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 아빠와 초딩 자매의 좌충우돌 육아일기 (2)
"자기.. 나 출근하래..."
순간 귀를 의심했다. 아내의 취업이라니...
얼마 전에 면접을 보고 왔다고 하더니 합격 통보를 받았다고 한다.
아내는 임신과 출산으로 자신의 꿈 대신 육아를 선택한 '경력단절 여성'이다. 출산 후 중간에 잠시 회사를 다닌 경력이 있지만, 그래도 5년의 경력단절 기간이 있다. 더구나 젊은 사람들도 취업하기 힘든 이때에, 아내는 출산 전에 자신이 하던 것과 동일한 업무에 합격했다.
아내는 평소에 파트타임으로 일할 수 있어도 다행일 것 같다며, 출산 전에 자신이 하던 일을 포기한 것처럼 말했었다.
이쯤이면 아내의 취업은 로또가 아닐까 싶다.
나는 아내에게, 다행이라고, 해낼 줄 알았다고 웃으며 축하를 해줬다. 그러나 머릿속은 복잡했고, 마음도 무거웠다. 아내 역시 같은 마음이었을까? 그 순간 아내는 한숨과 함께 나와 같은 걱정을 털어놓았다.
"우리 아이들은 어쩌지?"
퇴근 후 아내의 취업에 대한 축하와 감사를 짧게 나누고, 우리는 아이들의 돌봄과 육아라는 현실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 긴 대화를 나눴다. 아이들의 등하교, 병원 동행, 긴급한 일이 생겼을 때 대처 방법 등이 문제였다.
아내는 이제 7시 30분에 집에서 나서야 한다. 아이들의 등교 시간은 8시 30분이다. 그렇다고 이제 취업한 아내가 직장에 늦게 출근하겠다고 요청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무리다.
고민 끝에 내가 당분간 유연근무를 신청하고 아이들을 등교시키기로 했다. 그나마 내가 다니는 직장이 아내보다는 집에서 가깝다. 아이들이 잘 도와주고, 내가 아침에 아이들을 챙기는 것이 익숙해지면 유연근무 없이도 9시에 턱걸이로 출근을 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아내 역시 자신이 이렇게 빨리 취업할 줄 모르고 돌봄을 짧게 신청했다. 아쉬웠지만 이제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교 후 아이들의 스케줄을 점검했다. 중간에 비는 시간이 있었다. 이 시간에 아이들을 학원을 더 보낼 것인지 다른 방법은 없는지 고민했다. 아이들을 불러서 아이들의 의견도 물었다.
"이런 상황이 생기면 어떻게 하지? 저런 일이 생길 땐 어떻게 대처하지?"
아내는 별의별 상황들을 다 예상하며 대처 방안을 만들려고 했다. 마치 맞벌이 부부의 육아 매뉴얼을 만들기라도 하려는 듯 말이다.
사실, 아내와 나는 아이들이 태어난 뒤로는 단 한 번도 맞벌이를 해보지 않았다. 아이들이 어느 정도 자랄 때까지는 엄마든 아빠든 한 사람은 집에 있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것이 우리 부부의 생각이었다. 아이들이 3살 무렵 아내가 일을 했었는데, 그때는 내가 집에서 아이들을 돌보는 육아대디 생활을 했었다.
그래서 우리 부부에게 맞벌이는 너무 낯설고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나는 취업의 기쁨도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아이들 문제부터 고민하는 아내가 안쓰럽고 미안했다.
"자기도 출근 전에 필요한 것도 좀 사고, 운동도 좀 해두고, 병원도 좀 다녀야지. 아이들 문제는 우리가 모든 것을 예상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 하나씩 부딪혀 보자."
육아대디 시절 아이들과 나는 정말 일촉즉발의 관계였다. 그래서 아내의 걱정은 더 컸다. 그 시절 나는 미운 3살이라는 말을 크게 실감하며 아이들과 매일 등원 전쟁을 펼쳤다. 제시간에 등원시킨 날이 거의 없었고, 겨우 등원시키고 나면 진이 쭉 빠져서 하루 종일 우울감에 시달리기도 했다.
이제 그 전쟁을 다시 시작해야 된다고 생각하니 정말 앞이 캄캄했다. 그래도 이제는 아이들이 초등학교 2학년이 되어서 어느 정도는 스스로 하겠지만, 아침에 늦지 않게 두 아이를 깨우고 나도 지각하지 않게 출근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이 두렵긴 하다.
나는 늘 아내에게 전업주부로 지내도 상관이 없다고 말을 해왔다. 그러면서 천천히 여러 가지 경험을 하고, 배워보면서 중년 이후에도 오래 할 수 있는 제2의 삶을 열어보라고 했었다.
아내를 위하는 마음에서 나온 진심이었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아이들이 더 성장할 때까지 아내가 집에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다. 한 사람으로서의 아내보다는 순전히 나와 아이들만 생각한 욕심이었다.
나의 욕심과 다르게 아내는 한 살 한 살 늘어가는 자신의 나이와 경력 단절 기간 때문에 두려워했다. 두려움은 아침에 아이들을 등교시키면서 마주치게 되는 직장인 엄마들을 보며 '초라함'으로 바뀌었다.
더 늦기 전에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향해 도전하고 싶다는 꿈은 아내의 마음속에서 이미 오래전부터 꿈틀거리고 있었다.
아내는 합격 통보를 받은 다음 날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의 일자리센터에 전화를 걸어 직업 상담사와 전화 상담을 했다. 경력단절 기간을 극복하고 회사에 잘 적응할 수 있을지 걱정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런 아내에게 직업 상담사는 꽤 멋진 말을 해주며 아내에게 용기를 주었다.
"자신을 왜 경력단절 여성이라고만 생각하세요. 10년의 경력이면 자신을 전문가라고 생각하고 자신감 가지셔도 됩니다. 아무리 작은 회사여도 그리고 아무리 사람이 급해도 회사는 아무나 뽑지 않습니다. 합격했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갖고 자신에게 당당하세요."
아내는 눈물이 날 뻔했다고 한다. 나도 저런 멋진 말로 아내를 응원해 줄 걸 옹졸하게 아내의 취업 앞에서 나에게 닥칠 등교 전쟁과 육아 문제나 고민하고 있었다니... 나 자신이 좀 부끄러웠다.
새 봄의 기운을 받아 취업한 아내가 회사에 잘 적응해서 자신의 꿈을 펼쳐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 아내가 이 기회를 자신에게 좋은 결과로 만들어 낼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고 보니... 아내가 첫 월급 타면 노트북이나 좀 바꿔달라고 할까? 아니면 스마트폰? ^^;;;