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ADHD, 조용한 고립
외로운 당신에게 조심스럽게 공감을 건넵니다
ADHD 당사자의 수만큼 다양한 ADHD
세상에 있는 ADHD 당사자의 수만큼 다양한 ADHD가 있다. 그렇다, 세상에 똑같은 사람은 없듯이 똑같은 ADHD도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ADHD의 특성을 이해하고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유형화가 불가피하다. 그래서 ADHD는 다음과 같이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① 주의력 결핍 우세형 (‘조용한 ADHD’, ‘성인 ADHD’를 혼용하여 쓰겠습니다.)
② 충동-과잉행동 우세형
③ 복합형 (①과 ②가 모두 있는 경우)
물론 이 분류 틀에 정확히 들어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 나의 경우에도 ①에 가까울 뿐이지 정확히 그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리고 ②에 해당하지만 ①의 특성을 아주 일부 가질 수도 있고, ③이지만 전체적으로 ADHD의 특성들이 약한 편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떤 특성들을 가지고 있으며 그 특성들이 어떤지를 알고, 그러한 내 자신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워나가는 것’이다.
다양한 ADHD, 그런데 이들 간에 공통점이 있다. ADHD의 특성을 가진 사람들은 사회에서 고립되기 쉽다는 것이다. 특히 위의 ①번, 즉 ‘조용한 ADHD’는 사람들 사이에서 외로움을 느끼고 고립되기가 더 쉽다. ②와 ③도 마찬가지이지만 오늘은 ‘조용한 ADHD’의 외로움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조용한 성인 ADHD, 조용한 고립
조용한 ADHD는 곧 ‘주의력 결핍 우세형’ ADHD를 의미한다. 조용히 있는데 왜 고립되는 것일까? 나의 경험과 ADHD 친구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세 가지 이유를 도출해 낼 수 있었다.
첫째, 겉으로는 좀처럼 티 나지 않는다.
ADHD가 겉으로 티 나지 않으면 좋을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들 수 있다. 실제로 조용한 ADHD를 가진 사람들은 아무 문제를 느끼지 못하고 잘 살아가다가, 인생의 어떠한 지점에서 ADHD로 인한 실패를 경험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수험 공부를 시작할 때, 대학원에 진학하여 학업을 시작할 때, 취업에 성공하여 직장에 다닐 때, 처음 알바를 할 때, 심지어는 결혼을 하여 배우자와 함께 살게 될 때 등 다양한 계기를 통해 ‘무엇인가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라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동시에 이전까지는 문제가 없었으니 앞으로도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
조금 어렵게 말하자면 어느 순간 생애에 따른 발달과업(과제)을 해결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지만, 이전과는 질적∙양적으로 달라진 과업을 수행하는 데에 새로운 방식을 도입하거나 약물, 상담의 도움을 받아야 함을 인지하기가 어렵다. 그전까지는 나름 잘 ‘적응’하며 지내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인 ADHD’라는 이름이 붙는다. 그러나 ADHD는 성인이 되었을 때 짠 하고 나타나지 않는다. 이전까지는 사회에 ‘적응’하는 데에 큰 지장이 없었을 뿐이다.
그래서 성인 ADHD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대안을 탐색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결국 자신에게 주어진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실패하기 시작한다. 직장에서의 지각, 반복되는 실패로 인한 우울과 불안, 자기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 ADHD는 평균적인 수명만 10여 년 짧은 것을 넘어서 경제적으로, 관계적으로 고립되는 경우가 많다.
둘째, 개인마다 특성이 너무 다르다.
개인마다 특성이 다르다는 점은 ADHD 당사자들이 고립되는 데에 큰 영향을 준다. 왜냐하면 공감대 형성과 문제에 대한 대응 방안이 표준화되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똑같이 조용한 ADHD인 사람 둘이 있어도 둘의 특성이 다르다. 자신의 특성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도 천차만별이다. 결국에는 자기만의 방법을 찾아야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당연히 ADHD 당사자 주변인들의 입장에서도 정확히 어떤 지점을 배려해주어야 하는지, 그 방법과 정도는 어느 정도인지 파악하기가 힘들다. 가령 나의 경우 만약 대학에 장애학생지원센터에서 ADHD에 관련된 지원을 해준다고 해도 어떤 지원이 필요한지 말하기가 어렵다. 설령 그것을 구체화한다 하더라도 다른 ADHD 당사자들이 같은 지원을 필요로 한다고 말하기 어렵다. 한 마디로 ‘어렵고 곤란한 사람’이 되어버리기 십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학교에서 ADHD 커뮤니티를 만들고 자조모임을 운영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따로 글을 써보려 한다.
셋째, 관계를 형성하는 데 두려움을 많이 느낀다.
ADHD는 한 마디로 실수가 많은 사람들이기도 하다. 이미 다른 사람들에 비해 실수를 많이 하기 때문에 실수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의 정도가 높다. 특히 실수에 대한 타인의 부정적인 피드백은 대인간의 관계 형성과 발전에 있어 개인을 위축되게 만들기 쉽다.
내가 가진 가장 큰 문제는 ‘대화의 맥락을 파악하는 것의 어려움’이었다. 예를 들어 친구들과 함께 대화를 하고 있는데, 대화 주제가 A → B → C → D → E 로 흘러가고 있다. 이때 나는 혼자 A → D → H → D 의 순서로 이야기를 한다. 친구들이 잘 받아준다면 상관없었겠지만, 대부분의 피드백은 ‘맥락 파악 못하는 녀석’이었다. 당연히 겉으로 티 내는 반응들이었다. 그래서 나에게 학창 시절과 대학교 1학기는 결코 즐거운 시간이 아니었다.
그러나 ADHD의 특성들은 정서적인 지지집단이 튼튼하게 받쳐준다면 그 정도가 덜해질 수 있다. 가령 부모님이 ADHD 당사자인 자녀를 잘 이해하고 있다거나, ADHD 자조모임에 정기적으로 참석하여 소속감을 느끼고 고민을 나누며 여러 대응 방안을 공유하는 경우가 있겠다.
그렇다면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까?
그렇다면 ADHD의 특성을 가지고 있는 나는 고립되어야만 할까? 물론 병원과 상담이라는 방법도 있다. (나는 이러한 방법들을 강력히 추천한다.) 하지만 병원과 상담소가 우리 인생의 전부는 아니다. 우리는 다른 일상의 영역에서도 살아남기 위한 치열한 싸움을 벌여야 한다.
나는 조금은 알고 있다. 자살을 생각하던 고등학교 시절과 외로움에 혼자 울던 시간들을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혼자되는 감각은 여전히 가지고 있고, 어쩌면 평생을 고독감을 가지고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아직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과 연결되기 위해 노력했던 기억과 애쓰는 지금의 모습이 있다. 물론 두려움도 있다. 내 미래에 대해 양가적인 태도를 지니고 있다. 중요한 점은 나와 내 ADHD 친구들은 사람들과 연결되기 위해 수많은 방법들을 시도해 왔고 여전히 실패와 성공을 거듭해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수많은 실패로 다져진 회복탄력성'을 가진 ADHD들은 넘어지고 일어나는 것에 익숙하다.
다음 글에서는 우리가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지 써보려고 한다. 완벽한 해안을 제시할 순 없겠지만.
나의 경험이 당신의 아픔과 만나 약간의 위로가 되길 바라며. 나의 치열한 순간들이 당신의 포기하지 않는 마음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라며.
* 해당 글이 전문가의 진단을 대신할 순 없습니다.
* 도움이 필요하다면 정신건강의학과 또는 심리상담소의 문을 과감하게 두드리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