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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준 Nov 06. 2024

일상이 회피형과 미루기

그런데 이제 지각을 곁들인

 오늘은 ‘미루지 않는 법’을 논의해보려 한다. 이 글을 읽고 하트를 누르는 것조차 미루는 당신과 생각을 나눠보고 싶다. 사실 글쓰기를 미루다 결국 마감을 2시간 남기고 급하게 (그러나 고심하며) 휘갈기고 있다. 미뤘든 어쨌든 마감 기간 내에만 제출하면 되는 것 아닌가?


 오늘은 ‘미루기’와 ‘지각’에 대해, 특히 ‘미루기’에 대한 고찰을 간단하게 공유해 본다.

 



미루기와 지각이 일상


 모든 일에 ‘이거 안 하면 정말 큰일 난다’라는 생각이 들면 나아질까. 조금이라도 괴로운 일들은 미래의 나에게 맡기고 미루는 것이 나의 삶이다. 심지어 생각하기에 골치 아픈 일이면 생각하는 것도 미뤄버리고 유튜브를 보거나 다른 일을 한다. 생각도 미룬다. 잠깐 미뤄둔 사이에 다른 관심거리가 눈에 띄면 이미 그 일은 글렀다. 별 결 다 미룬다. 결국 막판에 일이 몰려서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하며 일을 해결한다. (가끔은 해결에 실패한다.)


 그리고 시간도 밀린다. 그렇다. 지각이 일상이다. 일어나자마자 씻고 나갈 채비를 해야 하는데 조금씩 미루다가 결국엔 또 늦고 만다. 눈칫밥을 배 터지게 먹으며 약속 장소에 간다. 알바, 수업, 학교, 직장, 심지어 친구들과의 약속까지. 어디 하나 늦지 않는 곳이 없다. 이젠 빠지면 섭섭하다. 얼마나 늦어댔으면 ‘채또늦’이라는 별명도 생겼다. ‘채성준 또 늦는다’고 말하기 지쳐버린 친구들이 마침내 줄임말을 만들어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지금도 가끔 늦는다.



 ‘왜 나는 매번 미루고 늦을까? 나라는 사람은 게으른 사람인 것 같다.’ 이렇게 생각하다 보면 내가 제대로 회사생활을 할 수는 있을지, 나라는 사람에 대해서 의심하게 된다. 그때부턴 스스로에게 나만 아는 독설을 퍼붓기 시작한다. ‘니가 그래서 뭘 하겠냐’와 같은…


 ADHD를 알기 이전에는 '미루기'와 '지각'이 온전히 나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러나 지금은 다르게 생각한다. ADHD의 시간관념은 조금 다르다. 우리의 시간은 두 가지로 이루어져 있다. ‘현재’와 ‘현재가 아닌 시간’. 아니 다 이런 거 아니었어?


 사람들은 이렇게 이야기하기도 한다. 시간이 금이라고, 늦는 건 태도가 잘못된 거라고. 나는 이러한 말들에 단호히 반대한다. 시간은 금이 아니고 시간일 뿐이다. 늦었다고 무성의한 게 아니고, 그런 사람이 최대한 늦지 않고 만나러 가기 위해 한 노력을 봐야 한다. 사람들이 ADHD의 이러한 사고방식을 경험해 보았다면 ‘조금’ 늦는 걸로 ADHD를 나무라진 못할 텐데.



충분해지면 됩니다. 완벽한 사람이 어딨어요.


회피를 회피하기

 그렇다고 모든 미루기가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미루지 않고 해야 하는 일들도 많다. 그렇다면 이런 중요하거나 소중한 일들을 어떻게 미루지 않고 해낼 수 있을까? 내가 소개할 (내가 검증한) 방법은 세 가지이다. 다년간의 눈칫밥으로 마련된 가시방석 위에서 고민한 방법들이다.



첫째, 선언해 버리기. (주의: 이미지 박살)


 선언해 버린다. 나는 무엇을 하겠다. 언제까지 무엇을 해내겠다. 사람들이게 이야기한다. 부담감이 커진다. 안 한다고 큰일 나진 않았던 일이 점점 큰일이 되어간다. 그리고 기왕이면 마감기한보다 이른 시간을 선언한다. 그러면 조금 늦어도 마감은 지킬 수 있다.


 그런데 연습을 잘해야 한다. 아니면 만날 때마다 선언문만 낭독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작은 일에서부터 적용해서 시작해 보면 좋다. 일을 벌인다고 선언하면 죽어나간다. 그러지 말고 지금 하고 있는 일을 개선하는 것부터 선언해 보자.



둘째, 함께하기.


 ‘혼자 가면 빨리 가지만, 함께 가면 멀리 간다.’ 유명한 격언이다. 혼자 하면 당장 오늘은 운동을 할 수 있다. 그러나 꾸준히 운동하고 싶으면 어떻게든 같이 운동할 사람들을 모아야 한다. 책을 읽겠다고 다짐했고 혼자 했는데 실패했다? 독서모임을 찾거나 만들어야 한다. 가까운 사람부터 제안해 보고, 여기저기서 사람들을 모아야 한다. 모이는 형태는 구체적인 상황에 맞추어서 이것저것 시도해 보면 좋다. 카톡방 인증, 오프라인 모임, 전화 걸어 이야기하기, SNS 운동 계정에 꾸준히 업로드하기, 브런치에 연재 요일 정해놓기 등.


 나는 운동을 꾸준히 하기 위해 러닝크루에 들어가고 함께 운동할 친구를 찾았고, 독서를 위해 독서모임에 참가한다. 심지어 기상 미션까지 시도해 봤다. 일어나는 걸 안 미루기 위해서. 함께 하는 사람들끼리는 노하우도 공유할 수 있고 한 명이 실패해도 응원해 줄 수도 있다.



셋째, 직책 맡기. (근데 이제 책임감을 곁들인)


 개인차가 있는 방법이다. 책임감이 강한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나는 책임감이 강한 편이라 꾸준히 해야 하는 일이 있으면 어떻게든 직책을 따낸다. 소모임의 장, 총무 등 회사의 직책 말고도 다양한 직책이 있다. 반드시 리더의 역할을 맡을 필요는 없다. 단지 내 역할과 해야 할 일을 확실히 하고, 그 일을 ‘조금 더 큰 일’로 만들 수 있는 직책이면 충분하다.


 그러나 모두가 책임감이 강하진 않다. 자신만의 특성을 먼저 고민하고 각자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 하나의 예시를 더 소개해보겠다. 만약 당신이 책임감은 보통인데 사람들의 시선을 많이 의식하는 사람이라면? 자신만의 자극을 찾아내야 한다. 미루지 않기 위한 노력은 이런 것이다. 예를 들어 사람들의 시선을 많이 의식하는 사람이 꾸준히 신문 3줄 요약을 해보고 싶다면, SNS에 계정을 하나 만들어서 친구들에게 홍보하고 매일 신문 3줄 요약을 올리는 방식으로 시도해 보는 것이다. 또는 같이 할 사람들을 모아 매일 정해진 시간에 3줄씩 카톡방에 내용을 공유하는 방식을 시도해 볼 수도 있다.




‘나’의 문제가 아니다.
나의 모습 중 ‘하나’ 일뿐이다.

 미루기와 지각이 일상이 된 사람들은 부정적인 자기 인식을 가지기 쉽다. 나는 게으른 사람이며, 시간 약속도 못 지키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에게 지각에 대한 핀잔을 들으며 부정적인 피드백이 늘어간다.


 그런데 한 문단만 할애해서 이론적으로 따져보자. 복잡하면 다음 문단으로 넘어가도 된다. 시간이 직선처럼 흘러간다는 선형적(linear) 시간관은 서양의 근대식 시간관이다. 동양은 원형(circular)으로 순환하는 시간관을 가졌었다. 지금처럼 분, 초 단위의 치밀한 ‘기계식 시계’는 중세 유럽에서 시작됐다. 이전에는 해 뜨면 일어나고 해가 넘어가면 집으로 갔다. 약속도 그렇다. 지금의 중장년, 노인들은 점심 약속을 잡으면 30분, 1시간 정도는 상대방을 기다리는 게 당연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시간을 쪼개서 써야 한다.(Micro-management) 왜? 대체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할까? 생산성은 높아졌는데 왜 시간은 줄어들었을까? 왜 인구의 5%가 여전히 시간을 ‘현재’와 ‘현재 아님’으로 인식하는데 이러한 관념은 무시당할까?


 즉, 시간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시간을 지키지 못한 나를 너무 나무라지 말자. 그럴 수 있다. 당신 자체가 게으르고 미루고 지각하는 사람은 아니다. 그냥 당신의 모습 중 하나일 뿐이며, 그것이 당신 전체를 규정할 순 없다. 그러니까 하고 싶은 말은


 당신 '잘못'이 아니니까 자신을 너무 미워하지 마세요. 그럴 수 있다고 위로해 주고, 자기 자신과 함께 방법을 찾아나가 보세요. 세상에 적응하려고 노력하되, 세상이 정해놓은 틀에 자신을 끼워 맞추면서 자신을 깎아내리진 마세요.




<성인 ADHD 자가 보고 척도(ASRS-V1.1) 증상 체크리스트>


4번. 골치 아픈 일은 피하거나 미루는 경우가 있습니까? – 매우 그렇다


다 이런 거 아닌가?



8번. 지루하고 반복적인 일을 할 때, 주의 집중이 힘든 경우가 있습니까? – 매우 그렇다


 다 이런 거 아니냐고.



8번. 지루하고 어려운 일을 할 때, 부주의해서 실수를 하는 경우가 있습니까? – 거의 그렇지 않다


  사실 실수를 많이 한다. 대답을 잘못한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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