다. 무대 위에서 녹화를 할 때 치하루가 대답해야 하는 부분을 빠트릴 경우 옆에서 도와주기 위해서 대본 내용을 숙지했다. 지금 시간은 11시. 첫 번째 코너는 1시에 녹화가 시작되기에 아직 2시간이 남아있었다. 녹화시간이 다가올수록 점점 긴장됐다. 긴장을 아예 하지 않을 수는 없다. 경험이 풍부한 프로들도, 아마추어들도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모두 긴장을 하기 마련이다. 긴장을 피할 수는 없지만 그것을 어떻게 소화하느냐는 나에게 달렸다. 



긴장을 설렘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자신감이 필요하다. 부담감이 있어도 잘 해낼 수 있다고 믿고 자신감을 가질 때 긴장감이 설렘으로 바뀐다. 자신감은 연습에서 온다. 남은 2시간 동안 집중적으로 연습했다. 눈으로 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소리 내면서 연습을 했다. 단순히 내용을 전달하는 것에서 그치면 안 된다. 방송이기 때문에 시청자들이 듣기 편한 억양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한 번에 통역을 해야 했다. 이사오 사사키의 '김동율의 포유' 통역할 때 느꼈듯이 제일 처음 인사를 통역하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긴장을 덜하기 때문에 첫 인사 부분을 미리 소리 내어 연습을 했다. 자기소개는 바뀔 내용이 거의 없기 때문에 반복해서 연습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일본 외발자전거 대회 7회 챔피언, 28살 요시자와 치하루 입니다.'


이 부분만 100번 넘게 연습했다. 



 드디어 스탠바이! 치하루와 함께 백스테이지로 향했다. 1시가 조금 넘어서 녹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치하루가 등장한 후에 뒤따라 무대로 올라갔다. 처음 올라가는 스타킹 무대였다. 조명이 굉장히 밝았다. 10대가 넘는 카메라가 이쪽을 향하고 있었다. 


'아, 이 위에서는 이런 풍경이 펼쳐지는구나!'


밑에서만 보던 무대에 직접 섰다. 모니터용 TV에 내가 나온 것을 보니 꿈만 같았다.


'아니지, 지금 이런 생각할 때가 아니다. 집중! 집중!'



우선 첫 인사만 제대로 전달하자고 생각했다. 치하루의 자기소개 차례가 되었고 연습한대로 빠트리지 않고 말했다. 연습하길 정말 잘했다고 생각했다. 첫 대사를 막힘 없이 전달했기에 긴장이 많이 풀렸다. MC와 패널들의 질문을 최대한 빨리 통역하고 치하루의 답변을 자연스럽게 통역하기 위해 집중을 했다.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를 정도로 빠르게 지나갔다. 무대에 내려와서 한숨 돌리면서 시계를 확인했는데 거의 한 시간이나 지나있어서 깜짝 놀랐다. 그렇게 첫 통역이 끝났다. 녹화가 끝나고 나서 윤신혜작가님이 스케치북을 더 자주 확인했어야 한다고 말해주었다. 통역하는데 집중하느라 방청석 쪽의 스케치북을 자주 확인 못했구나! 처음이니까 그럴 수도 있다고 말해주셔서 고마웠다. 이번엔 실수했지만 다음에 기회가 주어진다면 같은 실수를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강호동선배님과 같은 무대에 섰다는 사실에 너무나 기뻤다. 예전에 TV로만 봐왔는데 SBS에 무작정 찾아온 후에 보조통역으로 스타킹에 와서 멀리서 지켜본 후에 편지를 썼고, 내 어깨를 두드린 지 얼마 되지 않아 드디어 스타킹 무대에서 만난 것이다. 내게는 너무나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녹화를 끝내고 치하루 일행과 마음 편하게 점심을 먹었다. 일이 다 끝났기 때문에 그대로 집에 갈 수 있었지만 공개홀로 돌아가 관객석에서 다른 코너의 녹화를 보았다. 



윤신혜 작가님에게 다시 한번 좋은 기회 줘서 고맙다고, 부족한 점은 반성하고 고치겠다고 이야기했다. 생각하고 있는 것을 꼭 표현하자. 말하지 않으면 상대방은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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