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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 Mar 03. 2024

중년의 허전함에 취해 잊고 있는 것

40대 중반에 다시 쓰는 일기 (1)

중년의 허전함에 흔들리며 살다보니 자꾸 자신을 들여다보게 된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는 어디로 가는 것인가.. 하는 생각들 말이다. 그리고 그것을 벗어나기 위해 새로운 취미를 가져보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도 하고, 새로운 업무에 도전해 보는 등 온갖 새로운 것들에 눈이 가기 마련이다.


그런 모습들이 중년 이전의 나와 아름답게 작별하고, 새로운 나를 찾아 다시 여행을 떠나는 것이라며 스스로를 위안하고는 했다. 


그런데, 그렇게 내 안의 나와 새로운 나에게 집중하면서 잃고 있는 것들이 있었다. 


어느 날 걸려온 전화 한 통


어느 평범한 날 아침. 급하게 출장을 나가고 있는데, 후배에게 전화가 왔다. 항상 먼저 연락을 해주던 대학 후배였다. 


"웬일이지?" 


출장지에 거의 도착해서 들어가야 하는 상황이라 잠시 망설였다. 보통 이런 상황에서 나는 전화를 잘 받지 않고 나중에 내가 다시 전화를 하는 쪽을 택한다. 그런데 이날은 왠지 받아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단다... 더구나 작년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바쁠 것 같아서 연락을 안 했다고 한다. 


너무 미안했다. 한 달 전 부재중 전화가 떠올라 더욱더 미안해졌다.

그 때도 얼마나 힘든 상황이었을까... 그 전화를 받았다면... 


내가 중년의 허전함에 취해 휘청거리는 동안, 새로운 나를 찾겠다고 온갖 시도를 하는 동안 나는 내가 중년의 나이가 될 때까지 나를 지탱해주던 친구, 지인, 선후배들을 잊고 살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통화를 하는 동안 눈물이 흘렀다. 이제 곧 출장지에 들어가서 업무를 시작해야 하는데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업무를 보면서도 중간중간 슬픔이 오르는 것을 꾸역꾸역 참아야 했다. 


퇴근 후 차를 끌고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통화는 종종 했지만 얼굴을 보는 것은 정말 몇 년 만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다시 또 미안했다. 



"여기까지 와줘서 고마워요."


고맙다니, 무심했던 나에게 고맙다니. 그 말에 또 눈물이 났다. 


부모님의 투병 생활과 1년 사이에 두 분을 모두 떠나보내야 했던 후배의 이야기를 나는 미안한 마음으로 들었다. 중간중간 괜찮다며 웃는 후배의 모습에 더 마음 아팠다. 대학 시절 함께 꿈을 꾸며 밤새 술을 마시고 토론을 하던 20대의 앳된 모습이 아직 기억나는데, 후배나 나나 이젠 40대 중년이 되었다. 


한 참을 이야기 한 뒤, 장례식장을 나섰다. 앞으로는 자주 연락하겠다고, 다음에는 무슨 일 있으면 고민 말고 무조건 연락하라고 말하고 인사를 나눴다. 후배는 그런 나를 보며 또 배시시 웃었다. 그리고는 또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사람 미안하게.... 




나는 중년의 허전함을 느꼈고, 그것을 채우기 위해 애쓰고 있다. 그리고 청춘의 내가 아닌 새로운 나를 찾으려고 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 일로 다른 생각을 떠올려보게 됐다.


혹시 나는, 그리고 중년들은

새로운 것을 찾는 것이 아니라 지금 갖고 있는 것들을 돌아보는 것이 우선되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중년의 허전함을 채워줄 새로운 꿈, 새로운 도전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금도 내 곁을 지켜주고 있는 고마운 사람과 소중한 가치들처럼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것들을 먼저 돌아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다. 거기서 시작해야 중년의 새로운 삶과 꿈을 제대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허전함과 새로움에 너무 취하지 말고 다시 내 곁을, 다시 나의 내면을 먼저 들여다 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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