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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준 Oct 20. 2024

당신이 ADHD인지는 궁금하지 않아요

어차피 당신도 평범하진 않잖아요?

“ADHD는 장애도 재능도 아닙니다. ADHD는 장애이자 재능입니다.”
(Edward M. Hallowell, 『ADHD와 사이좋게 지내기』 중에서)


 당최 글을 못 쓰는 편이라 글빨이 안 서는데, 그래도 함께 나누고 싶은 말들이 있어 뭐라도 해보려고 연재를 결심했습니다. 채성준이라는 ADHD 당사자가 연재를 끝까지 이어나갈 확률은 ADHD 당사자가 이 글을 끝까지 읽을 가능성만큼 적습니다. 세 번째 문장부터 실패를 예상하고 핑계 댈 궁리나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ADHD 당사자라고 이 글을 완독 하지 못할까요?’ 아닌 것 같습니다.


 브런치북 제목에는 ADHD가 쓰여있습니다. 하지만 솔직히 당신이 ADHD이든 아니든 그게 저한테 중요하진 않습니다. 제 친구라고 다 ADHD는 아닌 것처럼요. 저한테 ADHD는 단지 세상을 만나는 하나의 방법일 뿐입니다. (물론 산만함 때문에 집중해서 글 쓰기가 좀 어렵긴 합니다만.)



00님은 ADHD 당사자도 아닌데
이걸(프로젝트를) 어디까지 함께하실 수 있을지 걱정이 되네요.


 최근 ADHD와 관련된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팀을 구성했습니다. 이름하여 ‘고립감 해소 프로젝트.’ 저희 팀원은 세 명입니다. 그런데 셋 중 한 명은 ADHD가 아닙니다. 어떤 분은 저희 팀을 보고 앞의 말처럼 우려 섞인 걱정을 해주셨습니다. 진심 어린 조언이니 감사하게 받아들였으나 사실은 받아들이지도 못했습니다. ‘ADHD의 진단 여부’는 저희 팀에서 하나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ADHD 관련 프로젝트를 한다고 꼭 당사자여야 하나요? 저희 팀은 그냥 서로가 다를 뿐이라고만 생각합니다. 물론 저를 포함해 두 명이 지각을 좀 자주 하긴 하는데, 이 자리를 빌려 사과합니다. 아무튼 온 세상 사람의 수만큼 다양한 성격과 특성을 가진 사람들이 있잖아요? ADHD는 단지 조금 더 비슷한 점이 많은 사람들일 뿐이 아닐까요?


 ADHD는 DSM-5라는 미국 정신의학회에서 합의된 조건을 충족하면 진단받는 ‘장애’입니다. 그런데 ADHD는 ‘스펙트럼’ 장애이기도 합니다. 즉, ADHD의 증상과 사례는 정해진 하나의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며 사람마다 매우 다른 방식으로 ADHD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니까 ADHD라고 다 똑같진 않다는 말입니다.


 대학교에서 ADHD 커뮤니티를 운영하고 관련 행사들을 찾아다니면서 당사자들을 자주 만나게 됩니다. 우리는 서로를 만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진 않습니다. “아, ADHD이시구나.” ADHD라는 말은 우리 개인의 아주 일부는 설명해 줄 수 있을지 몰라도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를 설명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말입니다.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어떨 때 화가 나고 행복한지, 동반 질환은 무엇인지, 어떠한 방식으로 ADHD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지를 묻지 않으면 우리는 그냥 ‘ADHD’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 되어버리고 맙니다.




“사회에선 실수투성이며 특이한 나, 여기서는 평범하다?”

 학내 ADHD 커뮤니티를 홍보할 문구를 제안해 달라는 말에 한 멤버가 제안해 준 문구입니다. ADHD 당사자들은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배로 노력해야 합니다. 수많은 실수, 충동적인 사고, 산만함 같은 것들을 어떻게든 ‘극복’해야 하니까요. 그런데 이것이 비단 ADHD만의 문제일까요? 한국 사회에선 정말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든 ‘평범하게’ 살기 위해서 발버둥 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친구 한 명은 평범하게 사는 게 너무 힘들다고 엄마에게 푸념했다고 합니다. 어머니의 대답에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었다고 합니다.


  “다들 그거 평범하게 사는 거 하려고 그렇게 열심히들 사는 거야.”

 

 대체 평범한 것이란 무엇인지 궁금해졌습니다. 저는 단 한 번도 평범한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사실은 단 한 명도 평범한 사람은 없는 것 같습니다. 당신도, 그냥 수많은 사람들 중 한 명이라 하기에는 다채롭고 많은 이야기가 있지 않나요. 많이 아파했고, 웃었고, 사랑하지 않았나요?



나도 ADHD인가 봐.
- 익명의 누군가들 -

 ADHD 당사자들도 마찬가지로 하나의 사람들이 아닙니다. 더 나아가 모든 사람들은 그 어떤 하나의 사람에 불과하지 않습니다. 요즘 들어 카페나 음식점에서 이런 대화가 자주 귀에 들어옵니다. 기분이 나쁘지도 않고 거슬리지도 않습니다. ‘ADHD이면 뭐가 어때서?’ ASRS(ADHD 자가진단 지표)를 친구들에게 보여주거나 ADHD의 증상을 친구들에게 설명하면 대개 이런 반응입니다.


  “나도 이 증상 있는데? 나도 ADHD인가?”


 잘 걸렸습니다. 그럼 저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당연히 진단은 전문의가 하는 거고 나는 모르지. 근데 ADHD인 게 중요한가?


 진단을 받았다고 갑자기 내 인생이 무너지진 않습니다. 나중에 이야기하겠지만 저는 오히려 제발 ADHD로 진단되길 소망(까지)했습니다. 그런데 의학적으로 진단 받든 아니든, 살아가는 모습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심지어 한국에서는 ADHD가 법률적으로 ‘장애’도 아닙니다. 근데 약은 또 줘요. 그런데 미국에선 또 장애랍니다. 대체 어쩌라는 건지? 진단을 받도록 노력을 해야 하나?


 ADHD는 개인의 특성이라는 게 제 결론입니다. 진단을 받았든 아니든, 결국은 ADHD와 함께 살아가야 합니다. 제가 진단을 받았든 아니든 결국 저는 ADHD의 특성들을 가진 자신과 사이좋게 지내며 살아가는 방법을 계속 배워나가야 했습니다.  어디에선 장애이고 어디에선 아닌 제 자신의 특성들과 함께요. 약 50년 전에는 이름도 없었던 ADHD와 함께요. 저는 평범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당신도 단지 평범한 한 명의 사람은 아닙니다. 당신이 가지고 있는 특성들이 무엇이든 간에 당신도 자신과 함께 살아야 함은 마찬가지죠. 그건 우리 모두가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결국 자기 자신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연습해나가야 합니다. 그런데 또 혼자 살 수는 없어요. 외로워요. 결국 우리는 함께 살아가야 합니다. 뻔한 말, ‘자신을 사랑하고 타인을 사랑해라.’를 재소환합니다. 결국 제목에 또 '사랑'을 넣어버렸습니다.


 자기 자신과 함께이든 타인과 함께이든 우리는 사랑하지 못하고는 배길 수가 없습니다. 다만 ADHD 당사자는 사랑하기가 훨씬 더 어렵습니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부터가 힘들어 미칠 노릇입니다. 그래서 'ADHD'를 브런치북 제목 앞에 내세웠습니다. 그렇게 브런치북의 제목이 탄생했습니다.


『ADHD와 함께 사랑하기』 연재를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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