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주도 성장? 백수주도 성장! 2

백수의 사회학 #6

by 낭만박사 채희태

2. 아파트 문화가 이끈 소비주도 성장


불편하지만 소비주도 성장에 대해 조금만 더 이어가 보도록 하겠다. 소비주도 성장이 우리의 일상 속으로 침투한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아파트 중심 주거문화라고 할 수 있다.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주거정책인 재개발과 재건축은 소비자들의 요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개발독재 과정에서 공룡처럼 비대해진 토건세력에게 줄 먹잇감이 필요했기 때문에 시작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필자가 글을 쓰고 있는 카페의 창문 너머에는 아파트 공사가 한창이다. 여기저기가 온통 아파트 공사판이다. 원래 아파트가 지어질 저 마을에는 작은 주택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안에는 소소한 생산과 소비의 생태계가 있었을지 모르다. 전통 시장이 있었을 것이고, 아이들의 코 묻을 돈으로 생계를 꾸려가는 구멍가게도 있었을 것이고, 마을 사람들의 대소사에 올려질 떡을 공급하는 허름한 방앗간도 있었을 것이고, 어두침침한 전파사에서는 납과 인두기만 있으면 무엇이든 고치는 순돌이 아빠가 누군가의 소중한 물건을 ‘재생’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소비자들의 필요가 곧 생산이 되고, 그렇게 생산된 필요는 정이라는 덤이 얹어져 거래되는… 우리가 “응답하라, 1988”에서 느꼈음직한 불편하지만 그래도 뭔가 따뜻함이 묻어있는 그러한 마을이 만들어낸 자연스러운 생태계 말이다.


하지만 아파트라는 괴물은 오랜 시간 필요와 생산이 소소한 성공과 실패의 경험으로 축적된 이러한 마을의 생태계를 한방에 쓸어 버린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탐욕스럽고 거대한 소비집단이 들어선다. 거대하고 탐욕스런 소비집단인 아파트의 거래 상대는 그만큼 탐욕스럽고 거대해야만 한다. 그런 면에서 거대 자본이 운영하는 대형 마트는 아파트와 깔맞춤이다. 대형 마트에는 없는 것이 없다. 자본이 만들어 낸 온갖 상품들이 조명을 받으며 소비자들의 눈높이에 맞게 진열되어 있다. 하지만 소비자들이 필요한 것만 소비해서는 곤란하다. 소비주도 성장 시대를 살고 있는 소비자들은 자본이 이윤을 위해 과잉 생산한 것을 무리해서라도 모두 소비해주어야 한다, 깔끔하고 다양한 식당들이 모여 있는 푸드코트는 소비를 위한 재충전의 공간이다. 밥을 먹으러 와서 소비하고, 소비를 하기 위해 배를 채운다. 이른바 소비가 주도하는 성장의 수레바퀴 위에 올라탄 우리는 경쟁적으로 중복과 과잉 소비를 탐하는 과정에서 소득 경쟁으로 내몰렸고, 더 많은 소득을 올리기 위해 일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악순환에 빠져 버렸다.

아파트와 전통시장의 주차장 비교

공동체로 엮여있는 마을은 구질구질하고 불편하지만, 아파트와 대형 마트는 세련될 뿐만 아니라 분리의 안락함을 선사한다. 한마디로 ‘쿠울~’하다. 우리는 쿠울하게 지금 이 순간에도 모든 구질구질한 관계를 편리한 소비로 대체하고 있고, 공동체가 지향했던 공공의 가치를 부수고 잘게 쪼갠 후, 각자가 감당할 수 있는 크기의 파편을 골라 나눠 가졌다. 그렇게 공동체에서 분리된 개인이라는 각자는 자기가 소유한 가치에만 경쟁적으로 몰입한다. 이미 공공의 가치는 소멸되었고, 각자가 소유한 가치의 파편은 점점 공공의 가치에 준하는 지위를 점하기 위해 진격 중이다.


공공의 이익이 파편으로 갈라진 사회에서 나의 손해는 공공의 이익으로 가지 않는다. 또 다른 누군가의 사익이 될 뿐이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우리가 아닐 뿐만 아니라 관계로부터 진화한 인류가 아닐지도 모른다. 거대한 소비집단인 아파트의 안락함에 익숙해진 우리는 대자본과의 불평등한 거래관계 속에서 마치 솥에서 천천히 삶아지고 있는 개구리 신세가 되어 버렸는지도 모른다. 인도의 과학자이자 에코페미니스트인 ‘반다나 시바’는 인류는 소비에 의존하게 되면서 이전보다 작아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우리는 우리가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사소한 문제도 자본에게 요구해 소비로 해결하고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인류가 서식하고 있는 지구는 개구리를 삶는 솥처럼 서서히 달궈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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