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그것들은 먼 우주로부터 오는 게 틀림없다. 예컨대, 도저히 손댈 데 없는 조형의 완성이라든지, 어떤 시선이든 빨아들이는 야무지고 고혹적인 도발과. 그리하여 나의 시간을 일순 동결시키는 마약과 같은 힘. 내게 꽃의 이미지는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완벽 그 자체다. 자연의 솜씨라 하여 그럴 수만은 없다고 자꾸 중얼거린다. 하물며 언감생심 인간이 흉내 내기란? 아무래도 불가능에 가깝다.
특히 가을꽃은 더하다. 어디서 오는지 모르는 소슬한 바람과 날이 갈수록 한 구석이 퀭하게 비어 가는 내 안의 원인 모를 공허~ 뭐 그런 탓이 아닐까 생각하기도 하지만, 아무튼 가을이 오면 꽃에 대한 생각은 더 애절하다. 보랏빛 쑥부쟁이, 안개 같은 개망초, 처녀 뺨처럼 뽀얀 구절초, 샛노란 누님의 국화, 그리고 화단의 이름 모를 작은 꽃들까지. 찬 바람이 불면 그것들을 관찰하느라 온종일 허둥대는 나를 본다. 일종의 강박관념이 아닐까? 저 꽃들이 다 가 버리기 전에 나는 무슨 조치든 해 두어야 한다.
끝내 국화 화분을 하나를 샀다. 하루도 안 지났는데 벌써 꽃을 만나려는 마음이 급하다. 봄부터 소쩍새 울음 들으며 꽃을 기다리던 시인의 인내는커녕, 얼른 보고 싶은 아이같이 잔망스러운 마음에 꽃망울을 쳐다보고 내 맘대로 만개한 상상의 꽃을 그려 보기도 한다. 또한, 지난가을을 상상하며 기억 속의 보랏빛 들국화를 그려 놓기도 한다. 결국, 내 스케치북에 꽃이 가득해진다.
향기가 없는 그림 속의 꽃. 그런데도 잊힌 사람들과 그들과의 기억이 솔솔 실려 온다. 싣고 오는 것이 향기가 아니라면 그것은 무엇인가? 향기는 없으나 그림 속의 꽃이 먼 우주로부터 잊힌 그 사람들의 추억을 가지고 온 것임이 틀림없다. 나는 그림 속의 꽃을 보며 어렴풋한 그 날의 향기를 더듬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들이 내게서 잊혀 가던 그 날의 기억. 그리고 지금은 느낄 수 없는 그 온기. 나는 지금 그것을 품고 있다. 그래! 꽃은 분명 그가 가버린 먼 우주로부터 온 것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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