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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준 Oct 23. 2024

창의적으로 질문하고 도전하라면서요

태초에 창의적인 사람들(ADHD?)이 있었다

내 ADHD? 오히려 좋아

(정신승리는 아닙니다...)


 ADHD를 진단받기 전까지는 자기 자신에 대해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참 많았습니다. 자신의 여러 특성들을 처음에는 받아들이지 못하고 ‘노력’으로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몇 년 간의 노력이 실패하면 나는 역시 안 된다는 생각을 하기 일쑤였습니다. 이러한 생각들이 쌓여 부정적인 자기 인식을 꽉 채웠습니다. 그리고 2년 전 ADHD 진단을 받은 이후부터 ‘나의 의지 박약 문제’가 사실은 그렇지 않음을 깨닫습니다.


 생각을 바꿉니다. 지각이나 수면, 실수 같은 약점들은 약과 일상의 스킬로 최대한 극복하려 노력합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ADHD의 특성 중 장점으로 활용할 수 있는 것은 ‘오히려 좋아’로 접근합니다. 최근 들어서는 강박도 오히려 좋은 쪽으로 활용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천천히 이야기해 나가려고 하는데, 댓글로 같이 이야기해봐도 좋습니다.) 저는 (불가피하게) ADHD와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ADHD 자가진단’을 위한 증상 체크리스트가 있습니다. (진단은 전문가의 몫입니다. 혹시라도 이 글을 읽고 스스로 결론까지 내리시지 않길 바랍니다.) 저는 하나하나 체크하며 확인사살을 당했습니다. ‘그래, 나 ADHD다… 근데 뭐 어쩌라고.’ 저는 어느순간 배째라 식으로 접근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글부터 세 편 정도의 글은 아래와 같이 체크리스트의 질문들을 재료로 요리하듯 써보려 합니다.



 <ASRS-V1.1 증상 체크리스트>

네 제가 이모양입니다. '어쩌라고' 태도로 살고 있습니다.

 


2번. ‘체계가 필요한 일을 해야 할 때 순서대로 진행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습니까?’

 세상에 안 그런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데 막상 친구들에게 이 체크리스트를 주면 다들 ‘매우 그렇지 않다’에 체크해주었습니다. 저는 분명 체계적으로 일을 처리하려고 진짜 많이 노력하는 사람인데 (물론 제 생각입니다), 막상 체계를 중시하는 친구들은 저를 무슨 범법자 취급합니다. 누가 봐도 ‘저 자식이 또 날뛰기 시작하는구나’라며 체념한 얼굴로 절 바라보던 동료의 기막힌 표정을 잊을 수 없습니다.


8번. ‘지루하고 반복적인 일을 할 때, 주의 집중이 힘든 경우가 있습니까?’

 지루하고 반복적인 일인데 주의 집중이 안 힘든 게 말이나 됩니까? 네 말이 됩니다. 제 친구들은 또다시 그렇지 않다고 체크해주었습니다. 심지어 전 같은 길로만 지나다니는 게 지루해서 다른 길로 돌아가기도 하는 사람입니다. 러닝 코스가 수십 개쯤 됩니다. 매번 바뀌어서요.


6번. ‘마치 모터가 달린 것처럼, 과도하게 혹은 멈출 수 없이 활동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까?’

 아주 이기적입니다. 체계가 필요하거나 지루하고 반복적인 일은 그렇게 싫어하면서, 정작 뭐 하나에 꽂히면 모터가 돌아가는 것처럼 과도하게 날아다닙니다. 어떨 때는 밥도 안 먹고 그것만 하기도 합니다. 그냥 정신이 온통 거기에 가있습니다. 이걸 보통 ‘과몰입’이라고 합니다.

 ADHD는 집중력이 부족한 게 아니라, 그 집중력을 모으는 주의력이 부족한 경우가 많습니다. 제 과몰입은 몇 년 단위로 진행되기도 했습니다. 그 대상은 철학, 교회, 정당활동, 공부(?), 운동 등 다양합니다.




 ‘왜 ADHD가 문제지? 세상이 문제인 거 같은데?’ - 창의적인 사람들, ADHD


 그런데 ADHD에서 나타날 수 있는 위 3개 증상을 조금 다르게 해석해보겠습니다. 체계를 무시하고, 지루하고 반복적인 일을 피하고, 그런데 한 번 꽂히면 미친듯이 하는 특성. 다르게 말하면 기존의 체계에 사로잡히지 않으면서, 기존의 방식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마음이 한 번 동하면 거기에 올인하는 특성이기도 한 겁니다. 그리고 잘 굴러가는 거 같은 세상에 이상한 질문들을 합니다. 가령 지금 저는 ADHD가 아니라 세상이 문제라고 따져들고 있습니다.



 하버드의 창의력 연구의 대가인 Teresa M. Amabile은 창의성을 다음의 세 가지 요소로 정의합니다: 전문지식(expertise), 창의적 사고 기술(creative-thinking skills), 동기(부여)(motivation). 동기부여에도 여러 이론이 있지만 아시다시피 동기부여는 매우 어렵습니다. 그걸 할 줄 아는 사람이 있으면 지금 대치동, 아니 전국 1타 강사였을겁니다.


 ADHD는 스스로 하나에 과몰입하기 시작하면 미친 동기부여를 가지고 접근합니다. 그리고 창의적 사고 기술은 이미 마련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기존 방식대로 생각하는 걸 잘 못해요! 이건 단점이기도 한데 저는 지금 그걸 장점으로 해석해보자고 주장하는 겁니다. 물론 하나가 빠져 있습니다. 전문지식인데요, 이것저것 공부하고 배우긴 해야죠. 저도 양심은 있습니다. (그 방법에 대해서도 나중에 써보려고 합니다. ADHD의 생존형 학습법.)


  (우리가) '관습에서 벗어난 사람'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이는 핵심을 놓친 말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행동하는 걸 선택하는 게 아니다.
우리가 따르지 않는 표준이라는 게 무엇인지조차 모른다!

『ADHD 2.0』 중에서




 창의력과 관련된 뉴스 기사들이 많습니다. 우리 아이의 창의력을 어떻게 길러줘야 할 고민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ADHD 자녀를 둔 부모님들은 다른 고민을 하십니다. 우리 아이가 기존 방식의 교육이나 체계를 제대로 따라가지 못해서 문제다. 그런데 위에서 말한 걸 떠올려보면 지나치게 창의적이라서 문제라고 들리기도 합니다. (저희 부모님도 비슷한 고민을 하고 계실 겁니다. 이건 이 자리를 빌려 사과하지 않겠습니다. 전 제 자신이 좋아요.)


 제가 생각하는 ADHD의 특징 중 하나는 ‘럭비공’같은 사람들이라는 겁니다. 대개의 동그란 공들은 아주 반듯하게 데굴데굴 굴러갑니다. 그리고 던지는 사람이 원하는 방향으로 통통 튀어갑니다. 그러나 ADHD는 럭비공 같은 사람들입니다. 어디로 튈지 예측불허입니다. 우리의 일상이 그렇습니다. 또 앞뒤를 재지 않는 ADHD가 많습니다. 자신의 행동이 원인이 되어 불러올 결과를 체계적으로 예측하지 못하거나, 예측을 해도 기어코 착수해버리고 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물론 양날의 검입니다. 하지만 세상에는 이런 사람들도 있습니다.




 우리는 창의적이고 도전하는, 그리고 의문을 제기하는 risk-taker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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