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채로운 무채색의 일상
“우리가 청소를 해도 태가 안 나요. 태가 나야 닦는 사람도 좀 마음이 뿌듯해지고 하지. 우리가 이렇게 바닥을 문질러도 사람들이 몰라요.”
평소처럼 일하면서, 이제는 너무 당연하다는듯 가볍게 푸념을 뱉는다. 그는 감상에 빠지기는커녕 다음방을 청소하기 위해 빠르게 자리를 옮겼다.
유난히 밤잠을 설치던 지난밤, 결국 다시 잠에 들지 못하고 새벽 4시 반에 침대 이불을 개었다. 평소처럼 밖으로 나가 담배를 한 대 태우고, 집으로 들어오면서 문 앞의 신문 두 부를 챙겼다. 세 시간을 잤지만 잔 것 같이 느껴지지 않을 때가 있다. 가끔 찾아오는 이른 새벽의 행운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학교 동아리에서 단체로 언더아머 바람막이를 주문했고 어제 동아리방에 있던 내 옷을 챙겼다. XL가 생각보다 작아서 2XL를 신청한 학우 한 명과 오늘 낮에 교환하기로 했었다. 옷이라는 게 항상 그렇다. 남성복의 경우 XL는 나에게 편안하고 꼭 맞는 사이즈이지만, 남녀공용남 경우 2XL를 구매하지 않으면 옷이 조금 작다. 이 당연한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실수가 반복된 이유는 항상 무신사에서 핸드폰 터치 몇 번으로 옷을 구매하는 일상 때문인 것 같다.
바람막이를 챙기고 집을 나섰다. 해가 뜨기도 전인 어둑한 새벽, 경의선 숲길에서 조깅하는 사람들을 지나쳐 학교로 향했다. 이제서야 집에 가는 대학생 세 명도 지나쳤다. 중간시험 전 주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즐거워보였다. 술에 취하지도 않은 것 같았다.
학교 남문을 통과해 계단을 밟아오르며 지렁이를 생각했다. 오늘도 수많은 지렁이들이 길을 잃을 것이다. 간밤에 내린 비에 아스팔트와 시멘트 바닥을 흙밭으로 착각한 가엾은 녀석들은 낮이 되면 길을 잃고 헤매다 말라버릴 것이다. 내 버릇 중 하나는 그렇게 길을 잃은 지렁이를 나뭇가지로 촉촉한 흙에 옮겨주고, 거기에 텀블러에 담고 다니던 물을 한 바가지 부어주는 일이다. 나 자신에게도 그렇게 관대했다면 이전의 아픔들이 조금은 덜했을까? 지난 집단상담에서 날카로운 말에 베인 상처가 또다시 쓰리다.
학교와 그 밖을 가르는 경계 건물들이 있다. 특히나 서강대처럼 매우 넓지 않은 학교들은 대부분의 건물들이 그렇다. 그곳에 5∙18 민주열사 김의기 선배의 기념사업회 사무실이 있다. 사무실 문을 열고 퀴퀴한 냄새를 잡기 위해 내가 가져온 캔들에 불을 붙인다. 동그란 원기둥 모양의 꽤 큰 캔들에는 두 개의 심지가 있다. 하나의 심지가 고꾸라져서 손으로 곧게 펴다가 부러뜨릴 뻔했다. 무심코 세심함을 잊어버리면 무엇인가 부러져 버릴 수 있다.
잠시 뒤 복도에서 바퀴달린 고무 청통이 다가오는 소리가 들린다. 익숙한 주황색 옷을 입은 여성노조 분회원님이시다. 성함은 모른다. 일터에서 자신의 이름을 밝히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이에게 갑자기 이름을 묻는 행위는 어쩌면 안전한 그의 구역을 침범하는 주제넘은 짓일 수 있다. 일 때문에 마음이 바쁠 때 택시 기사가 갑자기 나에 대해서 궁금해하고 질문하면 불편할 때가 있는 것처럼, 일하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 모종의 선을 넘지 않아야 한다. 우리는 편의점 알바에게 갑자기 이름을 묻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누군가의 이름을 듣기 위해선 그만한 정성이 필요하다. 마주친 이에게 갑자기 이름을 묻는 것은 위계적 권력의 한 모습이다.
분회원님이 사무실 쓰레기통을 비우시고, 바닥을 닦으시며 말하신다.
“우리가 청소를 해도 태가 안 나요. 태가 나야 닦는 사람도 좀 마음이 뿌듯해지고 하지. 우리가 이렇게 바닥을 문질러도 사람들이 몰라요.”
노회찬이 말한 투명인간. 색깔이 칠해지지 않은 무채색의 사람. 나는 그에게 “그래도 학생들 대부분이 누군가 청소를 해주는 것을 알고 있”다며 서툰 최선을 건넨다.
나는 빈번히 놓치고 만다. 오늘 새벽 집 앞에 가지런히 놓인 신문을 가져다준 두 명의 이름을. 학교 동아리방에 바람막이를 배달해준 사람과 그것을 만들어준 이들의 이름을. 내가 올라왔던 학교 계단을 주기적으로 청소하는 사람들의 이름을. 지금도 나의 삶을 지탱하는 수많은 이들의 이름을. 나의 이름이 걸려있지 않다고 서운해하기에 나는 너무 많은 이름을 스치듯 지나쳐왔다.
보이지 않는 것들이 보이는 것들을 지탱하고 있다. 작금의 사회에서 생존하기 위해 마음의 수면 아래에서 발버둥치면서도 보이는 모습은 깔끔한 우리들의 일상처럼. 들리지 않는 것들은 들리는 이름들 사이에서 지각되지도 못한 채 말이 되어왔다. 광주 민주화 항쟁을 알리기 위해 유인물을 인쇄하다 계엄군에 의해 6층의 높이에서 추락한 스물 두 살 김의기의 이름처럼.
새벽 여섯 시, 오늘도 ‘학교 청소 어머님’은 건물을 닦고 쓸어내신다. 나는 새벽에 일어났음에도 밤잠을 설치는 기분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2024. 10. 15. 의기회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