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온 다음 날의 맨발 걷기는 촉촉해서 정말 좋다. 일부러 진흙탕에 들어가 꼼질꼼질도 해보게 된다. 원래는 점심 먹고 동생집으로 가려고 했으나 도윤이가 큰 이모집 빨리 가자고 재촉을 해서 아침 먹고 바로 출발했다. 곧 출산을 앞두고 있는 동생을 출산 전에 마지막으로 보고 싶어서 왔다. 그 작은 체구에 배만 불러진 모습이 애잔하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했다. 수축이 계속되고 자궁경부 길이도 짧아서 한 달을 입원했다가 겨우 퇴원했다. 이번 주까지만 조심하면 다음 주부터는 아기가 언제 태어나도 다 괜찮다고 한다. 정말 다행이다.
꽃을 좋아하는 동생을 위해 예쁜 코랄빛 왁스플라워와 베이지색 거베라를 샀다. 가을가을하다.
맛있는 점심을 먹고 도윤이와 놀이터에 가서 놀았다. 개미와 거미를 찾아보며 깔깔깔 웃는 도윤이를 보면서 마음이 충만해졌다. 내가 무언가를 많이 해주지 않아도 이렇게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아이는 참 행복하구나 싶었다. 걱정에 휩싸여있으면 함께 있어도 진정으로 함께 있는 게 아니게 된다. 걱정을 내려놓고 지금-여기를 살아야 함께 있을 수 있고 연결될 수 있다.
신나게 산책을 마치고 집에 와서 낮잠에 든 도윤이 덕에 오늘의 기록을 남길 수 있어서 감사하다.
감사하고 행복한 게 참 별일 아닌 것에서 오는 것인데.. 왜 늘 대단한 것을 찾으려 발버둥 치고 괴로워하는 걸까.. 머리로는 알면서도 그냥 지금의 나를 충분하다고 받아들이고 행복해하면 곧 망할 것 같은 불안이 어김없이 찾아온다.
“지금 겨우 모면하고 사는 거지. 너 이렇게 노력하지 않고 만족하면서 살면 곧 망해!”
내면의 목소리가 너무 무섭다. 그래도 지난 5년간 우울할 때 너무 힘들었긴 해도 아주 큰일이 벌어지진 않았다. 그걸 믿어야지. 큰일 날 거라는 사이렌이 계속 울려도 기계 오작동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다시 지금-여기 현실에 발 붙이고 살아가야지. 그것 밖에는 길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