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성준 Oct 31. 2024

"쉬겠습니다. 그런데 쉴 때는 뭘 해야하나요?"

휴식조차 일이었던 사람

(어제 과음으로 인해 연재가 9시간 늦었습니다. 사과드립니다. 그리고 더 솔직한 내용 전달을 위해 문체를 바꾸기로 했습니다.)


휴식도 일이다: 불안강박의 시스템


2년 전 처음 정신건강의학과에 방문했을 때, 그리고 학교에서 개인 상담을 진행할 때 선생님들이 공통적으로 질문하셨던 내용이 있다.


“보통 언제 휴식을 하시나요?”


 그럼 난 되묻곤 했었다.


“쉴 때는 뭘 해야하나요?” ( <- 지금 생각하면 웃음벨이다)


 두 분 모두 질색을 하시면서 '쉬는데 뭘 또 하려하느'냐고 혀를 내두르셨다. 기존에 내가 가진 일상생활은 ‘불안과 강박의 시스템’이었다. 무엇인가를 하고 있으면 강박적으로 하고, 하고 있지 않으면 불안했다. 당연히 주기적으로 번아웃이 왔다. 그러나 쉬는 방법을 몰라서 쉬는 것조차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어떻게 휴식을 할 수 있을까.



쉬어가기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쉴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나의 결론은 ‘그런 사람이 되지 않아도 괜찮다는 마음’을 가질 때 비로소 쉴 수 있다는 것이었다. 휴식을 취하고 싶으면 ‘반드시 쉬지 않아도 된다’라고 편하게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휴식이 또다른 일이 되어버리지 않는다.


 대개 강박은 불안에서 비롯된다. ADHD는 특히 실수를 많이한다. 그러다보니 또 실수할까봐 불안해지고, 불안을 커버하기 위해 강박적인 사고와 행동이 점점 커진다. 물건을 챙겼는지 몇 번씩 확인하고, 사람들을 만날 때도 편하게 말을 하지 못하고 ‘자기검열’을 반복한다. 군사정권 시절의 검열만큼 냉정한 강박의 검열관들이 생각과 말을 주시하고 있다. 이 독재에 대항하고자 내가 했던 운동은 ‘괜찮아 타임’이었다.


 말하기 좀 쑥쓰럽다만 도움이 많이 되어서 공유해보고자 한다. 불안이 올라올 때, 강박적인 행동이나 사고가 느껴질 때, 아무튼 그렇고 그런(알지만 말할 수 없는 수많은 상황들) 상황에서 딱 1분만 내면 된다.


 지금 이 문제의 최악의 결론을 모두 상상한다. 그리고 그 결론들에 대해 ‘그래도 괜찮아’라고 말해준다. 적어도 나의 경우엔 ‘그래도 죽지는 않네. 괜찮아.’로 모든 생각이 귀결됐다. 어차피 평소에 죽을 것처럼 달리는 사람인데 죽지는 않는다는 것 자체가 큰 위안이었다.



<ASRS-V1.1 증상 체크리스트>



6번. 마치 모터가 달린 것처럼, 과도하게 혹은 멈출 수 없이 활동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까? – 자주 그렇다


 물론 지금은 휴식하는 법을 여러가지로 배워가고 있지만 여전히 가끔은 과부화가 걸린다. 감정이 마음속에서 소용돌이치기도 하고 ‘마치 모터가 달린 것처럼, 과도하게 혹은 멈출 수 없이 활동을 하는 경우’도 있다. ADHD는 ‘페라리 뇌에 자전거 브레이크’ (에드워드 할로웰)라고 표현되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브레이크를 잡는 연습을 해오고 있다. 5분 정도 명상을 하기도 하고, 산책을 하거나, 러닝을 하면서 생각을 정리한다.



13번. 안절부절 못하거나 조바심하는 경우가 있습니까? – 자주 그렇다


 일상이다. 이럴 땐 명상을 갈긴다. 5분의 명상은 갑자기 불타오르는 자신의 내면에 ‘괜찮아’라고 적힌 물을 한 컵씩 계속 던지는 시간같다.



14번. 혼자 쉬고 있을 때, 긴장을 풀거나 마음을 편하게 갖기 어려운 경우가 있습니까? – 매우 자주 그렇다


 보통은 ‘긴장을 풀거나 마음을 편하게 갖기 어려’우면 ‘혼자 쉬고 있’다고 표현하지 않는다. 이 문장은 형용모순이다. 사실 14번 질문은 ‘너 쉴 줄 모르지?’를 아주 예쁘게 돌려묻는 것이다.



이전 02화 창의적으로 질문하고 도전하라면서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