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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붱 Feb 29. 2024

해묵은 원고를 발견했다

구글 드라이브에 있는 파일을 정리하다가 2022년에 쓴, 해묵은 원고를 하나 발견했다. 원고의 제목은 '괜찮은 척하지 말아요, 우리(솔직히 말해서 하나도 안 괜찮아)'였다.


2022년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나, 곰곰이 생각해 봤다. 아. 그때는 첫 책과 두 번째 책을 내고 나서 얼른 세 번째 책을 내야 한다는 마음에 사로잡혀 전전긍긍했던 시기였던 것 같다.(확실치 않지만)


폴더를 열어보니 출간기획서와 목차는 어느 정도 완성된 상태였지만 실제 글은 딱 한 꼭지밖에 쓰지 않았다. 꼭지의 제목은 '뻔한 글이 주는 위로'다. 내용을 옮겨보자면 다음과 같다.


뻔한 글을 읽었다. 철학서다.

사람의 인생은 직선이 아닌 곡선이며 힘들 땐 잠깐 쉬었다 가도 된다고 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느냐보다 그것을 어떻게 해석할지가 중요하다는 내용도 있었다.

니체를 좋아하고 괴테를 사랑하는 나는 어디에선가 다 들어본, 뻔한 내용이었다. 

그런데 그 글을 읽는 동안 복잡하던 마음이 한결 차분해짐을 느꼈다. 이렇게 도망치듯 모든 것을 다 내팽겨 친 나도 괜찮다고. 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는 거라고 마치 나를 대신하기라도 하듯 나에게 말해주는 그 뻔한 위로가 고마웠다.

너무 식상해서 혹은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해서 미처 내게 해주지 못했던 흔한 말이 실은 지금 내게 가장 필요했던 말이었음을.

그 당연하고도 어디에선가 들어봄직한 평범한 말이 오늘의 나를 지탱할 수도 있다는 것을 한동안 잊고 살았다.


이게 다다. 겨우 500자도 되지 않는 이 짧은 글을, 나는 그때 왜 쓰고 싶었던 걸까? 정확한 건 알 수 없지만 확실한 건 그 당시 나는 이 글이 너무 쓰고 싶었고, 언젠가 이런 내용으로 가득 찬 책을 한 권 내고 싶다는 열망에 사로잡혀 있었다는 것이다.


최근에 나는 글쓰기와 책 쓰기를 구분 지어 생각하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꾸준히 브런치에 글을 연재하는 요즘 이런 생각을 하다니. 좀 의외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요즘 '모든 글이 다 책이 될 필요는 없다. 물론 책이 되어 나온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쁘지만 그걸 목표로 글을 쓰진 말자! 그냥 지금 내가 쓰고 싶은 거, 하고 싶은 말을 글로 써두자!'라는 마인드로 글을 쓰는 중이다.


이런 어중간한 마음으로 무슨 글이 써지겠냐 싶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렇게 마음을 먹자 2년 간 막혀있던 글이 술술 써지더라. 참 웃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앞으로도 나는 내가 쓰는 모든 글을 책으로 내고 싶은 마음은 없다. 말은 이렇게 해도 글을 쓰다 보면 문득문득 책이 쓰고 싶어질 때가 또 올 것이다.


그럴 때마다 지금의 이 마음을 다시금 상기하기 위해서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다.


'모든 글이 책이 될 필요는 없다. 그저 쓰고 싶은 이야기를 쓰고 싶은 만큼만 쓰자!'


해묵은 원고가 지금 내게 해주고 싶은 말은 바로 이런 게 아녔을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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