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을 말하다
방향성의 근원
수평성은 수직으로부터 나오고, 수직성의 근원은 수평에 있네. 그리하여 오름은 평활함에서 시작되고, 나아감은 곧추서게 됨으로써 출발하네. 수평 없이 수직은 존재하지 아니하고, 수직 없는 수평은 그 가치를 잃어버린다. 결국, 나의 존재함도 생각이 다른 타인을 인정함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닐까? 아~ 공존. 그리고 이해와 겸손이라는 미덕의 불가피함.
기울어짐에 대하여
맑은 빛 아래에서 신이 이루어내는 사선의 짙은 그림자를 보고 있노라면, 건축가는 문득 온몸이 떨리는 모종의 에너지를 느끼는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자신의 건축에도 충격과 반란이 충만하였으면 하는 것이다. 그러한 욕구는 사진으로나마 훔쳐두고 싶은 것이다. 수직의 빛도 그러려니와 기울어진 그림자 또한 또렷하고 맑다. 가을은 낡은 건축의 표정에도 있다. 신과 사람의 합작. 무지렁이 건축가가 그걸 바라보게 된 것이다.
기울어짐에도 편안하게 하는 것은 아무래도 신의 영역이다. 사진의 실루엣과 같이 신은 자연을 앞세워 끊임없이 기움을 만들어 내고 또 소멸시킨다. 그것의 변모는 늘 신선하고 때론 충격적이다. 반면, 평활한 터전에 바르게 세움을 더하는 것은 태초로부터 인간의 한계. 그리하여 수평과 수직은 사람의 일상으로 늘 존재하였다. 예를 들어 건축의 역사가 그렇다. 그럼에도 인간은 늘 신의 사선을 질투했다. 일종의 일탈이며 반란이었으나, 그 또한 하나의 역사를 이루는 단초가 되기도 한다. 사선의 야무진 도발.
그리하여 나는, 그 어떤 기울어짐도 이해해야 한다. 기울어진다는 것은 오류가 아니라 진화를 위한 몸부림. 하물며, 그것의 이해함은 나도 모르게 기울어진 나를 마침내 바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