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국사 입구에서 하룻밤 묵고, 일찍 깨어 주위를 산책하는데. 폐역사 옆에 묶인 개 한 마리, 저리도 짖어 댄다. 사람 걸음이 뜸하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인적이 드무니 개의 짖음은 더욱더 크다. 한때, 풍성을 이루던 거리는 오래된 사람들의 기억에만 머물렀고, 또 새로운 세상을 향해 발버둥인양.
어디 빈 역사 주변 뿐이야. 한 골목 더 돌아드니, 오래된 집들이 여지없이 허물어져 가고. 나는 잠시 그곳에 머물고, 그것을 그리려 한다. 동병상련인가? 나 또한 굽은 몸 근근히 세우고, 눈이라도 똑바로 떠서. 저 낡은 구조와 무관심한 물건들 사이에서 밝디 밝은 무언가를 찾으려 애쓰는 중이라 해 두자.
이 허물어져 가는 동네를 떠나면. 나는 마치 저 멀리 더 밝은 마을에서 온 초인처럼. 고개를 들고, 허리를 펴고, 사람들도 똑바로 쳐다보자. 시간이야 어찌 하겠는가? 설 수 있을 때까지 곧추 서는 거다. 가을 바람이 서늘한 것이 아니라, 명징한 것임을 끝내 깨닫고. 시간의 끝까지. 혹은 바람 아무리 드세어도. 무조건 앞을 보고 서기.
이런!! 이 가을에 문득 일어서는 이른 봄의 기운. 짙은 색깔 속에 숨은 빛의 한 자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